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소녀 최현미, 세계를 향해 두 주먹 불끈쥐다

▲4월 30일 만난 최현미 양 ⓒ데일리NK

‘아 체육관에서 만날 걸 괜히 학교로 찾아왔구나’

처음 최현미(17•염광고) 양을 만났을 때 드는 느낌이었다.

최초 탈북 소녀 복서. 대한 아마추어복싱연맹 회장배 여자복싱 60kg 우승. 강력한 스트레이트가 주무기다.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는 현미양의 이력은 기자에게 건장한 체구에 남성미가 강한 소녀를 연상시켰다.

현미 양은 지난 달 4월 23일 충남 보령 대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 5회 연맹 회장배 전국여자아마 복싱대회에서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학교 앞에서 교복을 입은 현미를 처음 만나보니 예상했던 권투선수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교복 입은 학생들의 물결 속에서 현미는 그저 키가 조금 더 큰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그날은 마침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었고, 시험을 마치고 하교하는 학생들의 물결 속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었다.

“현미 양, 시험 잘 쳤어요?”

“아뇨 다 찍었죠 뭐”

현미는 그날 친구 생일 잔치가 있다고 인터뷰를 빨리 하자고 보챘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너무 좋아해서 훈련 스케줄 때문에 피곤해도 잠을 줄여가며 놀아야 직성이 풀린단다. 인터뷰 내내 밝게 웃는 모습이 영락없는 열일곱 여고생이다.

그러나 이런 밝은 얼굴 뒤에는 사선을 넘나드는 숨가쁜 사연이 스며있다. 그녀의 권투실력은 사실 70% 평양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미 양은 1990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국제무역회사에서 일하신 아버지 덕에 현미네 가족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살아왔다. 북한에서는 뭐하고 놀았냐는 질문에 현미는 “평양에도 롯데 월드 같은 곳 많아요”라며 어릴 때 놀던 기억을 얘기해 줬다.

어렸을 적 기억에는 모두 아버지가 있었다는 현미는 자상하신 아버지 덕에 평양에서 웬만한 유원지는 다 가 봤다고 했다.

그렇게 곱게 자라오던 현미가 권투를 시작한 것은 4년제 인민학교를 졸업하고 고등중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체육 시간에 현미 양의 재능을 눈 여겨 본 선생님은 현미와 부모님께 권투를 권했다. 처음에는 반대하시던 부모님은 끈질긴 선생님의 설득과 현미의 재능에 결국 열성적인 후원자로 변하게 된다.

연습 경기이기는 했지만 몇 살 많은 언니 선수들과의 경기에서도 현미 양은 지는 법이 없었고, 2001년 9월부터 북한 체육회 당국의 관리 하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표를 목표로 훈련을 받기 시작했다. 현미 양은 그 때 정말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치면서 지금의 기본기를 쌓았다고 했다.

“북한 친구들 사실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그 때는 사실 놀 시간도 전혀 없었고 맨날 훈련만 했어요.”

현미 양은 김철주 사범대학에서 특별반에 소속돼 기숙사에 살면서 스파르타식 훈련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훈련은 새벽6시부터 저녁8시까지 계속됐다. 새벽 운동 후 수업을 듣고 다시 오후 운동하고, 저녁 먹은 후 다시 야간 운동하고 잠드는 생활이었다. 그래서 인민학교 때 놀던 기억 이후 고등중학교의 특별한 추억은 없다고 했다.

그러던 현미 양의 일생은 가족의 탈북으로 인해 변하게 된다. 하루라도 자유롭게 살고자 했던 아버지는 치밀하게 탈북을 계획했고 결국 현미 양과 가족을 이끌고 2004년 2월 평양을 떠나 중국으로 향했다.

현미 양의 가족은 합법적인 여권으로 중국까지는 별탈 없이 넘어왔다. 중국에서 공식 일정을 마친 가족은 북한으로 귀국하는 대신 남한행을 선택했다.

목숨을 건 탈출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의 남쪽 끝 운남성까지 이동한 가족은 베트남 국경을 넘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다시 캄보디아를 거쳐 태국으로 넘어가 서울 행 비행기를 탈 수 있었고, 나머지 가족은 몇 개월의 베트남 생활 후 2004년 7월 한국에 올 수 있었다.

지금 현미 양은 아침 두 시간, 오후에 세 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북한에서의 훈련량보다는 덜 한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운동이 쉽지는 않다고 한다.

“한 번 제대로 훈련에 들어가면 몇 kg은 쉽게 빠져요. 그만큼 힘들고, 그래서 특별히 식단을 조절하지 않아도 체중 조절이 되요.”

현미 양은 힘들다고 하면 더 힘들기에 그냥 안 힘들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번 우승도 쉽지는 않았다.

“우승하긴 했지만 이긴 것 같지도 않아요. 첫 번째 상대가 같이 운동하던 언니였는데 판정승으로 아슬아슬하게 이겨 찝찝했어요.”

현미 양은 이제 시합이 끝난 후 달콤한 일주일의 휴가를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지금 안 놀면 한이 맺혀서 나중에 권투 못해요”라며 깔깔댔다. 현미 양은 일주일 스케줄을 모두 약속으로 빽빽하게 채워놓고 있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돈만 생기면 영화관에 간다고 한다. 부모님은 전화하실 때마다 “너 또 영화관이지?”라고 물어보신단다.

오늘 친구 생일이 마지막 휴가라며 아쉬운 표정을 짓던 현미 양은 “이제 다시 훈련 들어가면 또 챔피언을 향해 뛰어야죠”라고 포부를 밝혔다.

국내에서 1위, 그 후 아시아 챔프, 나가서 세계 챔피언이 되는 것이 현미 양의 꿈이다.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고 말하는 현미 양의 결심이 다부져 보였다. 탈북 소녀 최초로 세계챔피언 꿈을 이룬다면, 이는 탈북자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 커다란 선물이 될 것이다. 그날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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