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편견 버리고 마음으로 다가가 얻은 새삶

한국에서도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는 60대. 2008년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해 지금은 정착 7년차가 된 평범한 한 가정의 가장인 탈북자 최기호(사진) 씨는 아파트 경비원이다. 최 씨는 직장에서 동료는 물론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인정받는 관리사로 거듭났다. 언제나 능동적으로 일하고 누구에게나 마음을 먼저 열고 다가선 결과다.


하지만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한국에 입국해 남북 문화와 경제적 차이를 피부로 느끼면서 취업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이나 힘들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고 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공부하는 두 딸 등 다른 사람에 비해 식구가 많다보니 남들보다 몇 배 많은 브로커 비용을 갚아야 해 취업은 너무나도 절실했다.


최 씨는 처음엔 운전면허를 취득해 하나원 동기의 주선으로 트럭을 운전하게 됐다. 북한에서 운전 경험이 전혀 없었던지라 약간은 위험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가족의 만류로 운전 일을 그만두고 지인의 소개로 빵공장에도 가봤고, 아파트 전기공사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일자리가 마땅치 않아 부인과 지방으로 내려가 함께 일할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대학에 다니는 자식들 뒷바라지 때문에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이렇게 여섯 식구의 가장인 최 씨는 가정을 위해서 지체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북한에 있을 때 대기업 관리직으로 다년간 일했던 때를 생각하며, 정착제도에 불만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탈북 후 법의 보호 밖에서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았던 때를 떠올렸고, 북한에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고생하며 일했던 것에 비하면 좋은 환경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그는 말했다.


매사에 능동적이며 언제나 진심으로 다가가다



60대라는 현실 때문에 새 삶에 대한 도전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또 꾸준히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야만 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아파트 경비원이었다고 한다.


아파트 경비원으로 출근한 첫 날부터 최 씨는 능동적으로 일했다. 눈이 오거나 일이 많은 날엔 교대시간 외에도 남아서 도와주기도 했다. 또한 매일 오전 3시간씩 담당한 구역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모으는 곳은 벽돌을 주어다 경계를 만들어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고, 아파트 지하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깨끗하게 정리, 주민들이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바꿔놓았다.


그러나 모든 조직이 그렇듯 경비원도 일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조직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 동료와의 마찰, 주민들과 외부 방문자들로부터 받는 스트레스 때문에 힘이 들 때도 있었다고 최 씨는 회고했다.


그는 아파트 주민들이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규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면 “탈북자인 당신이 법을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러냐” “입주민에게 이런 식으로 해도 되냐”면서 경비실까지 찾아와 불평을 한바탕 쏟아내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웃었다. 


이처럼 최 씨는 아파트 단지 내 몇몇 주민들의 몰상식한 행동에 마음에 상처를 받고 혼자 눈물을 훔친 때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가족을 먼저 떠올리며 감내했다. 탈북자라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직업을 갖고 있는 한국 국민 모두가 겪는 과정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또 “한국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 이 땅에서 가족과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면서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했고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최 씨는 일한 지 6개월이 지나 8개월쯤 되었을 땐 반장이 되어 아파트 단지의 경비와 청소를 책임지게 됐다. 반장이 되니 혼자 일할 때와는 달랐다고 한다. 그의 의견을 따라 주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최 씨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또 한 번의 어려움에 봉착했지만, 솔선수범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임으로써 극복했다. 그는 “일한 지 1년이 돼 아파트 단지는 예전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고, 동료와 주민들도 노력을 알아봐 주시고 마음을 열어주셨다”고 말했다.


또한 장기간 그의 성실함을 지켜본 회사에서 아파트 경비원을 채용할 때 그에게 먼저 보내 동의를 얻으면 최종적으로 채용할 정도로 신뢰가 컸다. 또한 그의 추천을 받은 여러 명의 탈북자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했다.


편견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다


능동적인 자세로 꾸준히 노력한 결과, 일하고 있던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직원으로 일할 것을 제안해 왔고, 최 씨는 흔쾌히 승낙했다. 관리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주민들의 불편사항이 제기되면 시간을 불문하고 찾아가 도와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최 씨는 휴무일엔 전기기능사 등 자격증 취득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한국 생활 7년 동안의 삶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자부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신의 노력으로 자녀들 모두 온·오프라인으로 대학교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이후 각 분야에서 성실히 일하는 것도 한몫을 차지하고 있다.


최 씨가 이렇게 성실하게 일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탈북자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을 없애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그는 자녀들에게 “탈북자라고 위축되지 말고 항상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감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비롯되는 것이니 배움을 멈추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한국에서 국민으로서의 권리에만 집착하지 말고, 민주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하고 정직함과 성실함으로 적극적으로 모든 일에 임해야 한다. 또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임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항상 도전하라”고 말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최 씨는 한국과 다른 체제, 교육, 문화 속에서 성장해왔던 탈북자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는 “한 직장에서 꾸준히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사람들의 편견에 연연하기 보다는 진심으로 다가갔기 때문”이라면서 “통일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이해하며 진심으로 소통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순간 한국 2만 7000여 명의 탈북자 모두가 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이미 통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라면서 “(이렇게 할 때만이) 모두가 바라는 통일한국에서 고향 사람들과 마주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