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행렬 10년…숫자 줄고 계층 다양

‘고난의 행군’이라 불리는 90년대 대량아사 사태가 시작된 지 10년의 시간이 훌쩍 넘고 있지만 아직도 북한주민들의 탈북 행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데일리NK는 중국 선양(瀋陽) 모처에서 지린성(吉林省), 랴오닝성(遼寧省) 국경지역에서 탈북자 지원활동을 벌이고 있는 NGO활동가 4인을 초청, 재중탈북자 문제 전반에 대해 직접 현장에서 뛰는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길게는 9년에서 짧게는 4년 동안 탈북자들과 동고동락 했던 이들이 말하는 재중탈북자 실태와 숨은 이야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민기(가명) : 42세. 지원활동 9년. 개인활동가.
박준영(가명) : 40세. 지원활동 6년. 선교사.
최영식(가명) : 38세. 지원활동 4년. 한국 NGO 파견 활동가.
김영철(가명) : 36세. 지원활동 5년. 선교사.

진행 ∙ 정리 : 권정현 기자(데일리NK 중국 특파원)

재중 탈북자 3만 규모로 추정

권정현: 먼저 현재 재중 탈북자들의 정확한 숫자와 규모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재중탈북자가 정확히 몇 명인지 통계가 다 달라요. 98년~99년 재중 탈북자 추정치가 최소 10만에서 최대 50만까지 다양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재중 탈북자를 어느 정도로 봐야 합니까?

이민기: 탈북자 총 규모에 대해서는 아직 정설(定說)이라고 볼 만한 통계가 없다고 봅니다. 모두가 추정치일 뿐이죠. 제가 1999년부터 탈북자 지원활동을 해왔는데, 당시에도 연간 30만 ~ 50만 탈북설은 조금 지나치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옌지(延吉)의 경우 통상 30만 인구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옌지의 인구 숫자를 뛰어넘는 탈북자가 매년 있었다는 이야기인데, 지금까지 중국생활의 경험으로 볼 때 쉽게 납득되지 않아요. 저는 90년대 후반 탈북자 규모가 최고조였을 때 많이 잡아도 연간 15~20만명 수준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때를 기준으로 지금은 탈북자 규모가 대폭 감소했기 때문에 저는 약 3만 명 규모로 추정합니다. 물론 객관적인 통계자료가 아니라 추산일 뿐입니다.

박준영: 연변조선족자치주 공안당국이나 지린성 국가안전부에서는 2006년 현재 연변조선족자치주에만 6~8천 여명 정도의 탈북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에 유동인구를 더하면 연변조선족자치주에만 1만 명 규모로 추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에 1만 명 규모라면 이곳을 제외한 동북 3성 지역과 중국 전역을 다 합쳐도 2만이 넘기 힘듭니다.

최근 탈북자들 사이에서 칭따오(靑島)를 비롯한 산둥성의 한국인-조선족 밀집지역에 대한 소문이 많은데 아무리 한국인-조선족 밀집지역이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수 천명 규모의 탈북자를 흡수할 수는 없습니다.

최영식 : 탈북자 규모를 파악할 때 중국공안에 붙잡혀 강제 북송된 수치를 갖고 거꾸로 유추해보는 방식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경로로 정보를 수집해본 결과 2004년~2006년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된 탈북자의 규모는 약 4~6천명 규모입니다. 송환되는 탈북자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2002년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탈북자들이 진입한 이후로 2003년까지 중국 공안의 표적 단속이 매우 심했는데, 이때 강제송환 규모도 연간 1만 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2004년 이후로 송환되는 탈북자의 숫자가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송환 루트인 단둥(丹東)과 연변 지역의 중국 변방대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2006년에는 4천명이 넘지 않았습니다. 표적 단속이 줄었기 때문에 송환숫자가 줄어든 탓도 있지만, 탈북자 총 규모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송환숫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김영철 : 탈북자들의 거점이 되는 조선족 교회에서도 신규 탈북자들의 비율이 계속 감소하고 있습니다. 2년 전만 하더라도 매달 10명 정도의 신규 탈북자가 찾아오던 교회에 이제는 한 달에 2~3명이 고작입니다. 더군다나 두만강이 얼고 풀리는 12월~3월까지는 아예 탈북자의 발걸음이 뚝 끊기기도 합니다. 제 생각에 재중탈북자 규모는 최소 2만 5천에서 최대 4만 정도로 추산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합니다.

北당국 통제강화…중국사회 흡인력 감소

권정현 : 모든 분들이 전체 탈북자 규모가 크게 감소했다는 점에 동의하시는 것 같습니다. 탈북자들의 감소 이유를 어떻게 봅니까?

