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청소년에게 “北에서 왜 공부안했냐” 물으니…

함경북도 부령군에서 살다가 2008년 12월에 입국한 정현철(가명, 19세)군은 북한에서 학교 생활을 회고하면서 “한참 공부할 나이었으나 사정이 어려워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 군은 “내가 살던 아파트는 30세대였는데 나와 한 학교에 다니는 친구 9명 중 단 한사람도 학교에 제대로 가지 못했다”며 “먹지 못해 못가는 아이, 신발이 없어 못가는 아이, 옷이 없어 못가는 아이, 학습장이 없어 못가는 아이 등 그 사정은 제 각각이었다”고 말했다.

정 군의 친구 9명 모두 하루 세끼 밥 먹기도 힘든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 중 두 친구는 부모가 장거리 장사를 다녔으나 벌이가 신통치 않았다. 북한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일수록 부모가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끼리 떼로 몰려다니며 도둑질을 하는 경우도 많다.

친구 9명 모두 학교에 못가, 감자와 옥수수가 주식

정 군은 “감자 수확철이면 농장 감자를 도둑질하고 겨울이면 겨울대로 땔나무도 도둑질했다”며 “농장 밭 감자는 자기 집 감자인 것처럼 마음대로 캐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도적질한 감자는 부모들이 동조해 운반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감자 도둑질은 혼자 하기 어렵다. 한 번에 많은 양의 감자를 캐서 마대를 숨겨둔 곳까지 운반하려면 최소 두 세명이 필요하다.

보통 저녁 9시가 넘어서야 농장 감자밭으로 간다. 가져간 50㎏짜리 마대 4∼5개를 감자밭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언덕 뒤에 감추어 두고 25㎏짜리 마대만 가지고 감자밭으로 들어간다. 이때 경비원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감자밭에 도착하면 한사람은 감자를 캐고 다른 한사람은 뒤따라가며 마대에 감자를 주워 담는다. 마대가 차면 또 다른 사람이 그 마대를 메고 언덕 뒤에서 숨겨 둔 큰 마대로 옴긴다. 이런 방식으로 3∼4시간 감자를 캐면 마대 다섯개가 채워진다.

감자가 담겨진 큰 자루를 언덕 밑에 숨겨두면 다음날 아침 부모들이 자전거나 손수레를 끌고와 버젓이 감자자루를 싣고 간다. 만약 누군가가 감자 출저를 캐물으면 시장에서 돈 주고 샀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감자를 캐다가 간혹 경비원에게 잡히는 경우도 있는데 경비원들은 자기 집 텃밭감자도 아니고 또 철없는 아이들이라 그냥 몇 대 쥐어박고 풀어준다. 간혹 독한(?) 경비원에게 걸리면 학교에 연락하기도 하고 배급소에 통보해 식량배급표를 줄이기도 한다.

현철군은 “해마다 감자철이 되면 이런 방법으로 식량보탬도 하고 부족한 생활 필수품을 사기도 했다”고 추억했다.

감자 찍어 먹을 소금도 걱정거리

북한에서는 90년대 중반 이후 김일성 생일을 기념으로 학생들에게 교복을 나눠주던 주던 제도가 사라져버리고 지금은 각자가 시장에서 사 입어야 한다. 정 군은 같은 아파트에서 사는 9명의 친구들 중 4명은 돈이 없어 교복을 사지 못하고 상급생이나 친척에게 얻어 입었으며, 나머지 5명도 2년에 한 번씩 큰 호수로 사 입었다고 말했다.

정 군은 할머니와 둘이 살면서 매달 동사무소에서 주는 보조금 1100원(정 군 350원, 할머니 750원)으로 생활해야 했다. 당시 북한 시장에서 백미 1kg 밖에 살수 없었던 돈이었다. 교복이나 신발 등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한다.

정 군과 할머니는 무의무탁자(생계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이라 식량 배급소에서 매달 350원을 내고 통옥수수 10㎏을 받았다. 이것도 할머니와 하루에 두끼로 식사횟수를 조절해 500g씩만 먹었다. 북한의 성인 1인당 1일 식량분을 할머니와 둘이 나눠먹은 셈이다. 겨울에 추위로 아무것도 할 없는 경우에는 배급으로 타온 옥수수를 시장에 팔아 감자(1kg 50원)를 사서 먹기도 했다.

2007년 당시 소금 1봉지(1㎏)에 50원. 아무리 아껴먹어도 두 세 번 밖에 먹을 수 없는 중국산 1회용 맛내기 한봉지(5g)는 5원, 옥수수로 떡을 해먹기 위해 필요한 사카린 한봉지(5g)도 10원 이었다.

소금은 아껴 먹으면 한달 반 정도 먹을 수 있으나, 반찬이라도 해먹으면 보름정도밖에 먹지 못했다. 사카린 1봉지에는 입자가 굵은 알갱이 7∼8개 정도가 들어 있는데 옥수수 떡을 4번 해먹으면 없어지므로 맛내기와 함께 매달에 4번 이상은 사야했다. 그러니 결국 소금, 맛내기, 사카린 값만 매달 100원 이상 들었다고 한다. 지금 북한의 중산층에게 5원, 10원은 돈으로 취급받지도 못하지만 없는 사람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는 액수다.

멧돼지 사냥으로 횡재, 아버지 제사상 차려

겨울에 아이들이 열중하는 일 중에 하나가 사냥이다. 부령군 사람들은 겨울에 덫를 놓아 멧돼지나 토끼, 꿩 등 짐승들을 사냥하기도 하는데 멧돼지를 잡을 경우 그야말로 ‘대박’이다. 멧돼지는 손질을 하지 않은 채로 1㎏당 2,500원씩 시장 상인들에게 팔 수 있다.

정 군은 “2007년 겨울에도 짐승사냥을 여러번 했는데 크고 작은 멧돼지를 세 번이나 잡았다”며 “한번은 친구들과 함께 150㎏짜리 멧돼지를 잡았다”고 자랑했다. 정 군은 그때 친구들과 나눠가진 돈으로 할머니와 자신의 겨울솜옷과 신발, 장갑을 마련했고 돌아가신 아버지 제사도 치렀다고 말했다.

들짐승 사냥이라고 해서 마음껏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아이들이 사냥에 나설 경우 산림보호원들은 학교나 군당에 신고하겠다며 짐승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 또 성인 사냥군들은 아이들이 놓은 덫에 걸린 짐승을 자기들이 잡은 것이라 우기며 빼앗기도 한다.

정 군은 “먹고 사는 일에 지쳐 공부를 안하다보면 ‘내 앞날이 어찌될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며 “그러나 어차피 학교를 졸업해도 나아질 것도 없다는 절망 때문에 공부에 의욕을 가질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정 군은 한국에 와서 대학입학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정 군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장. 검정고시를 거쳐 내년에는 반드시 수능시험에 응시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서 내 머리가 어디까지 되겠는지 걱정이 많다. 하지만 공부를 하지 않으면 제대로 사람구실을 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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