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脫北)은 북한의 가정에 큰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여성의 탈북은 가족의 분화와 해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통일부에 따르면 2만을 넘어선 국내입국 탈북자 중 여성의 비율은 2002년을 기점으로 남성을 추월, 현재 75%를 차지하고 있다. 이들 중 북한에 남편과 자녀를 둔 여성은 50%를 상회한다. 중국 등 제3국 체류 탈북자도 이와 유사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북한에 가정이 있는 여성들의 탈북은 대부분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을 불러왔다.
이는 1990년대 중반의 경제난 이후 북한 여성들이 장사 등을 통해 가족의 생계를 도맡아 왔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대한변호사협회가 탈북자 200명을 면접 조사해 발표한 ‘2010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70.5%가 여성이 경제적 문제를 책임졌다고 답했다.
북한에서 사실상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家長) 역할을 맡아온 여성들의 탈북은 남편들에게 남겨진 가족의 생계를 떠맡도록 했다.
하지만 경제난의 심화로 대부분의 기업소, 공장은 가동이 중단돼 노임이나 배급을 주지 못하면서도 북한당국은 주민들에 대한 통제력을 잃지 않기 위해 남자들의 직장 출근을 강요하고 있다. 북한에서 대부분 공장이 가동되지 않고 있는 상태이고 가동된다고 해도 월급이 5000원 이내여서 남편 혼자의 힘으로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현실이다.
◆경제능력 없는 남편들 새가정 꾸려=때문에 남편들은 부득불 새로운 가정을 구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북한 소식통들의 설명이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아내가 행방불명(탈북)된 남편의 십중팔구는 가정을 새로이 꾸렸다”고 말했다. 편차는 있지만 다른 지역도 비슷하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이혼 신청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새 가정을 꾸리려면 결혼등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이혼을 명예롭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재판에 의해서만 이혼을 허용하도록 명문화하고 있고(가족법 제20조 제2항), 또한 이혼사유를 제한하거나 이혼신청서의 수입인지를 고가로 책정하는 등 정책적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탈북가정의 이혼은 사실상 막기 어렵다는 것이 주민들의 전언이다.
실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때를 이용하거나 평상시 해당 간부들에게 뇌물 등을 주면 이혼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 입국한 김모(40) 씨는 “그쪽 남편이 새로운 여자와 2년 정도 살다가 최고인민회의(2008년) 대의원 선거 때 안전부에 가서 결혼등록을 했다고 들었다”면서 “선거하는 시기에 등록하면 불필요한 절차 없이 이혼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2009년 입국한 탈북자 이모(43) 씨는 “선거시기가 아닌 때에는 담배나 술을 뇌물로 주고 안전부 주민등록과에 가서 ‘본처가 행방불명’이라고 하면 삭제하고 새 여자를 등록해 준다”고 전했다.
보통 행불자로 신고하면 ‘언제, 어떻게, 왜?’라는 질문과 조사가 있었지만 탈북이 많아진 현재는 안전원들도 일일이 물어보지 않는다는 게 내부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북한 당국은 과거부터 이혼은 ‘혁명의 원수이고 자식들의 미래를 좀먹는 개인이기주의 현상’이라며 정책적으로 이혼을 막고 있지만, 경제난 이후 부정부패와 기강해이가 확산되면서 이혼도 비교적 쉬워졌다는 얘기다.
◆남겨진 아이들 ‘천덕꾸러기’ 신세 전락=남편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면서 자녀들의 양육문제도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2010년 5월 탈북한 오모(38) 씨는 “남편이 딸(6세)을 처가(처형)에 맡기고 다른 여자를 데리고 살고 있다”고 말했다.
남겨진 자녀들은 새엄마의 눈치를 보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편들은 새엄마의 권유로 전처의 가족들에게 아이들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들이 친척집에 가더라도 환영받기는 어렵다. 경제난에 따른 생이별로 졸지에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하는 것이다.
남편들은 남겨진 자식을 구실로 탈북여성들에게 생계자금을 요구하고 있다. 국내 탈북자의 50% 정도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낸 적이 있다는 조사결과도 있다.(북한인권정보센터) 자신이 직접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경우는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탈북자 김순희(34세) 씨는 “북한에 있는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서 7살 난 딸애를 친정엄마에게 보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딸을 데려다가 나와 전화통화를 하게 한다. 딸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내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철없는 딸이 불쌍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것이 돈 때문에 왔다 갔다 하며 고생하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고 딸 앞에 죄스럽다”며 “북한에 넘어가 납치해서라도 딸을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라고 가슴아파했다.
2009년 탈북한 최모(39) 씨는 “북한에 11살 되는 딸이 있다. 여기서 번 돈은 북한에 모두 보낸다”면서 “두고 온 자식들 앞에 죄스러워 보내는 돈이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최 씨의 북한 내 남편은 현재 다른 여성과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가 보낸 돈이 딸을 위해 쓰이고 있는 것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마저도 보내지 않을 경우 딸이 처할 경제적 궁핍에 어쩔 수 없이 돈을 보내고 있다. 대다수 입국 탈북여성들의 상황은 최 씨와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