이민기: 우선 북한의 식량 상황이 기아 상태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90년대 말까지만 하더라도 탈북자들 대부분은 식량과 의료분야에 대한 긴급 구조가 필요했습니다. 일주일에서 열흘씩, 심지어 보름 동안 물만 먹으면서 한줌의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까지 넘어온 사람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었죠.

그러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 특히 2003년을 넘으면서 식량과 의료분야에서 긴급 구조가 필요한 탈북자들이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2003년 이후 신규 탈북자보다 한번 이상 탈북해서 중국생활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다시 중국으로 넘어오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는 첫 탈북자는 10%도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박준영: 종합적으로 볼 때 대다수 북한주민이 일상적인 아사(餓死) 위험에 노출되었던 상황이 크게 호전된 것이 확실합니다.

탈북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북한사회 최하층 10~15%는 여전히 끼니 걱정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만 옥수수나 잡곡을 넣은 혼합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주민들이 절반 이상이라고 추정됩니다. 또한 과거에 국가 배급에만 의존하던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개인 소토지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는 주민들이 늘어나는 등 새로운 생계수단이 일반화 되면서 식량이나 의료문제로 인한 탈북이 크게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최영식: 식량문제 및 생활수준이 과거에 비해 호전됐을 뿐 아니라 북한당국의 국경봉쇄와 처벌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탈북 동기가 크게 감소하게 되었습니다.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북-중 국경은 크게 3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96년~2000년까지는 북한 국경수비대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탈북자들이 폭주했던 시기였습니다. 2000년~2006년까지는 탈북자에 대한 북한당국의 대응이 강경책과 온건책이 혼재되어 있던 시절이었죠. 2000년 이후부터 탈북자의 실태와 북한의 내부사정이 외부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북한당국은 탈북자들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도 하고, 때로는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관대하게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2003년에는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탈북자들이 자진 귀향할 경우 기본 조사만 마치면 처벌을 면제해주던 때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2005년부터 북한 당국의 국경통제가 다시 강화되고 있습니다. 지금 탈북자들이 국경에서 잡히거나 중국에서 강제 송환되면 무조건 ‘교화 3년 이상’이 원칙입니다.

김영철: 탈북자들을 흡수할 수 있는 중국 사회의 유인력도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조선족들이 탈북자들을 더이상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에 대한 조선족들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한마디로 ‘이제는 해줄 만큼 다 해줬다!’ ‘한번 도와주면 계속 도와달라고 찾아온다’는 반응이죠.

또 북핵문제가 1차 이슈로 되면서 탈북자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과 지원이 현저하게 감소한 것도 원인입니다. 조선족 교회들 중에 ‘더 이상 탈북자를 도와줄 수 없다’고 선언하는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조선족 교회들을 통해서 탈북자들을 지원하는 국제 NGO나 한국 교회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그렇지 못해요. 조선족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 공안당국의 감시와 압력은 계속되는데, 탈북자를 보호할 만한 자체 재정과 조직력이 뒷받침 되지 않다 보니, 이제는 탈북자들이 찾아와도 도움을 거절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탈북자들에 대한 중국사회의 유인력이 감소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제사회와 NGO들의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한국 직행’ 목표 탈북자 늘어나

권정현 : 그렇다면 최근의 탈북자들은 어떤 동기로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입니까? 최근 탈북자들의 유형별 특징이 궁금합니다.

이민기: 90년대 말까지의 탈북 동기는 식량과 옷, 의약품 획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4~2005년에는 ‘중국에서든 한국에 가서든 돈을 벌어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주겠다’는 사람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은 탈북을 시도할 때부터 한국행을 염두에 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돈을 벌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탈북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한국행을 원하고 있죠. 한마디로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북한사회로 되돌아갈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들, 즉 북한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기반이 완전히 파괴된 사람들이 중국으로 넘어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변화를 북한사회의 ‘양극화 현상’에서 찾습니다. 북한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국가행정의 무능과 부정부패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2002년 7.1경제조치 이후에는 북한 각 지역에 상설시장이 생겼고 장사가 활성화 되었습니다. 국가배급에 의존해서 먹고 살던 시대에서 개인 장사로 먹고 사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지요. 그런데 북한에서 자본금과 본인 노력만으로는 장사에 성공하기 힘듭니다. 북한당국의 정책이 늘상 오락가락하기 때문이지요. 국가에서 시장을 건설해서 개인들에게 매대를 분양해 놓고도 매대 주인에게 ‘장사를 하지 말라’고 억압하거나, 물건을 구입하고 팔러 다니는 사람들에게 ‘사사로이 여행하지 말라’며 통제하는 식입니다.

