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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미국의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위원회’가 재중 탈북자 1천3백46명에 대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작성한 보고서는 탈북자들의 인권침해 실태와 북한의 최근 상황을 수치를 통해 객관적으로 통계화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다.
중국 내 탈북자는 북한에 대기근이 닥친 1990년대 중반 이후 많을 때는 10만~15만 명 정도, 최근에는 그 수가 많이 줄어 3~5만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단속 때문에 숨어 지내야만 하는 탈북자들의 특성상 정확한 실태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이번 보고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광범위한 탈북자를 대상으로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는 특징이 있다.
탈북자들은 김정일 정권 하에서 북한 주민들의 삶이 어떤지를 알려주는 증인들이다.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 북한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침해 사례와 중국 내에서 받고 있는 탄압의 실체가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 중국 내 탈북자, 그들은 누구인가?
설문 응답자 중 노동자가 62%(814명)를 차지했고, 다음은 농민(35%), 기술자 (2%), 군인(1%) 순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노동당원과 정부관리도 1명씩 포함돼 있었다.
학력으로 볼 때는 고등중학교(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사람(52%)이 가장 많았고, 소학교(초등학교) 졸업(44%)이 다음을 차지했다. 대학(1%)이나 기술학교(1%)까지 졸업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들이 중국에 머문 기간은 3년(36%)과 3년 이상(32%)이 가장 많아 장기체류자가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년(15%)이나 1년(12%), 6개월 미만(5%) 머물렀다는 답변도 생각보다 많은 수치를 차지했다.
그러나 보고서도 여러 차례 지적하고 있듯이 응답자의 76%가 함경북도 지방 출신으로, 설문조사 결과가 북한 전체의 상황을 대변한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함경북도 출신 탈북자가 많은 이유는 지리적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외부의 소문을 듣기도 쉽고, 도강을 하기도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초기 식량난 당시 탈북한 사람들과의 인터뷰 결과, 이들은 예상대로 식량을 구하는 것이 탈북의 목적임이었다.
그러나 최근 탈북동기는 변화하고 있다. 2002년 휴먼라이츠워치의 조사에 의하면 배고픔은 여러 탈북 요인 중 하나에 불과했으며 ▲ 더 나은 기회를 찾아서 ▲ 연좌제에 의한 정치적 탄압을 피해서 ▲ 북한보다 더 나은 생활 환경에서 살기 위해 탈북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국에 대한 정보는 사람들의 이야기(89%)를 통해 가장 많이 얻었고, 다음으로는 언론(5%)과 비디오, 책(1%) 등이 차지했다. 보고서는 언론의 자유가 완전히 통제되어 있고, 정보의 흐름이 극도로 제한된 북한에서는 사람들의 입을 통한 소식 전달이 가장 빠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사람들은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외국의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며,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를 취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중국 내 탈북자, 어떻게 살고있나?
조사결과 응답자의 22%만이 중국 내에서 직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탈북자들은 체포의 위협, 기술의 부족, 언어의 한계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자리를 구했다고 해도 13%의 탈북자들만이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있을 뿐, 78%는 정상 급여에 훨씬 못 미치는 액수를 받고 있었다. 9% 정도는 아예 임금을 받고 있지 못하다고 답했다.
이들이 현재 불안감을 느끼는 원인으로는 체포에 대한 위협(67%)이 가장 높아,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불안전한 신분 때문에 겪는 고통이 큰 것으로 드러났다. 다음으로는 북한에 남아있는 가족(16%)과의 관계, 거주지의 불안정 (15%) 등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를 통해 여성 탈북자들의 인권침해 실태가 매우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 탈북자들은 국경을 건너자마자 인신매매범이나 강제 결혼의 위험에 노출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중개업자들은 북한 여성들을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 부족한 중국의 농촌에 팔아넘기고 있다.
중국인 남편과 결혼한다고 해서 탈북 여성의 신분이 안전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탈북여성은 여전히 강제송환의 대상이며, 중국인 가족으로부터 정신적, 신체적, 성적인 학대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 또 많은 수의 여성들은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탈북 여성들은 강제북송과정에서 북한 경비대원이나 중국 공안에게 성적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이번 조사에 의하면 탈북 여성의 과반수가 중국에서 인신매매 되는 것을 본적이 있다고 한다.
인신매매되는 탈북 여성의 가격은 평균 1900위엔 (21만원)이고, 절반 가량은 1700위엔(19만원) 이하에 팔리고 있다. 가격은 여성의 나이나 자식 유무에 따라 달라지는데, 젊은 처녀가 가장 비싼 값에 팔리고 있었다.
강제 북송시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중국에서의 인신매매 상황이 알려지면서 점차 탈북 하는 여성의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탈북여성의 가격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
◇ 북한 내부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
탈북자들이 전망하는 북한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 설문에 응한 탈북자들의 93%는 김정일 정권이 앞으로도 개선되지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경제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도 90%에 달했다.
지난 2년간 북한의 식량사정이 나아졌느냐는 질문에는 67%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으며, 북한의 만성적인 식량난에 대다수(90%)가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의 62%는 앞으로 주민들에 대한 통제가 더 강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설문에 응한 탈북자 중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57%에 불과했으며, 이중 3%만이 실제 혜택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국제사회의 식량 지원을 알고 있는 탈북자 중 무려 94%가 식량이 군사적으로 전용된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26%는 정부 관료들이 식량을 빼돌리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등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특히 응답자의 3%만이 정부 배급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으며, 시장에서 식량을 사다먹거나(62%) 국가배급과 개인구입을 병행했다(3%)는 답변이 대다수를 차지한 것은 충격적인 결과라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답변자의 대부분이 함경북도 출신이기 때문에 식량 보급 수단으로서 시장의 역할이 압도적으로 증가한 것이 전국적인 현상은 아닐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의 식량 경제가 상당부분 시장경제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