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취업 문제, ‘징검다리’ 기업이 필요하다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2010년 맞춤형 취업박람회’ 현장에서 탈북 구직자들이 기업소개 자료집을 보고 이력서를 작성하고 있다./목용재 기자


지난 27일 KBS 88체육관에서 진행한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주최한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2010년 맞춤형 취업박람회’ 현장.


“이상으로 오늘 취업박람회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의 폐막선언과 함께 500여명에 달했던 탈북자들이 분주히 행사장을 빠져 나갔다. 채용설명 부스를 마련했던 40여개의 기업들도 주섬주섬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전히 탈북자들이 몰려 있는 곳이 눈에 띈다. ‘겨레하나예술단’ 채용설명 부스.


채용설명을 하는 직원들 역시 탈북자들이다. 입국 1~2년차 30~40대 여성들이 겨레하나예술단의 채용 기준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다.


상담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한 탈북여성에게 다가가 ‘예술단에 관심이 많냐’고 물었다. 입국후 거주지역 주민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자활센터에서 월 7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으며 포장지를 만들었다는 김 모(40. 2009년 입국)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채용정보를 보니 북한예술공연을 할뿐 아니라 남한 사람들에게 통일교육 강의도 한다기에 관심이 생겼어요. 돈벌이도 중요하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요. 입국한 지 1년밖에 안됐지만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일이라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가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으니까요.”


오늘 취업박람회에 대한 소감을 물었다. 마음껏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 이것도 한국사회의 매력 중에 하나다.


“너무 고맙죠. 우리 탈북자들은 거의 생활정보지를 통해 일자리를 알아봐요. 남한 사회가 어떤지, 누구를 찾아가야 하는지를 모르니까 동네 거리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생활정보지를 이용하죠. 하지만 거기에는 아르바이트 자리 밖에 없어요. 그러니 이렇게 취업박람회가 열린다는 것이 탈북자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요. 직접 기업 상담자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구체적인 정보도 얻게 되고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아요.”


김 씨는 왜 통일교육 강의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솔직히 일반 국민들은 북한에 큰 관심이 없다. 김정일이나 그의 아들 김정은, 혹은 엽기적인 사회실태나 핵무기 정도에 대한 호기심 뿐이다. 


“얼마전 함께 교회에 다니는 남한 여성분에게 이런 말을 들었어요. 그분 아들이 이제 12살인데,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이민 갈거다’라고 말했다는 거예요. 우리(탈북자)입장에서는 한국 땅에서 한국 사람들으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축복이라고 느껴져요. 만약 그분 아들이 북한의 실상을 조금만이라도 알았다면, 과연 그런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를 알려주게 되면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을 후회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남한 사람들을 돕고 싶습니다. 오늘 취업박람회에 와서 제가 그런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됐어요.”


김 씨 옆에는 입국한지 7개월 밖에 되지 않은 탈북여성 박 모(32)씨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남한 사람들이 많은 기업들을 놔두고 왜 탈북자들로 구성된 겨레하나예술단에 관심을 갖는지 이유를 물었다.


“하나원에서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남한 사람들과 섞이는 것이 낯설어요. 그런데 여기에는 먼저 온 선배들도 많은 것 같고, 또 하는 일도 낯설지 않아 보입니다.”


예술단이라는 직업이 과연 평생 갈수 있는 분야일까? 또, 탈북자들끼리만 모여 있는 곳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박 씨에 좀 더 공격적인 질문은 던졌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한국사람과 더 많이 접촉하는게 중요하지 않겠냐고. 또,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전문기술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론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정착해 살자면 전문지식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남한 사회의 특징이나 언어, 생활방식 등도 알아야죠. 그런데 당장은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는 대학공부를 하고 싶어요. 그러자면 돈을 벌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 않죠. 그래서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려고요.”


탈북자들이 대한민국에서 비집고 들어갈 평생 직업은 그리 많지 않다.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경쟁력을 1~2년 만에 따라 잡는다는 것은 사실 엄두조차 나지 않는 일이다. 그러니 자연히 늦은 나이의 탈북자들도 대학공부에 대한 열망을 갖는다. 북한에서 못 먹었던 설음보다 못배운 설움이 더 컸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목구먹이 포도청이라도 당장 하루 몇만원 벌이라도 해야한다. 결국, 돈을 벌면서 대학공부도 하고, 한국 사람들과 사귀면서 사회경력도 쌓을 수 있는 ‘꿈의 직장’은 그야말로 ‘꿈’일 뿐이다.


하나원을 막 퇴소한 탈북자들은 대부분 ‘빠른 정착, 당당한 자립’에 대한 도전정신으로 불타오른다. 한방에 성공반열에 오르고 싶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길어야 두어 달이면 그 불길이 꺼진다. 한 두 군데 직장만 전전하고 나면 ‘탈북자’라는 패배의식이 뼈속까지 남는다.


사실 겨레하나예술단 채용 부스에 몰린 탈북여성들은 ‘절반의 타협’을 이룬 사람들이다. 그들은 직관적으로 ‘연착륙’을 선택했다. 남한에 대해 잘아는 탈북자 선배들을 통해 초기 정착 과정을 배우며, 당장 자신이 갖고 있는 기본 기능을 조금이라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탈북자 기업’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과연 ‘북한식 예술’과 ‘통일강연’이 평생 직업으로 가져갈 만한 일일까? 물론 답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겨레하나예술단이 평생 일할 수 있는 든든한 회사로 성장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꼭 거기까지 발전하지 않아도 좋을 법하다. 겨레하나예술단과 같이 의미있게 거쳐갈 수 있는 기업이 있다는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가? 탈북자들에게는 높이 올라가는 ‘사다리’보다 좀 더 멀리 갈 수 있는 ‘징검다리’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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