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탈북자 정책 강경으로 선회하나?

최근 카싯 피로미야 태국 외무장관이 오영선 태국 주재 북한대사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더 이상 탈북자들의 망명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탈북자 단속을 강화해달라’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향후 탈북자들이 태국 루트(경로)를 통해 한국에 입국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은 관련 당사국과 정치·외교적 마찰을 최소한 한다는 입장에서 탈북자를 밀입국자로 간주하면서도 강제북송은 하지 않고 제3국행 정착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태국은 남한과는 1958년, 북한과는 1975년 수교를 체결해 사실 양국의 입장을 모두 살펴야 하는 상황이다. 태국은 1951년 체결된 ‘난민지위에 관한 유엔협약’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유엔난민고등판무관의 자국 내 활동을 허용해왔다.

태국은 난민협약을 체결한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탈북자가 태국으로 갔을 경우 난민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불법입국자로 처리해왔다. 그래서 탈북자들은 태국의 현행법상 불법입국자로 취급돼 2천~6천 바트, 원화로는 약 8만~24만원의 벌금을 물거나 그 벌금액수에 해당하는 10~30일 만큼의 구류처분을 받은 뒤 추방절차를 밟는다.

태국의 이러한 탈북자 처리 지침에 남북한 모두 그동안 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아왔다. 태국 주재 한국대사관은 탈북자 문제가 외교적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조용한 외교’ 방침을 유지해왔다. 북한도 태국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할 마땅한 수단이 없어 이러한 관행을 지켜보는 수준이었다.

◆탈북자는 왜 태국루트를 선호하나? = 탈북자들은 북한을 탈출한 이후 북향의 몽골 루트와 남향의 라오스, 베트남, 태국, 캄보디아 등의 남아시아 루트를 통해 북송 위험이 있는 중국을 탈출해 한국행을 모색해왔다.

중국에서도 선박과 항공을 이용해 한국행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지만 출입국 과정에서 탈북자라는 신분이 노출될 위험성이 있고, 한국행에 필요한 여권과 항공료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한국돈으로 800만원~1천만원 이상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시도 자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몽골 루트는 사막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몽골 국경까지 도달하기 쉽지 않고, 겨울철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몇 해 전부터 점차 줄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해 태국 루트는 탈북자들 사이에 서울행이 가장 빠른 급행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선호되고 있다. 중국과 라오스 국경을 넘고 다시 배를 타고 메콩강을 질주하면 태국 국경지역에 도착할 수 있고, 이후 버스 등을 이용 이민국 수용소가 위치한 방콕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중국-라오스 국경 지역까지 도착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 검문소를 피해야 하고, 라오스 국경 근처에서도 중국 공안의 체포 위험이 여전하다. 따라서 탈북자들은 밤 시간대를 이용해 도보와 차량으로 이동한다.

태국으로 가기 위해 메콩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4시간 반 가량 배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무장한 라오스 국경수비대의 검문이 있을 수 있다.

2003년 40명에 불과했던 태국 입국 탈북자 수는 수년 전부터 연간 수백명으로 불어난 실정이다.

베트남 정부도 태국 정부와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 탈북자를 인정하지 않는 소위 ‘묵인’ 정책을 취해 왔었다. 그러나 2004년 7월 400여명의 탈북자들이 대거 한국에 입국한 사건 당시 베트남 정부의 협조 사실이 알려지면서 북한 당국의 강력한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 정부는 집단 입국 과정의 비밀 합의가 드러나자 한국 정부에 강한 유감을 표시하고 탈북자에 대한 관용적인 정책을 철회했다.

◆태국내 탈북자 보호시설 및 현황 = 태국의 이민국수용소는 메사이, 창센, 그리고 수도인 방콕 등 3곳에 있다. 이 중 많은 탈북자들이 수감된 곳은 방콕 이민국수용소다. 이 시설에 탈북자들이 수감된 방은 260㎡(80평)으로 적정 수용인원은 120명이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여름에는 수용시설에 최대 420명이 넘는 탈북자가 수용되면서 탈북자들의 강한 불만이 표출되기도 했다. 수용시설 내는 썹씨 40도를 웃돌아 소화기 질환과 눈병 등이 빈발했다.

수용시설이 부족하다 보니 새우잠을 잘 공간도 부족해졌고 1만 바트, 한국 돈으로 약 30만원의 자릿세를 내야 하는 뒷거래가 이뤄지기도 했다. 또, 현지 한국대사관의 방침으로 가족 이외에는 면회가 금지돼 인권활동가들의 도움도 미치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태국 수용소에 수감된 탈북자 400여명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이후에도 꾸준히 입국 절차가 진행되면서 현재는 수용시설에 70여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행에 소요되는 시간도 과거 2~3개월에서 현재 20여일로 단축됐다.

◆향후 태국 루트에 어떤 변화가 있을까? = 이번 카싯 태국 외무장관의 발언이 태국의 탈북자 정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 탈북자와 관련 단체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태국은 주변국에서 불법 입국자가 끊이지 않아왔다. 탈북자들뿐만 아니라 주변국인 라오스, 베트남 등으로부터 불법 입국자들의 유입이 계속되고 있다. 그만큼 태국이 불법입국자에 대한 처벌에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태국 국경 일대 난민촌에는 최소 10만명 이상의 밀입국자가 수감돼 있다.

이번 카싯 태국 외무장관의 입장 표명이 당장 태국 정부의 탈북자 정책의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우리 정부는 판단하고 있다. 카싯 장관의 발언은 급증하는 탈북자에 따른 관리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북한 당국에 탈북자 정책이 친남한적인 태도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태국 정부가 기존 입장을 바꿔 탈북자에 대한 입국을 강하게 단속하거나 중국 또는 북한으로 돌려보내는 방침을 세운다면 이후 한국과의 외교적 마찰과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감수하기도 쉽지 않다.

실례로 2006년 8월 태국 경찰이 방콕의 민간 가옥에 숨어있던 탈북자 175명을 연행해 벌금형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직후 EU의회가 나서 이들에 대한 조속한 제3국행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발표하는 등 국제사회의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이번 카싯 태국 외무장관의 입장에 대해 태국주재 한국대사관은 “태국 외무부 실무자와 접촉해본 결과 장관의 발언은 북한-태국 양국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으로 탈북자에 대한 태국 정부의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태국에서 탈북자를 지원하고 있는 한 인권활동가는 “태국에서 탈북자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한국정부의 문제”라며 “해외에서도 대한민국은 인권을 중시하고 탈북자문제에 있어서는 ‘보호와 조속한 한국행’이라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설사 태국 루트가 막힌다 할지라도 탈북자들의 제3국에서의 한국행이 막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 태국 루트도 현지 활동가들이 발견한 루트 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탈북자들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한국행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