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한 납북어부들, 돈과 병앞에 울다

“이 사람아 북한 넘어올 때 이미 한번 죽었던 우리 아닌가. 이까짓 병은 얼른 물리쳐 버리게”

“고맙네. 이렇게 찾아와 주니 고맙네. 여보 친구들 왔는데 고기라도 좀 내와요. 오늘은 아주 배가 부르겠네”

5일 오후 부산 영도구 영도병원의 한 병실에서 70대 노인 4명이 서로 끌어안고 굵은 눈물을 흘렸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은 1967년 4월 서해 어청도 부근에서 고기를 잡다 납북된 뒤 2001년 9월 북한을 탈출한 진정팔(71) 씨. 진 씨는 지난해 말 폐암말기 판정을 받고 영도병원에 입원해 치료중이다.

진 씨의 손을 잡은 이재근(72), 고명섭(65), 이한섭(65) 씨 역시 납북됐다 탈출한 어부들이다. 이들은 진 씨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이날 아침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왔다.

“이 친구야 여기가 어디라고 고기를 내와. 여기는 병원이야. 정신차리고 얼른 일어서야지”

고명섭 씨는 병세가 뇌까지 뻗친 진정팔 씨를 보며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다 돈이 원숩니다. 정부에서 주는 돈이라도 일찍 받았으면 치료는 제대로 받았을텐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이재근 씨는 납북자 단체 사이의 갈등으로 정부의 지원금을 제때 받지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친 것을 안타까워했다.

2007년 4월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체결 이후 납북피해자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 진 씨와 같은 귀환 납북자는 약 2억원 가량의 보상금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지원법 시행령에서 납북자의 가족에게는 최대 2천700여만원만 지급할 수 있도록 한 규정에 납북자 가족들이 강하게 반발, 보상금 지급 신청을 거부했다.

탈북 당시 납북자 가족 단체의 덕을 본 진 씨 등 귀환 납북자들 역시 당초에는 지원법에 반발하며 보상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약 2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귀환 납북자들과 납북자 가족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고 북한에 있을 때부터 병에 시달리던 진 씨의 몸상태는 크게 나빠졌다.

결국 진 씨는 지난해 11월 정부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했고 올해 2월 말 약 1억9천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치료시기가 지난 상태였다. 폐암은 4기까지 진행됐고 종양이 이미 뇌까지 전이됐다. 병원에서는 올 상반기를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진 씨가 숨을 거두면 남한에서 숨진 최초의 귀환 납북자가 된다.

“남편이 북한에 잡혀간 뒤로 죽기 전에 남편 얼굴 한번 보는 게 소원이었습니다. 이제 한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30년 넘도록 고생하고 돌아왔는데 병만 앓다가 떠나게 생겼습니다. 우리 남편이 너무 불쌍합니다”

귀환 납북 어부 4명이 밀린 이야기를 털어 놓는 동안 진 씨의 아내 박석순(71) 씨는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아냈다.

이한섭 씨는 정부에 귀환 납북자들에게 조금 더 신경을 써 줄 것을 요구했다.

“2억원으로 집 마련하고 탈북할 때 쓴 비용 청산하고 나면 남는 게 거의 없어요. 우리가 건강해서 일이라도 할 수 있으면 괜찮지만 귀환자중에 몸 성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부에는 참 감사하지만 이왕 신경 써 주는 거 조금만 더 신경써 주셨으면 합니다”

1시간여의 병문안을 마치고 탈북 어부들은 병실을 나섰다. 진 씨는 마지막까지 이들을 붙잡았다.

“어디가 술 한잔 해야지. 여보, 고기 말고 회는 없어요?”

등 뒤로 들려오는 진 씨의 목소리에 세 사람은 또 한번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