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청소년의 ‘무한도전’ 돕는 박상영 교사

“탈북 청소년을 만나면 그냥 외국인을 만난 것처럼 대해주세요. 그 아이들에겐 남한 정착이 거의 ’무한 도전’의 연속이거든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는 탈북 청소년을 위한 미인가 대안학교인 ’셋넷학교’를 세우고 대표교사로 일하고 있는 박상영(45)씨.

교실 4개와 체육실 등을 갖춘 80평 규모의 이 학교에는 현재 16~24살인 탈북 청소년 22명이 다니고 있다.

학생들은 아침 9시 등교해 국어와 영어, 수학, 과학 등 기본 교과를 공부하면서 고입 또는 대입 검정고시를 준비한다.

오후 6시 하교 전까지 뮤지컬 창작이나 영화 제작 실습 등을 벌이는 ’문화 치유’ 교실도 이어진다.

박 교사는 “사람들은 탈북 청소년을 만나면 생긴 것도 똑같고 말도 비슷하다며 무턱대고 ’우리는 동포’라고 내세우지만, 사실 이들 청소년은 거의 ’문화 쇼크’를 겪고 있는 상황”이라며 “성인 탈북자와 달리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환경 변화를 겪는 만큼, 탈북 청소년에겐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처럼 남한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문화 교육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셋넷학교에서는 실제로 학생들에게 북한 말투를 버리라고 가르치는 대신 경북 대구와 전남 해남 등에 데리고 가 그 지역 사투리를 들려준 뒤 “네 말투도 북한 사투리”라고 가르친다.

이와 함께 자본주의 생활 경제를 알려주는 ’경제와 나’, 책임감있는 이성교제 방법을 조언해주는 ’사랑과 성(性)’, 자유 민주주의에 대해 설명해주는 ’일상생활과 법’ 등 ’문화 공존’ 교실도 열고 있다.

처음에는 무작정 “남한 애들처럼 되고 싶다”며 외모부터 말투까지 바꾸려 들던 탈북 청소년들도 이러한 문화 교육을 통해 차츰 자신이 가진 차이점을 인정하고 정체성을 되찾아간다는 것이 박 교사의 설명.

그는 “머리만 ’섀기 컷’으로 자른다고 고향이 황해도에서 서울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학생들에게 말해준다”며 “정체성을 부정한 채 남한 사회에 흡수되다 보면 타인에게 의지만 하는 반쪽짜리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30세부터 문화관련 시민단체에서 활동해오던 박 교사가 탈북 청소년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0년 중국 옌지(延吉)지역을 여행할 때 북한을 이탈, 중국 공안을 피해 숨어다니던 어린이 3명을 만나면서부터.

1990년대 후반 북한에 닥친 식량난으로 집을 나와 북-중 국경지역을 떠돌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상처받은 동물의 눈빛을 가졌었다”고 박 교사는 회상했다.

그는 “2002년 서울에서 우연히 옌지에서 만났던 북한 어린이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며 “하지만 아이들이 겉으로는 살도 찌고 건강해졌지만 눈빛만은 여전히 경계심으로 가득 찬 것을 보고” ’셋넷 학교’를 운명처럼 떠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부터 탈북 청소년 6명을 모아 서울 동숭동 6평짜리 지하 단칸방에서 운영했던 ’똘배 학교’가 지금 셋넷학교의 모태가 됐다.

설립 4년여만에 자원봉사자와 기업 등의 후원을 받아 10배 이상 넓은 건물로 옮기고 한해 예산도 약 1억5천억원으로 늘어났지만 박 교사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무모한 도전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 학교를 거쳐간 졸업생 18명중 16명이 ’외국인 특례입학’을 적용받아 4년제 대학에 입학했지만, 언어.문화적 차이로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중도 탈락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는 것.

이 때문에 박 교사는 내년부터 셋넷 학교의 교육 과정을 ’확’ 바꾸기로 했다.

기존 검정고시 과정과 함께 적성.직업 교육을 시작, 입시용 교육이 아닌 직업 교육을 벌여 전국에 있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5곳중 유일한 ’직업.적성교육 상설 기관’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또 셋넷 학교의 동료 교사 3명과 함께 제작해온 ’새터민 청소년 눈높이 교과서’를 내년 1월 출판, 전국 탈북 대안학교에 배포해 기존 교과서를 대체하도록 할 생각이다.

“사람들은 흔히 탈북 청소년을 만나면 ’남한에 왔으니 이제 행복하겠다’고 위로하지만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든다”며 “’하나둘’보다 더 중요한 것이 그 다음 단계인 ’셋넷’”이라고 강조하는 박상영 교사.

그는 “북한에서 ’남북 통일은 꼭 이뤄야 할 숙제’라고 배웠던 탈북 청소년들은 남한 친구들이 통일에 반대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곤 한다”며 “셋넷학교를 남북한 학생이 반씩 섞여 함께 공부하는 대안 학교로 만들어, 중.고등학생인 두 아들도 제자로 입학하는 날이 오게 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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