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국해제’ D-1…북핵협상 어떻게 되나

북한에 대한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조치 발효시점인 11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지만 북한과 미국간 검증협의가 진전 없이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이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 1차 시한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고 북핵 협상도 끝을 모르는 장기 교착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사실상 임기말에 몰리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임기를 감안할 때 지난 5년여간 지속돼온 다자협상구도였던 6자회담 구도가 와해될 수 있다는 성급한 관측까지 나돌고 있다.

하지만 북한과 미국간 기싸움이 고조될 수록 양측 수뇌부간 결단에 의해 막판에 국면이 전환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접점없는 검증협의= 6자회담 참가국들은 9개월여만에 어렵게 모였던 지난 7월 10~12일 6자 수석대표회담에서 현안인 검증협의에 대해서는 제대로 토론조차 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당시 비핵화 2단계 마무리를 위한 에너지 지원방안과 불능화 이행 등에 논의의 초점을 맞추는 자세로 일관했다. 대신 미국은 핵 신고 내용의 검증을 위한 원칙과 기본적인 이행지침을 담은 4쪽 짜리 이행계획 초안을 회람시켰다는 후문이다.

이 초안에 대해 북한은 한달이 다 되도록 특별한 회신을 보내지 않고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생각과 너무 괴리가 있기 때문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지난달 23일에는 싱가포르에서 비공식 6자 외교장관회담이라는 이벤트까지 진행했지만 박의춘 북한외무상은 핵 검증 문제만 나오면 ‘구체적으로 아는 것이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균형적 2단계 마무리’라는 기본원칙만 합의한 채 외무장관들은 기념사진만 남기고 헤어졌다.

외교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하면 북한은 합의문에 규정된 이른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천착하고 있다.

10.3합의에는 북한이 이행해야 하는 조치로 불능화와 함께 ‘완전하고 정확한 신고’를 규정하고 있지만 검증에 대한 내용은 없다.

따라서 북한은 핵신고서에 담은 내용을 검증하는데 반대하지 않지만 검증 체계 마련을 테러지원국 해제의 전제조건으로 삼는 데는 반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10일 “검증체제 논의와 관련해 북한과 미국은 미국이 제시했던 검증이행계획서를 중심으로 논의를 하고 있지만 문제는 검증의 대상이나 검증방법, 그리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역할 등 몇가지 문제에 관해 아직도 북한이 이견을 좁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행정부가 의회에 테러지원국 해제를 통보하고 45일이 지난 날(11일)부터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서명을 거쳐 ‘테러지원국 해제가 발효한다’는 서면통지를 의회에 보냄으로써 해제 조치를 발효할 수 있지만 북핵 검증체계 구축 및 이에 따른 검증활동 개시를 발효의 선결 조건으로 삼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한동안 중시하지 않았던 우라늄농축문제 뿐 아니라 핵 확산 의혹에 대해서도 확실한 검증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북한이 현재의 비협조적 자세를 유지할 경우 이른바 1차 시한인 11일은 ‘그냥 지나칠 수 있다’는 게 한.미 외교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물론 11일까지 검증체계가 구축되지 않는다고 해서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니다. 외교 소식통은 “8월11일 이후라도 검증체계가 구축되면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는 발효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1차 시한이 지나도록 테러지원국 해제가 발효되지 않을 경우 2단계에 규정된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미국이 무시했다면서 반발할 가능성이 높다.

◇불능화와 에너지 지원 = 6자회담 참가국들은 비핵화 2단계 조치를 담은 지난해 `2.13합의’에서 북한의 핵시설 폐쇄 및 불능화 조치에 대한 상응조치로 중유 100만t에 상당하는 경제.에너지 제공을 약속했다.

`북한의 납북WK문제 해결 이전에는 지원에 참여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일본을 제외한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가 이 합의에 따라 의무 사항을 이행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2월 4만6천t, 3월 5만4천t, 6월 3만4천t 등 모두 13만4천t의 중유를 제공했고 중국은 중유 5만t과 함께 중유 8만7천34t에 해당하는 경제지원을 했으며 남한은 중유 5만t과 중유 6만5천878t에 상당하는 에너지관련 장비와 자재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중유 10만t을 전달했다.

지금까지 예정량의 절반 정도가 지원된 셈이다.

6자회담 참가국들은 또 9개월여만에 열린 6자 수석대표회담 합의(7.12 합의)를 통해 불능화와 경제.에너지 지원을 10월까지 마무리하기로 합의했다.

현재 북한은 2단계의 중요한 조치인 사용후 연료봉 인출 속도를 나머지 6자회담 참가국들의 에너지 지원 속도에 맞춰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 지원 실무회의 의장국인 한국은 가급적 계획대로 에너지 지원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특히 중유 대신 설비 지원을 맡은 한국은 지난 2∼6일 정부 관계자 3명을 북한에 보내 실무협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이번 협의를 통해 환강 600t과 박강판 80t 지원 문제 등을 협의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약속한 불능화 조치 11개 중에서는 8가지가 완료됐고 ▲폐연료봉 인출 ▲미사용연료봉 처리 ▲원자로 제어봉 구동장치 제거 등 3개 조치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사용후 연료봉을 빼는 속도를 원래대로 회복시키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북은 에너지 지원에 얼마든지 맞춰 할 수 있으니 걱정말라고 한다”면서 “8천개의 연료봉 가운데 현재 55% 정도가 추출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볼 때 불능화와 에너지 지원은 대체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과 중국이 담당한 비중유 잔여분은 계약 기준이기 때문에 서두르면 8월말까지 충분히 마무리할 수 있으며 중유 지원도 10월까지는 무리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폐연료봉 제거작업도 속도를 높이면 약속된 시간 안에 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 10월까지 모든 일을 마치자면 지금보다 훨씬 지원속도를 높여야 하는데 일본의 참여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10월까지 납북자 문제에 진전이 이뤄져 일본이 동참한다면 문제는 간단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다른 대책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대안은 일본이 지원해야 할 중유지원분을 나머지 4개국이 분담하고 추후 일본이 이를 보상하는 방안이다.

이에 따라 11일부터 이틀간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리는 북한과 일본간 국교정상화 실무회의 결과가 주목된다. 일본이 에너지 지원에 참여할 경우 에너지 지원의 속도가 제고되는 것은 물론 전체적인 협상 동력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서는 북한이 지난 6월 약속한 납치 피해자 재조사 방법과 시기에 대해 어떤 방식을 제시할 지가 최대 초점이 되고 있다고 외교소식통이 전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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