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총선, 이슬람주의 압승에는 다 이유가 있다

터키 총선이 이슬람주의 여당의 승리로 마감되었다. 터키 총선이 관심을 끈 것은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려는 여당에 맞선 ‘세속주의’ 야당의 격렬한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이슬람주의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22일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은 46.7%의 득표율로, 전체 550석 가운데 절반을 훌쩍 뛰어 넘는 341석을 차지했다. 세속주의 성향의 대표 야당인 공화인민당(CHP)과 국민행동당(MHP)은 각각 20.9%. 14.3%를 득표, 112석과 70석을 얻는데 그쳤다.

정의개발당은 2001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53) 현 총리가 창당하였다. 2002년 총선에서는 두 개 당만이 의회에 진출했는데 35%의 득표율로 352석을 차지했었다.

정의개발당은 2002년 집권한 후 연평균 7.3%에 달하는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켜 국제통화기금(IMF)의 관리 체제 하 터키 경제를 회생시켰고, 유럽연합(EU) 가입 협상을 시작하는 등 친서방 노선을 견지해 온 것이 선거 승리의 주 요인으로 분석된다.

여당의 압승에도 불구하고 요동쳤던 정국 안정은 두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번 총선은 여당의 이슬람주의 강화에 맞선 야당의 공세로 조기에 치뤄졌다. 비록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앞으로 있을 대통령 직선제를 위한 국민투표에서 기선을 제압한다는 것이 야당의 다짐이다.

터키는 대통령을 의회에서 뽑는 간선제이다. 지난 4월 의회를 장악한 AKP는 세속주의 성향 현 대통령의 후임으로 AKP 소속의 압둘라 굴 외무장관을 선출하려 하였다. 이에 세속주의 야당과 군부, 헌법재판소가 격렬히 반대해 결국 무산시켰다.

세속주의 전통 군부가 적극 지지

세속주의 지지자들은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시작하였으며, 에르도안 총리와 이슬람주의 정부의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자 에르도안 총리는 야당이 요구한 조기 총선을 수락하고 대통령 간선제를 개혁하겠다는 발표로 국면돌파를 시도했다.

세속주의 세력이 거세게 저항한 데는 여당이 이슬람 전통 스카프의 공공장소 착용 금지 규정을 폐지하고 알코올 판매를 규제하려 하는 등 터키의 정교분리 전통을 훼손하는 시도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정권에게 세속주의의 마지막 보루였던 대통령마저 내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터키는 인구의 99%가 이슬람교도인 이슬람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슬람주의에 반대하는 대규모 군중시위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은 터키만의 세속주의적 전통 때문이다. 특히 세속주의가 군부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여당의 이슬람주의에 군부마저 반기를 드는 데도 같은 배경이 깔려 있다.

터키인들은 터키 독립의 영웅인 케말 파샤 장군을 국부로 추앙하며 아타투르크(터키어로 아버지)라 부른다. 터키 군부는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며 국가의 파수꾼이자 헌정수호집단으로 국민의 존경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제 1차 세계대전 패배 직후 식민지로 전락할 위기에서 케말 파샤 장군을 중심으로 나라의 독립을 수호하고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설립한 전통에 따른 것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 최고 국가지도자들이 민간인 출신이지만 군부는 국가안보회의를 장악하는 등 국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군부는 이미 4차례 걸친 쿠데타로 독재나 이슬람 정권을 축출한 전력도 있다. 군부는 케말 파샤의 건국이념을 수호하는 것을 자신의 절대적 의무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케말 파샤는 터키의 근대화를 주창하며 이슬람을 정치에서 철저하게 배제하는 입헌민주주의를 확립했다. 터키어 표기방식이었던 아랍 문자를 로마식 알파벳으로 바꿨으며 학교에서는 아예 이슬람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했다.

아랍과 이슬람에서 탈피해 서구식 근대화를 이루는 것만이 터키가 나아갈 길임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따라서 터키인들에게는 케말 파샤의 정교분리, 세속주의의 정신이 건국의 이념으로 각인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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