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 목숨 건 탈북 현장 두만강을 가다



▲ 두만강 중국 쪽에서 바라 본 북한 지역. /사진=김성환 데일리NK 기자

북한과 중국의 국경선 역할을 하고 있는 두만강은 탈북청소년들에게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레테의 강’처럼 모든 고통을 잊게 해주지 못한다. 신화속에선 이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고통스러웠던 모든 기억을 잊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다. 하지만 두만강은 이와는 반대로 오히려 고통을 떠오르게 한다. 차디찬 두만강을 건너며, 목숨 건 탈북을 했던 기억 때문이다. 

목숨걸고 건넌 두만강…‘고량주’를 따라주던 낯선 중국 남성

지난달 실시된 통일순례단에 참여한 탈북 청소년 허서영(가명·22) 학생은 고량주를 따라주던 낯선 남성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2011년 경 두만강을 건넌 후 탈북을 도와준 중국 남성이 따라줬던 고량주 한잔을 잊을 수 없다는 것.

초겨울 무렵에 탈북한 서영 학생은 “두만강을 비롯한 접경지대의 경비가 삼엄했기 때문에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겠다’는 각오를 하고 강을 건넜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서영 학생은 이어 “(탈북 루트를 점검하기 위해) 낮에 눈으로만 봤던 두만강과 밤에 직접 몸으로 느꼈던 두만강은 너무도 달랐다”면서 “두만강을 건넜던 짧은 시간이 마치 영겁과도 같이 느껴졌다”고 소회했다.

그러면서 서영 학생은 “건너 왔을 때 제일 처음 봤던 것이 (중국 영토로 진입을 막는)철조망이었다”면서 “(철조망을 보자마자)이제 나는 여기서 죽겠구나”라고 망연자실했던 기억도 떠올렸다.

하지만 다행히도 중국 내 협조자가 자신을 찾아냈고 모처까지 데려가 “고생했다, 이제 괜찮다”고 말하며 고량주 한잔을 따라줬다고 서영 학생은 전했다. 그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극도로 긴장한 채 차가운 물속에 오랫동안 있었던 나를 위한 배려같았다”며 “독한 고량주 한 잔이 들어가자 몸이 따뜻해지고 정신이 조금 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 통일순례단 단원들이 배를 타고 북한 지역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김성환 데일리NK 기자

탈북 청소년,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 도와야

이번 통일순례단에서 만난 탈북 청소년들은 탈북과정에서 겪었던 심리적 고통 때문에 정신적 상처 즉,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고 있었다. 사선(死線)을 넘는다는 심리적 압박과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상처가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그들은 중국에서 느꼈던 정신적 공포가 더 컸다고 말했다. 순례단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중국을 방문한다는 점이 이들에게 가장 걸렸다. 과거 그들이 느꼈던 ‘잡혀 갈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었다.



▲ 두만강변을 유람하는 사이, 중국 세관을 통과한 트럭 한 대가 북한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김성환 데일리NK 기자

김경옥(23·가명) 학생은 “순례단 참여를 많이 망설였다”면서 “탈북 후 3개월 정도 중국에 숨어 있었는데 그 불안감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최미진(22·가명)학생도 “지금도 꿈에 나올 정도로 (중국에서) 숨 죽여 살던 모습은 선명하다”면서 “몇 번을 고민했지만 이렇게라도 고향 땅을 보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신적 공포는 한국 정착과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한 탈북 학생은 “중국에서 제일 무서웠던 것이 공안(公安, 우리의 경찰)이었다”면서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한국에 와서 경찰을 보고 나도 모르게 도망치고 심지어는 주차되어 있던 차 밑으로 기어들어가 숨은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지금은 그런 불안감이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죄지은 것도 없는데 경찰을 보면 피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통일순례단원들이 두만강변 북한 지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성환 데일리NK 기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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