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를 위한 변명: 통일은 어디에?

지난 봄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은 잊혀져 가던 통일명분에 불을 지폈다. 대통령의 언어로 ‘대박’이란 표현이 적절하냐는 일각의 반문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의 한마디’가 촉발시킨 폭발력은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서랍 속에 먼지만 쌓이고 있던 축적된 통일연구가 다시 빛을 받는 기회였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흔한 말로 ‘저변의 확대’가 선행되지 않은 위로부터의 문제제기는 뿌리가 약한 법. 북핵 문제로 인해 가시적 남북교류나 화해무드 조성이 지지부진한 것은 헤아린다 해도 대박 통일을 향한 최소한의 발걸음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왜 그럴까? 무엇을 해야 하나?
‘통일’을 아예 부서명으로 갖고 있는 통일부로서는 억울하고 답답할 노릇이다. 현재의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바꿀 만한 정치적 힘도 없고 모든 사람이 무릎을 칠만한 묘수를 짜기도 난망하니 어쩌란 말인가 싶을 것이다. 안보·국방 이슈에 밀리기 십상이니 무력감에 쌓일 법도 하다.

MB정부 시절인 2007년에는 존폐의 위기마저 겪었다. 1969년 국토통일원으로 창설된 이래 가장 곤혹스런 시기였을 테다. 사실 따지고 보면 통일부만큼 국민 정서 깊숙이 통일 정책 역량을 펼칠 바탕을 갖춘 정부조직도 없는데 말이다. 원래 ‘통일정책’과 ‘통일교육’을 주된 목표로 탄생한 조직이 DJ정부 이후 ‘남북교류협력’과 ‘대북사업’으로 범위를 확장된 것이 부메랑이 됐다. 잠깐이지만 폐지론까지 들을 만큼 위상이 흔들렸으니 역설적이게도 통일부야말로 정치적으로 가장 취약한 중앙부처였음이 입증된 셈이다.

그럼에도 1조 원에 가까운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주관부처인데다 현재 산하 법인단체만 200여 개에 이르는 등 국민 저변에 깊은 뿌리를 갖고 있는 유일한 조직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요는 그 운용의 방향성과 생산성, 효과성일 테지만. 결국 통일부가 추구하는 남북관계의 정책옵션이나 통일 교육·홍보의 기능이란 것이 실은 현상타파를 할 만한 독립변수가 안 되는 정치적 특수성에 근본적 역할의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정체돼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원치 않을 일이다.

현 상황이 통일부 공무원들만의 숙제는 결코 아니다. ‘통일대박’을 외친 대통령의 ‘지침’만 기다려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우연(?)처럼 물꼬가 터진 통일논의의 불씨를 살려 따듯하고 깊숙하게 생활밀착형 통일론이 일상 깊숙이 스며들게끔 만들어야 할 텐데 말이다. 문제는 늘 ‘어떻게’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론’을 던지는 것은 대부분 무책임한 피해가기와 다름없다. 적어도 ‘함께 계속해서 고민하기’라는 공통의 숙제를 공유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고 이것이 도리이지 싶다. 통일이 곧 ‘대박’일지, 새로운 ‘고난의 행군’의 시작이 될지, 섣부른 예단은 물론 금물. 통일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공통으로 지고 있는 삶의 과제라는 것을, 몇몇 전문가의 갑론을박에 갇히거나 주입된 통일지상주의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같이 고민하고 공감대(consensus)를 세워야 하는 한민족의 사명이란 것을 말이다.

지금 통일부는 대북 피로감과 상대적 무기력감을 떨쳐내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고군분투(孤軍奮鬪)’하고 있을 것이다. 통일부 홈페이지에 줄기차게 공고되고 있는 각종 연구용역 공모는 작은 방증이다. 통일담론의 밑거름을 쌓고 있는 작업으로 말이다. 최근 20년간 남북관계를 설명했던 각종 통합이론(기능주의니, 연방주의니 신기능주의 등)의 적실성(relevance)은 현실의 맥락과 조건에 따라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 과거 정부의 다양한 시도(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를 쾌도난마 식으로 평가하는 건 적절치 않겠다. 다만 이론이 현실을 주도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현실 왜곡으로 이어질 확률만 높일 뿐이다. ‘무릇이론’이란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논리적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새로운 걸 찾기 보다 과거를 돌아보면 어떨까?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는 어쩌면 가까이에 있는지 모른다.

이제까지 축적된 모든 통일논의(이론과 역사가 모두 담긴)와 사업, 실패와 갈등의 사례, 원인, 결과, 시사점, 제안 등 소위 최고로 비싼 컨설팅 보고서를 만든다는 각오로 허심탄회하게 낱낱이 정리한, 진정한 ‘분단 후 45주년 통일백서(가칭)’를 발간하는 건 어떨까? 얼마만큼의 분량이 될지, 몇 년이 걸릴 지 모른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후 2년 동안 200만 쪽에 달하는 백서를 작성했다. 잠깐 일어난 사건 하나를 정리한 백서가 200만 쪽이라니! 300쪽 단행본 6,700권 분량이다. 물리적으로 누가 그걸 전부 읽을 수가 있을까? 읽을 엄두를 낼까? 그럼에도 그 작업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 시간을 투입한 이유는 보다 나은 미래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한 기초를 다지기 위함이리라.

