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칼럼] 북한 핵공격 능력 약화없이는 제재해제도 없다

지난 11월 8일 예정했던 미북 고위급회담이 북한의 일방적인 통지로 연기되었습니다.

미국은 북한의 회담 준비가 미흡하여 연기되었다고 하였지만 사실 회담의 의제 문제를 둘러싼 미북 사이의 견해가 충돌하여 회담이 불발되었습니다.

11월 2일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은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조치에 상응하게 대북제재를 완화해 주지 않으면 핵 개발을 부활시키겠다’면서 이번 회담 의제를 대북제재 완화로 좁혔습니다.

이에 맞서 미국은 북한이 지금까지 취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나 미사일 발사대의 부분적 해체를 비핵화 조치로 볼 수 없으며 비핵화 과정이 검증을 통해 증명되기 전에는 대북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대북제재 해제 조건을 놓고 미국과 북한이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 러시아는 물론 한국에서도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사일발사장 해체를 비핵화의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해야 하며 미국이 신뢰 조성을 위해 대북제재 완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울려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논점은 제재 완화 시작에 필요한 조건을 북한이 지금까지 한 조치들 정도면 충분하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핵 리스트 제출과 같은 진정성 있는 조치로 볼 것인지에 대한 문제입니다.

핵 협상에는 핵무기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핵 폐기 협상과 핵무기의 보유는 인정해주되 핵 공격 능력을 약화하는 핵 군축협상이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시기 핵 완전폐기 협상을 벌려 남아공, 우크라이나, 벨라루시, 카자흐스탄 등 핵보유국들의 핵무기를 2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다 폐기해버리고 그에 상응한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였습니다. 이러한 핵 폐기 과정에서 선차적인 문제는 핵시설 신고이며 핵시설신고서에 기초하여 동시적이고 전면적인 핵 폐기를 진행하는 것이 지금까지 적용된 보편적 핵 폐기 원칙이며 과정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북한과의 핵 협상에서 이러한 보편적인 원칙을 적용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북한, 한국, 중국, 러시아 등은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적대관계라는 특수한 요인이 있으므로 북핵 문제해결에서 보편성의 원칙을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이 주장하는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단계적으로 비핵화로 가자는 제안은 시작부터 핵 폐기 협상이 아니라 핵 군축협상을 통해 비핵화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핵 공격능력이 1%도 약해지지 않은 조건에서 일부 핵시설폐기에 대한 상응 조치로 대북제재의 부분적 완화를 시작하면 결국 북한을 잠정적으로나마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일 북핵 협상이 핵 군축협상으로 가닥 잡히면 비핵화 과정은 상당히 길어질 수밖에 없으며 북한의 핵 공격능력은 없애지 못하면서 북한의 수많은 핵시설을 하나씩 폐기하는 데 대한 상응 조치로 대북제재를 연속적으로 해제해주는 상황이 펼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핵 리스트를 받아내고 북한의 핵 공격능력 일부라도 해체하는 조건에서 대북제재 일부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 돌려야 할 문제는 북핵시설의 단계적 해체와 함께 북한의 핵 공격능력의 단계적 약화입니다. 북한의 핵 공격능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한 남북 사이에 아무리 재래식 무력에서 군축을 하여도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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