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지원국 해제’ 경제엔 호재..영향은 제한적

미국이 11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한다고 발표함에 따라 미국발 금융위기로 악재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 경제에는 오랜만에 호재가 날아든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이 20년 만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져나오고 경색 국면이었던 북핵 6자회담이 다시 진전 국면으로 접어드는 등 만성적으로 안고 있는 우리 경제의 북핵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았다.

평소 같으면 우리나라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를 늘리고 남북경협을 활성화시킬 수 있겠지만 글로벌 경제위기가 본격화하고 남북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는 심리적인 리스크를 줄이는데 만족해야 한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 국가신용등급.외국인 투자에 도움될까

우선 이번 미국의 조치에 따라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에 미칠 영향이 관심사다. 그동안 신용평가사들이 우리 경제의 지정학적 취약점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북핵 리스크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아직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북한 문제 탓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발표가 당장 신용등급 상향 조정의 근거가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북한이 미국의 행동에 화답해 전향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그에 따라 한반도 정세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가져올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북핵 검증 등 6자회담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그에 따른 훈풍이 남북관계의 해빙을 도우면서, 6자회담과 남북관계가 선순환을 미치는 단계에 접어들기까지는 아직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또 지난 9월 우리의 외화 외국환평형기금채권 발행에 악재가 됐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 악화설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가 갖는 북미 관계에서 갖는 상징성이 크고 향후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정세에 미칠 영향도 막대한 만큼 긍정적인 흐름이 당분간 지속될 경우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개선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외국인 투자에 미치는 영향도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북한 변수가 한국에 대한 투자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지만 이미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이 미사일을 쏴도 정작 우리 국민의 동요는 크지 않았고 외국인투자에 미치는 상관관계도 명확하지 않다는 점도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지정학적 리스크가 줄어들겠지만 북한 변수 때문에 하려던 투자를 중단하거나 계획에 없던 투자를 고려하는 상황은 아니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런 작은 변화가 뭉쳐 장차 획기적인 정세변화를 몰고 올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 개성공단에는 숨통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로 가장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은 개성공단이다.

실제 그동안 북핵 문제에 따라 개성공단 만큼 희비가 엇갈린 곳은 없다.

김영윤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전략물자 반출과 관련해 과거에 불가능했던 물자가 갈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된 것”이라며 “더 좋아지면 개성공단에 대한 외국기업의 투자도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지금은 노트북 컴퓨터마저도 대북 반출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이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로 북핵 문제가 대화 국면으로 접어드는데 그치지 않고 대북 전략물자 반출이 어느 정도 숨통을 트면서 침체일로인 개성공단의 회생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남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된 만큼 남북 당국간에 대화의 끈을 다시 이어야만 투자자들에게 긍정적인 환경이 조성될 것이란 견해도 나오고 있다.

또 미국의 대북 제재는 여러 규정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만큼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만으로 전략물자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대북 제재의 핵심은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적용된 적성국교역법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북핵 리스크가 조금 완화될 것”이라며 “개성공단 전략물자 반출이 다소 개선될 여지가 있지만 당장 여러가지 문제가 걸려 있는 만큼 효과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동북아 에너지.물류협력 촉매될까

이번 조치가 남북경협의 촉매가 될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명박 정권의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얼어붙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남북관계에 비춰, 그리고 식량난이 심각한 북한의 필요에 따라 남북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달 29일 러시아 방문 때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간 연결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용의가 있다고 밝힌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실어준다.

이 대통령은 당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과 직접 접촉할 준비가 돼 있고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북측이 요구한 2000년 6.15공동선언과 지난해 10.4선언에 대해 우리 측이 긍정적 입장만 표시한다면 남북 대화가 재개되고 양측의 경협은 물론 동북아 차원의 에너지.물류협력을 앞당길 수도 있을 전망이다.

실제 정부는 러시아 사할린으로부터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깔아 가스를 국내로 들여오고 전력도 연해주에서 북한의 전력망을 거쳐 수입하는 방안을 러시아와 논의 중이다.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북핵 문제가 풀리면 정부의 대북 지원에도 시동을 걸 수 있는 명분이 될 것”이라며 “남북러 에너지 협력 문제는 국내에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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