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정치학 박사가 본 김정일 ‘측근정치’

외교관 출신으로 2호 박사학위 소지 탈북자가 된 현성일(47) 국가안보통일정책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박사학위 논문에서 ‘측근정치’를 김정일 체제유지의 주된 동력으로 꼽았다.

현 연구위원은 김일성종합대학 외국어문학부 영어과를 졸업한 뒤 이 대학에서 8년간 교수로 일했으며 1989년 외무성으로 자리를 옮겨 잠비아 주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으로 근무하던 중 1996년 한국으로 망명한 관료 출신이란 점에서 논문에 무게를 더한다.

특히 현 연구위원은 현재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으로 각종 외부활동에 빠짐 없이 수행하고 있는 현철해 군 대장이 친삼촌이며 부친 현철규씨도 노동당 간부부장(남한의 장관급), 조직지도부 부부장 및 제1부부장 등을 지낸 관계로 북한 고위층의 작동메커니즘을 곁에서 직접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현 책임연구위원은 “김정일이 구사한 측근정치는 기존 원로간부를 어떻게 자기사람으로 만들었고 어떤 사람을 측근으로 기용했으며 이들이 김정일 후계체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어떻게 관리하는지를 보여준다”고 밝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김 위원장이 후계자가 되기 전부터 친분관계에 있던 사람과 후계자 선정 이후 친분을 형성해 권력에 진입한 인물로 나뉘어진다.

김정일 위원장은 일반적으로 김일성 주석의 친인척에 대해 고위직에 등용은 하되 당 조직지도부 등 권력의 핵심에 두지 않고 측근으로 발탁하지 않아 친인척 중 측근은 외사촌 매부 리용무(현 국방위 부위원장), 사촌매부 허 담(사망. 전 조평통 위원장)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반면 김국태(현 노동당 비서), 김시학(김일성고급당학교 교장), 최익규(전 문화상), 염기순(사망. 전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연형묵(사망. 전 국방위 부위원장) 등 김 위원장이 1964년 노동당에 들어간 이후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에서 함께 일했거나 친분을 유지했던 인물들이 측근으로 부상했다.

후계자 선정 이후 친분을 맺게 된 인물은 공식적인 인사제도를 통해 검증절차를 거친 사람들로 1970∼80년대 진입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김영춘 군 총참모장, 김일철 인민무력부장 등과 1990년대 측근대열에 진입한 김양건 국방위 책임참사,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박봉주 내각 총리, 현철해 군 대장 등이다.

현 연구위원은 “김정일이 후계자가 된 이후에는 자기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업무추진력, 책임성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인물을 측근으로 발탁했다”며 “실력이 없는 인물은 측근으로 쓰지 않았고 실력 위주의 용인술은 간부들 속에서 자질 향상과 성과도출 노력으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그는 “김일성 시대에는 대부분의 국가정책이 당 정치국과 협의회 등 공식 정책결정기구를 통해 이뤄졌지만 김정일 후계체제가 들어서면서 ‘제의서(보고서) 정치’와 ‘측근정치’가 중요한 정책결정방식이 됐다”며 측근파티 등을 실례로 꼽았다.

그는 “측근들과의 연회는 단순한 피로연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결정기구의 역할을 하는 밀실정치의 성격을 띄었다”며 “이 자리에서는 전반적인 대내외 정세와 주요 국가정책과 인사문제 등 각종 현안이 주제로 제기되고 비교적 솔직하고 진실이 반영된 견해들이 독대나 의견교환형식으로 논의됐다”고 말했다.

측근정치는 현재도 이어져 그 범위도 초기 노동당에 집중됐던 데서 군부로까지 확대되고 최근에는 실력을 우선시 하는 측근 발탁과 세대교체를 통한 신진 관료의 등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현 연구위원의 분석.

그는 특히 강관주 대외연락부장, 오극렬 작전부장, 림동옥 통일전선부장, 허명욱 35호실 부부장 등 노동당 4대 대남부서장이 여전히 핵심측근의 지위를 보장받고 있는 것은 대남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논문을 지도한 최완규 경남대 북한대학원장은 “측근정치에 대한 연구는 북한에서 살면서 직접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이 하기 어렵다”며 “현성일씨가 북한 권력 중심부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논문”이라고 평가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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