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절 동원에 北주민 “4월이 가장 죽을맛”

4월이면 북한의 산과 들에는 진달래가 분홍빛 꽃잎을 화사하게 편다. 그러나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힘겹게 겨울을 난 주민들은 봄의 화사함을 즐길 새가 없다.


국가 최대명절인 태양절(4월15일, 김일성 생일)이 있는 4월은 월초부터 당국이 주도하는 태양절 관련 각종 회의와 강연, 행사 등에 동원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식수절(5일), 김정일 국방위원회 위원장 추대일(9일), 인민군 창건일(25일)도 있다.


우선 ‘김(金)씨 일가’에 대한 충실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위생검열이 시작된다. 도에서 조직된 검열대가 각 가정을 돌며 김일성·김정일의 초상화 관리 상태를 점검한다. 보통 1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는데 초상화에 먼지가 있거나, 초상화가 걸려있는 벽에 자그마한 흠집이 있어도 ‘불합격’ 딱지가 붙고, 해당 당사자는 비판회의에 소집된다. 


또한 인민반, 청년단체, 학생단체 등은 월초부터 ‘태양절을 높은 정치적 열의와 성과로 맞이하자’는 구호 아래 태양절 경축행사 연습에 돌입한다.


중학교 3학년부터 6학년 학생 중에서 100여 명을 선출해 태양절 당일에 진행되는 사열식 훈련을 시작한다. 사열식에 참가하는 학생들은 태양절 십여 일 전부터 수업을 전면 중단하고 훈련만 한다.


사열식 훈련에 참가하지 않는 중학생들은(3~6학년) 대부분 카드섹션을 하기 위한 배경대 훈련(그림과 글씨가 새겨진 종이를 들고 신호에 따라 폈다 접었다하는 것)에 동원된다. 평양 ‘5월1일 경기장’에서 매년 ‘외화획득’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집단체조 ‘아리랑’에서도 배경대의 활동은 눈에 띈다. 지방에서도 소규모지만 이와 같은 행사를 진행한다. 이처럼 국가 중요행사 때마다 진행되는 배경대 활동은 북한 당국의 자랑거리다.


평양에서와 마찬가지로 각 지방에서도 태양절 당일에 도에 위치한 경기장에서 배경대 활동을 선보인다. 순식간에 바뀌는 그림과 글자를 맞추어야 빛이 나기 때문에 이 기간 학생들은 군대보다 더 강한 훈련을 강요당한다. 눈치가 없는 학생들의 경우 심한 욕을 듣기도 한다.


소학교 3, 4학년과 중학교 1, 2학년은 가창대 훈련(학생들이 꽃다발을 들고 하루 종일 거리를 행진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한다.


소년단 입단 대상(9, 10세)들은 행사전날까지 빨간 넥타이를 매고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위하여 항상 준비하자’는 구호를 외치며 사열식을 준비한다. 행사 당일에는 학생들에게 넥타이를 매어주고 소년단 입단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린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부터는 학생들이 태양절 행사 준비에 많이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만성적인 경제난 등으로 사회기강이 많이 허물어지면서 저소득층의 자녀들이 ‘가사를 도와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훈련에 빠진다. 이 때문에 학생이 많이 빠진 학급을 지도하는 교사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소학교 교사로 재직했던 탈북자 정란이(43세) 씨는 “가창대 등의 평가는 학급별 참가 인원수에 따라 정해진다”며 “학생들이 부모를 따라 장거리 장사를 다니는 집이 많아 훈련에 많이 빠져 지도원으로부터 비판을 밥 먹듯 들었다”고 회고했다. 


여맹원들도 매일 한복을 차려입고 동사무소로 출근, ‘충성의 노래 모임’ 연습을 해야 한다. 각 여맹별로 경쟁을 붙여 합격이 되는 순서대로 집에 보내기 때문에 ‘합격’ 통과를 받지 못한 가정주부들은 밤늦도록 노래와 춤을 연습하기도 한다.


태양절 행사가 끝나면 참가열의, 참가일수 등을 가지고 충실성 총화를 하기 때문에 여맹원들은 자신은 물론, 부모나 아이들이 아파도 훈련에 참가하게 된다.


함경남도 함흥에서 여맹생활을 했던 탈북자 신은경(48세) 씨는 “태양절 충성의 노래모임 때문에 이혼까지 했다”고 가슴 아픈 사연을 전하기도 했다. 노래모임에 참가하면서 십여 일간 장마당에 나가지 못해 남편과 심하게 다투게 돼 결국 이혼하게 됐다고 신 씨는 전했다.


태양절 준비 이외에도 식수절(식목일)인 5일엔 직장별, 인민반별, 인민학교(소학교)별로 나무심기에 동원된다. 나이가 많건 적건 직접 깊은 산에 가서 나무를 떠와(캐와) 자신에게 할당된 곳에 심고, 해당간부에게 확인받아야 한다.


보통 ‘뙈기밭’으로 일궈졌던 곳에 심어지기 때문에 5월 중순경이 되면 이 나무들은 주민들에 의해 다시 뽑힌다.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수수 등을 심기 때문이다. 때문에 십 수 년이 지나도 여전히 북한엔 민둥산 그대로다. 식수절은 형식적인 행사가 된지 오래다.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추대된 날인 9일에는 여맹원들과 청년학생들이 참가해야 되는 기념집회가 있다. 또한 25일은 조선인민군 창건 기념일이다. 각 가정마다 인민군 지원차원으로 돈이나 세면비누, 치약 등 생활용품 등을 거둬야 한다. 때문에 취약계층은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이처럼 4월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저소득층 사람들은 각종 행사에 동원되면서 장마당에 나가는 날이 한 달 중 4, 5일 밖에 되지 않는다. 봄은 왔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북한 주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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