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지원국 해제, 남북관계엔 약발 ‘제로'(?)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12일)와 북한의 핵불능화 복구 등 북핵 문제의 진전이 남북관계에는 아무런 긍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

북핵 문제 진전이 남북관계에도 긍정적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테러지원국 해제조치가 있은 지 일주일 이상 지난 20일 현재 상황은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대북 정책이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연계하는 것인 만큼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및 북한의 불능화 재개는 우리 정부가 남북관계를 풀어가기 위한 노력을 전개할 공간을 만들 것이라는 것이 많은 이들의 기대였다.

실제로 통일부는 지난 13일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계기로 대북사업의 재조정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혀 정부가 식량지원, 통신관련 자재.장비 제공, 개성공단 인프라 구축 등에 좀 더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북한은 이런 관측에 찬물을 끼얹었다. 북한은 16일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 경색의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면서 남북관계 전면 차단 가능성을 언급했다. 더불어 북한은 최근 매체를 통한 대남 비난의 빈도를 높이고 있는 양상이다.

북한의 이 같은 태도는 통일부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남북관계 정상화 행보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 내부의 기류다. 즉 정부가 테러지원국 해제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기존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을 높인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한 정부 소식통은 “테러지원국 해제 후 북한의 대남 비방 기조를 보면서 북이 과연 관계 개선에 나설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 섞인 시각이 정부 안에서 제기되고 있다”며 “우리 정부로서도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기 보다는 대북 관망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우리가 먼저 나서서 모종의 대북 조치를 취하기 보다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진상 규명 등을 위한 대화 요구에 북한이 반응할 때까지 기다릴 시기라는 시각이 우세하다”고 전했다.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시점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지나친 관심은 버릇을 나쁘게 할 수도 있다’는 이상희 국방장관의 지난 17일 워싱턴 발언은 우리쪽에서 나온 악재로 볼 수 있다.

이처럼 남북이 북핵 문제의 진전에도 불구, 관계를 정상화하는 방향과는 반대 쪽으로 나아가면서 현재 남북관계를 지탱하고 있는 개성공단 사업과 개성관광 및 민간 남북교류 마저 위태롭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북한이 지난 2일 군사실무회담에서 남측 민간의 대북 `삐라’ 살포 건을 문제삼으며 개성공단 및 개성관광과 관련한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언급한데 이어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통해 남북관계 전면 차단 가능성을 거론한 것을 단순한 `공갈’로 치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북한이 노동신문 논평원의 글을 `최후통첩’으로 삼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남북 관계 경색이 심화될 경우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고 있는 개성공단도 안전지대가 아닐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물론 북한의 대남 사업에서 개성공단이 갖는 의미와 공단 폐쇄에 따를 대외 이미지 악화, 3만4천여 북측 근로자 및 그 가족의 생계 등 고려요인들을 감안할 때 북한도 공단 폐쇄를 결정키는 어려울 것이란 게 대체적인 평가다.

그러나 북한이 내년 출범할 미국 새 정부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살 길’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할 경우 대남 압박을 통해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전환시키고 내부 체제 결속을 강화할 목적에서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현재 경제 문제가 최대 이슈인 남측 입장에서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는 개성공단 입주 기업들의 숨통을 죄는 도박을 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일관성있는 대북 정책을 펴나가되 최소한 불필요하게 북한을 자극하거나 우리의 대북 진정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은 없도록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북한은 자신들에게 올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공언한 조치를 이행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특히 최고 지도자 및 체제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양보나 타협이 없었다”며 “북한 변수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 신중한 대북 접근을 해야할 때”라고 말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