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대박이란 ‘호객정치’에 현혹될 때 아니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사가 그간 수면 아래 숨죽여 있던 통일논의에 불을 지폈다. 보수 신문은 기다렸다는 듯 때 늦은 통일여론 형성 주도권 잡기에 뛰어들었고 가마솥처럼 끓어오르던 사회 갈등 속에 통일이라는 이슈 하나가 추가된 느낌이다.


대통령의 선언(?)대로 통일은 ‘대박’이기만 한 걸까? 사실 ‘대박’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무의미하다. ‘대박’의 의미에 대해 일치된 통합적 공감대 마련이 선행돼야 타당성을 따질 수 있다. 이를 위해 ‘통일이 대박’이기 위한 조건과 합의, 시나리오일지언정 그 로드맵의 완성이 그나마 토론 가능한 통일논쟁의 소재일 것이다. 그저 ‘통일=대박’이란 주장은 정치인의 공허한 주장에 그치기 십상이다.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는 현 북한체제의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럼 어떤 변화가 이론상 가능할까? 크게 두 가지 방식을 꼽을 수 있다. 첫째, 소련 및 동유럽의 경우처럼 체제 자체가 붕괴하여 탈 사회주의적 정치체제로 체제전환이 이뤄지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과 베트남처럼 기존 공산당 체제 아래 점진적 시장지향형 개혁을 이뤄가는 것이다. 전자를 ‘붕괴 시나리오’, 후자를 ‘개혁 시나리오’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독일사례 같은 붕괴 시나리오의 경우 북한 체제 붕괴 후 단시일 내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고, 개혁 시나리오의 경우에는 중장기적인 남북한 평화공존 체제를 거쳐 점진적인 통일로 나아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지난 10년간 자연스럽게 형성된 기조에는 북한의 붕괴보다는 개혁이 남북한 모두에게 보다 바람직하며 따라서 대북정책의 방향도 북한의 개혁을 유도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유는 북한이 일단 개혁과정을 거친 후 남북통일을 해야 사회경제적 ‘통일비용’이 훨씬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북한이 빨리 붕괴될수록 통일비용이 더 줄어든다는 주장(Eberstadt, 1999)도 있다.


통일은 나와 상대가 함께 겪어야 할 일련의 과정이자 결과의 총합이다. 더욱이 붕괴 시나리오든 개혁 시나리오든 궁극적으로 통일과정으로의 진입은 북한이 체제전환에 들어선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함정이 있다. 통일을 해야 한다는 남북한 각 체제의 ‘의지’는 있다고 보여지는데 북한이 체제전환 자체를 인정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남한이 사회주의 내지 공산주의 체제로 역행하여 통일을 이루고 싶을까? 자유주의와 자본주의 방식에 의한 통일마저 시큰둥한 여론이 비등한 현실에서 말이다.


그래서 한때 ‘통일 후'(Post-unification) 한국을 준비하자는 주장이 언론인을 중심으로 제기됐던바 있다. 그러나 ‘통일 후’ 연구 선행 주장은 통일 과정과 통일 후의 구분이 모호하고 통일 후 비전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인 동시에 통일 후에 이르는 여정이 사회 경제적 정책 선택 경로의 문제이기에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대박’ 호언에는 통일이 되면 북한경제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막대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북한이 실질적 경제개혁을 이뤄나가지 못할 경우 장기적 침체와 저성장 내지 제로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비관적 함의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지금 북한은 서른 살 청년의 철권통치가 판을 치고 있다. 협박과 회유가 시소처럼 반복되는 대남정책 또한 변하지 않았다. 한반도 주변에서는 중국 일본의 충돌이 가시권이다. 북핵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개혁을 시도한 모든 사회주의 체제는 내부 모순의 악화로 자멸한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칙(Kornai, 1992)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을 북한 정권이 정치적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경제회생에 추진할 리 없다. 사회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는 경제발전과 정치적 안정이 상쇄(trade-off)관계에 있다는 구조의 모순(Brezinski, 1989) 속에 북한이 특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북한에게는 체제안정이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에 개혁개방이나 체제 변환을 통한 통일은 요원하다. 결국 적화통일이라는 생존전략을 지속적으로 고수할 수밖에 없다.


통일은 이러한 한반도 안팎의 모든 변수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그러나 피할 수도 없는 한국이 정면돌파 해야 할 숙명과도 같겠다. 한반도 통일이란 ‘통일은 대박’이라는 길거리 프로모션 같은 호객으로는 섣불리 구매하기 어려운 명품과도 같다.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무부 차관보를 역임했고 ‘소프트 파워'(무력 이외의 것으로 남을 설득하는 연성권력)란 개념을 만들어 냈던 조셉 나이 교수는 꼭 10년 전인 2004년 포린 어페어(Foreign Affairs)지 기고에서 당시 강경했던 부시 행정부를 향해 ‘미국의 소프트파워가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먼저 듣는 법을 배워야 한다(America must first learn listening)’고 충고했다. 


이제라도 ‘통일 대박’ 같은 ‘호객 정치’ 대신에 ‘통일로 가는 정치’를 시작해야 할 때이다. ‘통일 정치’는 내치와 외치를 구분하지 않고 한반도 통일이라는 실현 가능한 가치를 향해 모든 유의미한 대내외 정치적 선택과 행위를 시작해야 한다. ‘통일 대박’이라는 구호에 현혹될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