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후 토지분쟁, 동독인 이용권 위주 해결”

동.서독 통일후 동독지역에서는 주로 원소유자인 서독인 토지 소유권자와 동독인 건물 이용권자 사이에 심각한 ‘가옥투쟁’이 벌어졌으나 동독인의 생존권 보장차원에서 다양한 법적 조치가 이뤄진 결과 외형적으로 통일이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윤철홍 숭실대 법대 교수가 29일 설명했다.

윤 교수는 이날 저녁 북한법연구회(회장 장명봉)가 서울 뉴국제호텔에서 ‘독일 통일후 동독지역에서의 토지 소유권과 상속권 문제’라는 주제로 개최한 월례발표회에서 “구동독 지역에서는 제 2차세계 대전후 사회주의 체제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사유재산의 몰수에 의해 소유권 질서가 재편됐다가 통일 후 다시 환원되는 과정에서 토지관련 소송이 통일후 5년간 400만건이나 제기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독의 법체계는 토지 소유권과 건물 소유권을 독립적인 권리로 인정함으로써 건물 소유권자가 토지이용권을 보유하게 됐고, 이러한 이용권은 토지 소유권보다 오히려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용권의 청산이 통일이후 독일 연방 정부에 큰 과제였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일 독일 정부는 물권정리법 등 각종 특별법을 제정, 건물 소유권과 토지 소유권을 결합시켰으나 서독인 입장에선 과도하게 동독인 토지이용권자를 보호한 점 때문에 위헌론이 제기될 정도였다.

발표회 사회자인 김상용 연세대 법대교수는 “토지 소유권자와 토지 이용자가 건물이나 토지에 대해 서로 매수를 청구했을 경우 (서독인) 토지 소유주에게는 (동독인의) 건물 값을 다 내도록 한 반면 동독 사람이 땅값을 낼 때는 2분의 1만 지급하도록 했고, 베를린 장벽이 있던 땅도 중간에 공지가 많았는데 원소유자가 무상으로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거래가의 20%를 내고 매수하게 세심하게 배려했다”고 설명하고, “위헌 소송이 제기됐지만 독일 헌법재판소가 합헌 판결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동독인의 경우 서독인에 비해 소득이 워낙 떨어져 땅값의 2분의 1도 못낼 형편이어서, 동독인에겐 ‘2등 국민’이라는 열등의식이 생겨나고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다고 윤 교수는 지적하고 “이런 감정은 쉽게 치유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통일 20년이 지난 오늘에도 완전히 치유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상속법의 경우, 기본적으로 통일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눠 통일이후엔 피상속인의 주소지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통일이전의 경우는 동독민법이 제정된 1976년부터 통일이전까지는 동독민법이, 동독민법이 제정된 1976년 이전 상속건에 대해서는 현행 독일 민법이 적용됐다.

특히 소련 점령 지역에서 토지개혁에 의해 강제수용된 토지의 경우, 소련이 자신들의 점령하의 강제수용 조치를 뒤집지 말 것을 요구했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독일 기본법(헌법)의 최고 목표인 통일이 이뤄질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소련의 요구가 받아들여졌다.

이에 따라 소련 점령하 몰수 토지에 대해선 “원상 회복이 아니라 보상”이 이뤄졌으며, 그것도 시가가 아닌 2차대전 피해자 수준에서 거래가의 5% 혹은 20, 30% 선에서 보상금이 지급됐다고 윤 교수는 지적하고 “토지 이용자를 위주로 한 이같은 조치는 법적으로 신속히 처리돼 동독 지역의 안정에 기여한 만큼 우리도 통일후 투기꾼이 활동하지 못하게 하고 북한 주민의 자유의사를 충분히 존중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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