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 독재청산 1순위는 ‘슈타지’…北 독재청산 1순위는?

통일 후 독일 정부가 추진했던 청산작업 첫번째 대상은 당의 ‘창과 방패’로서 공산 권력의 근간이 됐던 동독 국가안전부 ‘슈타지’였다. 이 일은 슈타지가 막강한 조직력을 갖고 있었던 만큼 매우 어려웠고, 이미 통일을 이뤄낸 지 한참 지난 시점까지 이와 관련한 잡음들이 끊이지 않는 것이 그 어려움을 말해주고 있다.

슈타지 청산작업의 가장 큰 난관은 이 기구가 남긴 방대한 비밀문건들로 인한 것들이다. 이 문서에는 슈타지의 활동 상황은 물론이고, 대(對) 서독 비밀공작에 대한 기밀 서류에서부터 서독 사회에서 활동했던 비밀요원들 그리고 서독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도청 서류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료들이 포함돼 있다.

독일 통일 직후 슈타지의 문서와 자료들을 처리할 임무로 설립된 가우크(Gauck) 청의 베를린 중앙본부와 14개 지부에 보관된 비밀문건의 분량은 800만 건에 달했고, 이를 일렬로 정리해놓는다면 그 길이가 무려 180킬로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4,000만개의 목록과 수십 만 건의 사진 및 비디오 음성 기록들도 슈타지 문서관리청이 보관하고 있다. 자료의 상태는 180킬로미터에 이르는 문서 중 58킬로미터 분량만이 정리된 상태고, 나머지는 정리되지 못한 채 그저 보관돼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 중 일부는 지난 1989년 동독 체제의 혼란기에 동독 공산당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파괴되는 등 손상된 서류만도 16킬로미터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슈타지 문서는 일반에게 공개하도록 돼 있고, 필요한 경우 열람을 허가토록 했다. 이에 따라 개인은 물론이고, 공공 기관으로부터의 열람신청이 폭주하고 있다.

개인 신청은 매달 3만 건, 공공기관으로부터의 문의도 3만 건 정도에 이르고 있는 상황이며 현재까지 340만 명의 열람 신청이 밀려있다. 이 슈타지 잔재들을 처리할 슈타지 문서관리청 직원이 무려 3천 명에 이르고 있으며 신청서류 처리와 열람자 동행, 서한 발송, 공공기관으로부터의 신청건수 처리 등 광범위한 일을 담당해내고 있다.

통일 후 선두에 서서 이 일을 담당한 인물이 現 독일 대통령인 요하임 가우크다. 목사 출신인 그는 동독 시절 슈타지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힌 사람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1940년 동독 메클렌부르크 주도(州都)인 로슈톡에서 태어난 가우크 목사는 평소 인권과 환경 및 평화 문제에 깊은 관심과 비판의식을 키워왔다.

그는 1986년 고르바초프의 신사고가 동유럽에 몰아치고 동독 내 민주의식이 싹트며, 대규모 탈출이 조직화되는 가운데, 매주 시국예배를 인도하고 대규모 시위를 이끄는 등 동독 사회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노이에스 포럼(Neues Forum)이라는 사회운동조직의 설립에 가담하고 스스로 대변인을 맡는 등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혼신을 다한 인물이다.

당시 노이에스 포럼은 재야활동의 중추로 국민의 뜻을 대표하고 사회주의 통일당(SED) 독재에 조직적으로 저항한 단체다. 1990년 5년 임기의 슈타지 문서관리 연방특별담당관으로 임명된 가우크는 1995년 압도적인 지지로 재선된 바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가우크 청’을 위해 10년 간 헌신했다.

그는 1991년 구 동독인사 엔스 라히히와 울리케 포페와 함께 민주인사에게 수여하는 테오도르 호이스 메달을 수상했으며, 1995년 동독의 무혈혁명에 기여한 공로로 연방봉사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슈타지의 처리문제는 한반도 통일과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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