통일부 업무보고 평가와 의미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른 길을 간다는 원칙은 천명하되 `각론’은 모호하게 가려는 듯 하다.”

한 대북 소식통은 통일부의 26일 청와대 업무보고와 이명박 대통령의 반응에 대해 이 같이 논평했다.

실제로 이날 이 대통령과 통일부는 비핵화의 진전 상황에 남북관계의 폭과 속도를 연계한다는 입장을 확고히 천명한 반면 작년 남북정상선언(10.4 선언) 합의 이행과 대북 인도적 지원 계획,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 방안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4월9일 총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 기싸움 성격이 가미된 남북의 관망 기류, 미묘한 북핵 상황 등을 감안, 그간 밝혀온 대북 정책의 `총론’만 공개하고 `각론’은 당분간 묻어둔다는 전략이 이날 업무보고를 관통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아비판’ 통해 차별화 시도 = 업무보고에 배석한 통일부의 한 간부는 “대통령이 통일부에 대해 크게 질타하지는 않았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취재진에 공개된 모두발언에서도 이 대통령은 “(남북간에) 국민들의 뜻에 반하는 그런 협상은 앞으로 없을 것”이라며 “통일부 모든 간부들이 이제까지 해오던 그런 방식의 협상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했지만 조만간 새 판을 짜야할 남북관계를 감안, 발언 수위를 조절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대신 김하중 통일장관이 인사말을 통해 “국민들의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고 눈높이를 맞추지 않음으로써 남북관계에 대한 국민의 걱정과 우려를 자아냈다”며 지난 10년을 반성했다. 김 장관이 이 같은 `자아비판’을 하기까지 `상부’와의 `조율’ 또는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결국 남북관계 주무 부서장의 입을 통해 현 정부는 가시적 화해협력의 성과를 내면서도 `퍼주기’ 및 `대북 저자세’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지난 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른 길을 갈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를 위해 통일부는 이날 `실용과 생산성’을 정책 추진 원칙으로 소개하면서 국민동의, 비용 대비 성과,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 북한의 발전적 변화 촉진, 평화통일 기여 등의 기준을 대북 정책 추진과정에서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비핵화와 남북관계 연계 원칙만 천명..`전략적 모호성’ 견지 = 통일부는 북핵 진전상황을 봐가며 남북관계 발전의 속도와 폭, 추진 방식을 조정하겠다는 비핵.개방 3000의 이행 원칙을 재차 밝혔다.

개성공단.금강산 등 현재 진행중인 남북간 사업의 틀은 유지하되 경협 등 남북간 협력의 확대 발전을 위해서는 북핵 문제의 진전이 이뤄져야 함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와 관련, “진정한 남북간 사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남북 현안에 많은 문제가 개선되어야 한다는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같은 맥락에서 “핵을 이고 우리가 통일하기 힘들고, (북한과) 본격적 경제협력을 하기도 힘들다”고 강조했다.

또 통일부는 `호혜적 인도협력’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남한이 인도적 지원을 계속하되 북한도 남측이 중시하는 국군포로.납북자.이산가족 등 인도적 사안에 대해 전향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북한 주민들이 어려움에 처한데 대해서 우리가 협력하는 것은 계속될 것”이라며 “그에 상응하는 조건은 아니지만 북한도 인도적 차원에서 협력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이 관심을 가질 만한 대규모 경협 사업들의 추진 계획, 쌀.비료 등의 구체적 지원 계획과 타 사안과의 연계 전략,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방안 등 `각론’에 대한 언급은 이날 거의 없었다.

이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인 `나들섬 구상’의 구체화는 추진 과제에 이름을 올린 반면 서행평화지역 구상, 조선협력단지 조성, 철도.도로 개보수 등 10.4 선언에 담긴 대형 경협 사업들은 추진 과제 목록에서 제외됐다.

이를 두고 일부 전문가들은 총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 `전략적 모호성’의 기조가 엿보인다고 평가하고 있다. 현 정부에 대한 공식 반응을 자제하고 있는 북한과 국민 여론을 모호성의 영역 속에서 관리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인 것이다.

북핵 프로세스의 장기 공전 속에 남측이 대북 지원 또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경협 사업을 먼저 꺼낼 경우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봉착할 수 있다는 점을 청와대와 통일부가 비중있게 감안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선거 끝나고 앞으로 남북간 협상이 여러 면에서 시작되면 새 정부의 통일관, 새 정부의 대북 관련된 현안 해결 방법에 대해 별도로 여러분과 진지하게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총선도 남북관계 새판짜기의 변수가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아울러 다음달 중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핵 해결을 위한 한미공조의 방향이 구체화할 때 까지는 개별 대북 사업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입장이 이날 업무보고에 반영됐다는 시각도 제기되고 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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