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제2차 북미정상회담의 개최지가 베트남 하노이로 결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베트남 방문이 갖는 경제적 의미에 시선이 집중됐다. 지난해 경제건설에 총력을 집중한다는 새로운 전략 노선을 채택한 북한이 베트남의 개혁개방 모델에서 경제발전의 해법을 찾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주를 이뤘다.
실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도보 다리를 걸으며 “베트남의 개혁개방 모델을 추진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베트남의 경제발전 모델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국외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베트남식 개혁개방 정책 ‘도이모이’. 과연 ‘도이모이’는 지금의 북한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은 최근 ‘북한 정상국가로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북한 경제 전문가인 박은주 고려대 공공정책연구소 연구교수의 대담 자리를 마련했다.
이번 대담에서는 개혁개방 이전의 베트남과 현재 북한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 ‘도이모이’는 무엇인지, ‘도이모이’가 북한의 경제발전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무엇인지 등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서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이에 데일리NK는 ‘북한 정상국가로 가는 길-경제편(Part 1)’의 핵심 내용을 문답식으로 정리해 소개하고자 한다. 태 전 공사와 박 연구교수의 대담 전체 내용은 국민통일방송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태 전 공사와 박 연구교수의 대담 일문일답.
태영호(이하 태): 김정은은 북한의 개혁개방 모델로 베트남을 선택했다. 과거 60~70년대의 베트남은 북한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였지만 현재 상황은 뒤바뀌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박은주(이하 박): 북한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있던 베트남이 고도의 발전을 하게 된 것은 모두 과감한 경제 개혁개방 정책을 편 덕분이었다. 구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국가들이 붕괴하기 시작한 1986년, 베트남은 상황을 냉정히 평가해 경제적으로 공산주의 시스템을 포기하는 ‘도이모이’ 정책을 도입하고 농업개혁을 시작했다. 반면, 북한은 이때 위기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폐쇄적인 계획경제 방식을 고집해 개혁개방의 때를 놓친 것이, 베트남과 북한의 운명을 바꿔놓은 것이다. 베트남 내부에서도 개방파와 신중파가 충돌했지만, 결국 국민적 개혁 요구를 받아들여 시장을 개방해 지금의 베트남을 만들었다. 핵심은 바로 베트남 지도층이 경제발전을 바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한 것이다.
태: 북미 정상회담이 베트남 하노이가 결정되었을 때, 사람들은 김정은이 베트남의 개혁개방 경험을 배울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베트남식 개혁개방, ‘도이모이’는 무엇인가?
박: ‘도이모이’란 베트남어로 ‘변경한다’는 뜻 가진 도이(dổi)와 ‘새롭게’라는 뜻을 가진 모이(mới)를 합친 말이다. ‘쇄신’이라는 의미다. 베트남 개혁개방 정책인 ‘도이모이’의 특징은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의 기본 골격을 유지하고 경제적으로 시장개방을 통해 해외자본을 적극 유치하는 정책이다. 즉,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는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이다. 1986년 개최된 베트남 공산당 제6차 당대회에서 처음 제기된 정책으로,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내 경제개혁과 대외 개방을 동시에 추진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태: 지금 국제사회나 한국의 많은 전문가는 ‘북한이 베트남의 경제 모델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는 이유가 무엇일까?
박: 중국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 도입에 성공했지만, 규모와 인구수 차이가 너무 커 성장을 위한 초기 조건이 너무 다르다. 그래서 중국 모델의 북한 적용이 어렵다. 헝가리는 규모 면에서는 비슷하지만, 개혁개방 초기 이미 민주주의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체제가 유지된 국가가 아니기에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규모가 상대적으로 비슷하고 체제 유지를 기반으로 개혁개방에 성공한 베트남 모델이 주목을 받는 것이다. 베트남은 북한과 정치적, 경제적, 구조적 초기 조건이 비슷하고 미국과의 전쟁 경험이 있어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점 등 유사한 점이 많다.
태: 베트남 개혁개방이 북한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박: 먼저 베트남의 농업개혁이다. 베트남은 1988년 4월 5일 ‘정치국 결의 제10호’에 따라 ‘농가계약제’ 실시했다. 이로 인해 농민이 생산 품목을 정하고, 생산된 농산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게 돼 베트남 국민 개개인의 경제적 자율성이 엄청나게 높아지게 됐다. 이 정책은 토지의 장기사용권을 주는 것도 수반돼야 했다. 농업개혁은 베트남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했을 뿐 아니라 베트남에 자본주의 제도와 소유의 개념을 이식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태: 농업이 발전하면서 생활이 안정되고 다른 산업들에 대한 발전도 있었을 텐데, 어떤 것들이 있었나?
박: 베트남은 경공업을 발전시켰다. 경공업은 초기 경제발전 단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섬유나 식품, 신발 같은 잡화, 생필품 등의 소비재 산업이 중심이다. 경공업이 발달하면 북한 주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될 수 있어, 경공업의 발전은 매우 중요하다. 북한 주민들이 생필품을 지금처럼 중국에서 계속 수입해 쓴다면 외화 낭비가 심해지고 국가의 경제발전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경공업을 발전시켜 저렴하고 질 좋은 상품을 해외에 수출한다면 외화를 벌어들일 수 있고, 더 나아가 새로운 기술 개발 및 도입도 추진할 수 있으므로, 경공업 육성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태: 최근 북한에도 과자나 초콜릿을 비롯해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물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북한이 경공업에 투자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해도 된다고 보나.
박: 그렇다.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북한에서는 기계공업과 경공업을 중심으로 생산력이 회복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현재 북한은 평양 인근에 식음료공장 등을 신규 건설하고, 경공업 분야를 중심으로 설비 현대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가 주도로 경공업을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히 나타나는 대목이다. 또 북한 당국은 북한의 경공업 부문 공장과 기업소에 신상품 개발과 국내외 시장전략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한에서 기업소는 더 이상 단순히 계획된 제품을 생산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적 투자와 경쟁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형적으로 시장경제체제에서 많이 나타나는 행태다.
*편집자 주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 대외에는 평화와 관계 개선을, 내부적으로는 경제개발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한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한 비핵화 진전과 내부적인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상국가 건설에 주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도 않을 것이고 유화적 태도도 대북 제재를 해제하기 위한 꼼수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북한이 이야기하는 정상국가와 우리가 바라보는 정상국가 개념이 상이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은 태영호 전(前)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각 분야(정치, 사회, 경제, 인권, 통일 등)별 전문가와의 대담을 통해 북한이 개혁해야 할 문제들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해법과 앞으로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