북한당국의 정책이 이렇게 갈팡질팡하니까 중간의 관료들이나 법기관 일꾼들이 고무줄식으로 법을 집행하면서 주민들에게 뇌물을 요구합니다. 장사를 해서 먹고 살거나, 농장이나 기업소의 토지를 임대해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것이나 모두 관료집단에 뇌물을 상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주민들이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출신성분이 좋아 친인척 중에 관료가 있거나 뇌물로 인간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주민들은 삶의 근본적인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죠.

탈북자들은 북한관료집단에 대해 “90년대에는 백성들을 굶겨 죽이는 ‘머저리’였는데, 이제는 백성들 등쳐먹는 ‘승냥이’로 변했다”고 표현합니다. 90년대 탈북자들이 “일주일 넘게 굶어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 중국까지 왔다”고 말했다면, 최근 탈북자들은 “내일 먹을 식량이 떨어져 중국까지 왔다”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박준영: 탈북자들의 계층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당원과 비당원, 도시거주자와 농촌거주자, 좋은 출신성분과 일반 노동자, 농민 등은 더 이상 별 의미가 없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북한 사회가 여행과 이동, 특히나 국경지역에 대한 접근이 근본적으로 차단된 사회라 함경남도 이남 지역 출신의 탈북자가 적을 뿐이지, 탈북자 집단에는 거의 모든 계층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노동자, 농민들이 다수를 차지하지만, 평양의 일류대학 출신, 인민군 장교, 대학 교수, 과학기술자, 예술인, 무역회사 직원을 비롯해서 국가안전보위부 같은 국가기관 출신들도 중국으로 넘어옵니다.

3~4년 전부터 전체 탈북자 중에서 북한사회에서 ‘죄인’으로 취급받게 된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계속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사회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김정일 정권은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질 능력이 없으면서 주민들에게는 김일성 시대의 국가통제 수준에 복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국가에서 주민들에 대한 기본 식량배급도 책임지지 못하면서 주민들의 개별적인 생계 활동은 자꾸만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북한당국의 지시, 통제사항을 위반하는 주민들이 자꾸만 늘고 있습니다.

김정일의 무병장수를 위해 각종 신약을 개발하던 연구원이 집에서 감기약과 진통제를 만들어 장마당에 나가 팔다가 보위부에 들켜서 중국으로 탈북하는 경우가 있고, 유명 예술단 가수였던 여성이 한국노래를 즐겨 불렀다는 이유로 처벌 받게 되자 중국으로 도망친 경우도 있습니다. 돈을 받고 탈북자의 월경을 눈감아 줬다가 발각되어 자신도 탈북자의 신세로 전락한 국경수비대 장교도 있고, 관리책임을 지고 있던 소속 농장의 소가 도둑맞자, 정치범으로 몰려서 재판에 회부되어 중국으로 넘어온 농민도 있습니다.

최영식 : 가족단위의 집단탈북 비율이 증가하는 것도 최근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입니다. 과거에는 단신으로 탈북하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었습니다. 식량이나 돈을 구해서 가족들에게 보내주거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계획으로 중국에 오는 탈북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가족 내에서 아버지, 어머니, 큰 아들, 큰 딸 등이 ‘대표선수’로 나서는 셈이었죠. 운좋게 중국에서 생활터전을 잡거나 취직을 하게 되면, 형제 중 한 사람이 또 탈북을 하는 경우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1~2년 전부터는 아예 처음부터 가족단위로 집단 탈북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사실 직계가족이 모두 중국에 오는 경우는 대부분 경제적으로 파산한 주민들이고, 가족 중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북한식 연좌제에 걸려 추방되거나, 극도의 가난 때문에 북한 사회에서 삶의 희망을 상실한 사람들입니다. 또한 남편이 사망했거나 이혼해서 혼자서 아이의 양육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들이 아이를 데리고 중국에 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김영철: 앞에서 이민기 선생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최근 탈북자들은 대부분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중국보다 한국의 유인력이 더 커졌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1만 명을 넘으면서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도 한국 행에 성공한 탈북자들의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이 한국에 도착했을 경우 어떤 혜택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한국에 입국하기까지의 과정, 또는 여정에 대해서는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점입니다. 중국에 있는 탈북자의 총 규모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데 반해,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탈북자의 규모는 크게 감소하지 않는 이유가 무모한 한국행을 시도하면서 중국 공안에 붙잡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 또한 한국 정부와 국제사회가 관심을 갖고 새롭게 접근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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