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가 南 국민들 피로 싹 풀어드릴께요”

‘드라마는 드라마다워야 한다’ 복란씨의 드라마 철학이다. “현실도 충분히 힘들잖아요, 드라마까지 복잡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드라마만의 환상도 있어야 하고요.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시간에 편하게 볼 수 있는 그런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요”


새 학기가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6일 서울예대 안산 캠퍼스에는 봄꽃이 만개했다. 열다섯의 나이로 목숨을 걸고 북중 국경을 넘어 국내로 들어온 지 올해로 7년. 탈북소녀 하복란(22·사진) 씨는 이제 노희경 작가를 존경하는 극작가 지망생으로 성장했다. 하 씨는 글의 힘으로 사람들의 피로을 풀어주는 드라마를 꿈꾼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했던 하 씨. 그러나 한국으로 오기 전 타국에서는 비법월경자의 신분으로 여기저기 숨어 지내야 하는 처지였다. 지금도 가끔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여기가 어디지?’라며 놀랄 때가 있다. 뿔뿔이 흩어져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언니들과 남동생도 걱정이다.


“이제 스무살이 됐을 남동생이 특히 걱정스러워요. 미안하고요. 중국에 가서 돈을 벌어오겠다는 언니가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동생에게 똑같이 ‘작은 누나를 찾아오겠다’고 하고 떠났거든요. 하지만 돌아가지 못했죠. 이제는 모두 잘 살고 있을 꺼라 믿고 있어요”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극작과에 입학한 하 씨. 하지만 처음부터 드라마 작가를 희망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를 마치고 20살이 돼서야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친구들은 모두 이미 대학에 진학한 상황에서 하씨는 나만 뒤쳐지고 있다는 자괴감에 빠졌다. 


“2년 동안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며 방황했어요. 그러던 중 셋넷학교 선생님들이 글공부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씀을 해 주셨어요”


평소에도 드라마를 좋아했던 하 씨였다. 무엇보다 하 씨는 방송국에서 일 하고 싶었다. 방청객 아르바이트를 통해 방송국에 간 그녀의 눈에 무대 뒤 ‘작가’가 보였다. 그녀의 결심은 굳혀졌다. 이듬해 2009년 하씨는 서울예대 극작과에 진학했다.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입학했지만 처음 1년 동안 배운 것은 연극이었다. 기초 연극 이론부터 실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밤을 새며 음향, 각색, 소품을 준비했다. 처음에 하 씨는 ‘난 드라마가 하고 싶은데 왜 매일 연극만 배울까’라는 불만을 갖기도 했다.


“2학년이 된 지금 드디어 드라마 극본을 배우게 됐어요. 다 단계가 있었던 거지요. 지금은 오히려 고생하면서 준비했던 연극이 더 매력적이었다는 생각도 하고요”


한국에 온지 비교적 오래 된 하 씨지만 탈북자이기 때문에 겪는 힘든 점은 여전히 존재했다. 아직 외래어는 익숙하지 않다. 공식적인 학교가 처음이라 한국 친구도 처음 사귀었다. 학생들 중에는  학원이나 스터디 모임을 통해 이미 많은 정보를 공유한 이들도 있었다.


“늘 다른 친구들보다 한 걸음 뒤에 있다는 느낌을 지금도 받고 있어요. 탈북자 누구나 한국에 와서 뛰지 않으면 절대 같이 걸어갈 수 없다고도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하씨의 꿈을 향한 여정은 책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셋넷학교가 개교 5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꽃이 펴야 봄이 온다>(민들레 발행)에는 하 씨 외에도 7명의 탈북학생들이 말하는 그들의 고민과 극복스토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열심히 공부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경쾌하게 하는 드라마를 쓸 거예요. 저처럼 극작과에 가고 싶어 하거나 작가를 꿈꾸는 탈북 후배들에게 꼭 본보기가 될 겁니다” 그녀의 다짐에서 희망이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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