하물며 이럴진대 분단 70년(2015년)을 목전에 두고 한국 정부의 통일노력사(史)와 실패사(아직까지 통일이 이루어진 것은 아니니 ‘실패’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성공’으로 진화 중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지만.)를 집약하는 작업이 무의미하진 않겠다. 늘 하는 말로 정치적 ‘의지’의 문제일 따름이다. 이런 백서발간은 효용론이 없다는 회의론 조차도 본문으로 다룰 일이다. 매년 반복되는 통일백서를 벗어나 통일을 키워드로 한국 현대사를 조망한 집약된 백서는 그 자체가 역사의 증언이 되지 않을까? 빨리 잊고 건너 뛰는 대한민국의 관료 정서와 정치문화를 바로 잡아주는 효시가 되지 않을까?

통일부는 이 방대한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수행할 역량이 있다고 믿고 싶다. 과제를 시작하고 종료하는 기나긴 과정 자체가 어쩌면 통일대박으로 이어지는 긴 항로의 출발이 될지도 모른다. 9·11테러 백서를 발간한 미국의 국가위원회는 의회의 입법과 대통령 서명에 의해 위원회의 독립성을 보장받았다. 세계 11위를 다투는 국가도 이런 작업을 할 수 있다. 아니,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 정치지형도에서 ‘통일’은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접점’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통일로 가는 정치’는 마땅히 국제정치의 세계를 간과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한민족으로서 느끼는 당위적 설명만으로는 통일과 정치를 아우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통일이란 개념이 갖는 현실적 복잡성을 어느 관점에서 어떤 이론적 도구를 가지고 ‘공론의 장’으로 이끌어 내느냐가 ‘통일로 가는 정치’ 칼럼이 갖는 의미일 것입니다.

삼국통일 이후, 한반도에서 통일이 가진 정치적 함의는 국토의 재분열이라는 잠재된 위기와 통일상태의 유지라는 대의명분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언제나 현재진행형인 주제입니다. ‘통일로 가는 정치’는 바로 이에 대한 고민과 성찰의 단편들입니다. 섣부른 통일지상주의를 경계합니다. 그것은 뜸이 덜 든 밥과도 같습니다. 분단 고착적 현실론 또한 비겁한 자기도피적 패배주의입니다. 지금은 통일을 ‘이상’으로서가 아닌 현실로 정면에서 바라보는 용기와 열린 가슴이 절실한 시기입니다.

통일을 둘러싼 담론은 많습니다. 무엇을 말해도 기존의 거대 통일담론 중 한 꼭지에 불과할 것입니다. 북한 핵, 한반도 주변 4강, 한미동맹, 북한인권 등 북한과 관련된 그 어떤 이슈도 단일의 맥락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물과도 같습니다. 마치, 사회와 정치, 경제, 국제관계를 모두 얽어매는 저인망처럼 말입니다. 그 이야기의 중심에 빠질 수 없는 이름, 김정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통일로 가는 정치’는 우리들만의 이야기만으로는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 그들을 둘러싼 주변 이방인들의 이야기 등이 망라돼야 합니다.

‘통일로 가는 정치’는 그 이야기들의 장(場)입니다. 그 귀결점이 통일을 향한 현실 정책의 한 귀퉁이로 이어져야 설명력 있는 담론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로 가는 정치’는 우선 나(우리)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너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며 그들에 대한 이야기로 발전합니다. 이 모든 관계망을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정치’입니다. 따라서, 경제도 정치가 됩니다. 사회도, 문화도, 국제관계도 결국은 정치라는 무대 위에 펼쳐지고 재조합됩니다. ‘정치학의 역사는 곧 비교의 역사’라고 위아르다(Wiarda)라는 비교정치학자는 갈파했습니다.

즉, 정치학의 과학화는 비교를 통해서 가능해졌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비교를 통해서 나를 이해하고 남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는 상대적인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북한 또한 이 정치학의 명제에서 예외는 아닙니다. 제도 차원에서, 인물 차원에서, 사회문화 차원에서, 다양한 비교와 비교에 대한 질문을 통해 인식의 지평도 넓어질 것입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처음 소개하는 말이나 글은 평균치보다 높은 긴장감과 기대감을 동시에 안겨 줍니다. 그 팽팽한 두려움과 설레임이 주는 ‘새로운 각오의 즐거움’이 ‘통일로 가는 정치’의 첫 장을 열게 해 줍니다.” <‘통일로 가는 정치’를 시작하며, 월간중앙 2004, 1월>

이런 고민을 나누고 합의를 이루는 과정이 ‘통일로 가는 정치’의 시작이 될 것이다. 꼭 10년 전인 2004년 초, 필자는 시사지 월간중앙이 추진하던 정치포럼 콘텐트에 한 꼭지를 1년 여간 맡은 적이 있었다. 그 때 제목이 ‘통일로 가는 정치’였다. 1년 동안 대략 스무 편의 글을 썼는데 지금이나 10년 전이나 상황은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독재자가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바뀌었건만 크게 변했다고 느낄만한 부분도 거의 없는 현실이다.

그래도 남한 내부적으로 큰 변화의 닻은 올려졌다. 정작 북한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대통령 두 분도 하지 못했던(또는 안 했던) 보수 대통령의 ‘통일대박론’. 일개 무명의 필자가 바랐던 ‘통일로 가는 정치’가 국가원수에 의해 공식화됐다는 현상이 가장 큰 시대변화라고 자평할 수 있을까? 앞으로 10년이 어떻게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명확히 할 수 있는 일은 미래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재정리하는 일일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미래로 가는 진짜 시작인지 모른다. 다시 일어서려는 모든 자들이 무릎을 툭툭 털고 허리띠를 다시 쟁이듯이 통일의 역사는 실패로부터 다시 쓰여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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