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호’ 축구심판 문송민씨

“북한 유소년 축구선수들이 기본기를 익히는 데 주력하는 반면 한국은 어릴 때부터 경기에서 이기는 것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북한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지낸 문기남(60) 울산대 감독의 장남으로 지난해 대한축구협회 3급 심판 자격증과 3급 지도자 자격증을 한꺼번에 따낸 문송민(35.연세대 체육교육과)씨가 국내에서 축구지도자와 심판의 꿈을 동시에 키우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2004년 초 국내 축구계는 깜짝 놀랄 소식에 접했다. 1990년 북한대표팀을 이끌었던 문기남 감독이 가족들과 함께 탈북에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문 감독은 2005년 2월 울산대 감독에 취임하면서 한국에서 새로운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가족들의 얘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함께 탈북한 장남 문송민씨 역시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북한에서 ‘잘 나가던’ 축구선수였다.

문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축구에 입문, 만수대 창작사 월미도체육단 유소년팀에서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해 기관차팀에서 미드필더와 수비수로 활약했다.

이후 북한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조선체육대학 특설학부에 입학, 축구 지도자 과정을 밟았던 문 씨는 졸업 이후 북한 국가체육위원회에 배치됐지만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노동당 39호실 경흥지도국에 취업, 평양 시내 백화점을 관리하면서 산하 축구팀 코치까지 맡아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2003년 8월 탈북을 결심한 아버지의 의지는 문 씨의 인생항로를 바꿨다.

2004년 1월 중국을 거쳐 한국 땅을 밟은 문 씨는 생소한 한국 사회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이듬해 문기남 감독이 울산대 사령탑으로 내정돼 어머니와 함께 울산으로 내려가자 서울에 남은 문 씨는 일식집과 건축현장 등에서 일하는 틈틈이 조기 축구회에 나가는 등 축구와 인연을 놓지 않았다.

문 씨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을 담당해온 경찰관의 추천으로 신림동 난우초등학교 축구팀에서 5개월 동안 코치 생활을 하면서 잠자고 있던 ‘축구 사랑’이 되살아 났다.

축구협회 3급 심판 모집 공고를 접한 문 씨는 2007년 2월 도전장을 내밀어 당당히 합격증을 손에 넣으면서 ‘탈북자 1호 심판’이 됐고, 그해 7월 축구협회 3급 지도자 과정까지 마치면서 축구인으로서 새로운 삶을 준비하게 됐다.

문 씨는 조선체육대학 졸업장을 인정받아 올해 3월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 3학년에 편입했고, 초등학교대회에 심판으로 나서 받는 심판비를 모아 등록금을 마련하는 등 숨가쁜 ‘늦깎이’ 대학생활을 즐기고 있다.

문 씨의 인생목표는 1급 심판과 1급 지도자 자격증을 모두 따내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한국에서 축구 지도자로 새 출발을 하는 것이다.

문송민 씨는 “북한에 있을 때도 주변의 시선 때문에 대표팀 감독이었던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축구는 나에게 가장 손에 익은 일인 만큼 한국에서 지도자로 성공하고 싶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북한 지도자들의 경우 유망주를 제대로 길러냈는 지가 평가의 주요소지만 한국은 경기에서 이기는 것만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며 “어릴 때부터 너무 실전 축구에만 몰두해 기본기 연마와 학업에 소홀하면 좋은 선수로 크기 어렵다”고 지적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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