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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2일 기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주최한 비공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했다. 주제는 ‘재외탈북자의 인권’이었고 ‘실태변화와 관련국들의 정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걸려있는 간판만 보면 누구든 이 토론회가 재외탈북자들의 인권 실태를 이야기하고 그것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상식’과는 어긋나게 그 자리는 재중탈북자들의 인권실태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볼 수 없고 시종일관 북한인권NGO를 ‘때리는’ 자리, 나아가 ‘때려잡자’는 결의의 자리였다.
첫 번째 토론의 주제는 ‘재중탈북자의 실태와 인권’이었다. 발제자는 ‘비디오저널리스트’ 조천현 씨였다. 그가 발표한 발제문의 제목은 ‘재중탈북자 실태와 NGO의 문제’였다. 토론회 시작 전에 발제문을 쭉 읽어보면서 기자는 지독한 아마추어리즘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웃고 넘어가려 했으나 발제의 내용을 들으며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뿔싸,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연길시 = 연변시?
발제문은 첫 페이지부터 엉터리 투성이였다. 조씨는 “한 NGO 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재중탈북자의 수치가 30만 명이라고 하였다”면서, “당시 연변시 인구가 35만 명이고 탈북자들이 주로 조선족 사회에 머물고 있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탈북자가 30만 명이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우스웠다. 중국에는 ‘연변시’라는 곳이 없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주도(州都)인 연길(延吉)시는 있다. 인구는 약 25만 명이다.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인구는 약 220만 명이다. 연길시를 ‘연변시’라고 하는 것에서 중국 현지 취재를 얼마 해보지 않은 흔적이 역력히 보이고, 기본적인 수치마저 틀렸다. (사족으로, ‘NGO 단체’라는 표현도 어색하다. NGO면 NGO지, ‘NGO 단체’는 또 뭔가.)
조씨가 말한 NGO는 대북지원단체인 <좋은벗들>을 말하는 것이리라. <좋은벗들>은 1997년 9월 30일부터 1998년 9월 15일까지 11개월 동안 중국 만주지역에서 탈북자 1,694명을 면담 조사하여 식량난으로 인해 북한 주민 3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으며, 1998년 11월 16일부터 1999년 4월 3일 동안에는 중국 동북 3성(요녕, 길림, 흑룡강성) 2,479개 마을을 대상으로 탈북자의 숫자를 파악, 중국 내 탈북자의 숫자가 대략 14~19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내용의 추정치를 발표했다.
문제는 10만이니, 15만이니, 30만이니 하는 숫자가 아니다. 그만큼 중국 내에는 많은 탈북자들이 있으며 여전히 몇 만 명의 탈북자들이 체포와 송환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많든 적든 우리 동포이며, 우리와 동시대 인간이다. 조씨는 그 실태에 대해 논할 생각은 않고 뜬금없는 숫자놀이로 발표의 첫머리부터 본질을 흐리기 시작했다.
‘연길시 – 조씨가 말하는 연변시 – 의 인구가 25만 명밖에 안 되는데 탈북자의 숫자가 30만 명이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조씨의 주장은 그의 아마추어리즘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탈북자들은 연길시에만 은신하고 있지 않다. <좋은벗들>이 조사했던 대로 탈북자들은 중국 동북3성 일대에 널리 퍼져있다.
동북3성의 인구는 요녕성이 4천 2백만 명, 길림성이 2천 8백만 명, 흑룡강성이 3천 7백만 명이다. 합하면 1억 명이 넘는다. 탈북자들은 그 1억 명의 바다 위에 뜬 작은 나뭇잎처럼 존재하고 있다. 더구나 체포와 송환을 피해 한반도의 3~4배 거리만큼 멀리 떨어진 중국 남방까지 이동해 은신해 있는 탈북자들도 있다. 따라서 조씨의 엉뚱한 상상처럼 25만 연길시 인구에 탈북자 30만 명이 얹혀있는 식이 아니며, 조씨의 눈에 잘 띄지 않는다고 탈북자가 얼마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군생활이 어렵다 = 군입대를 후회한다?
11개월 동안 1,694명을 면담하거나 5개월 동안 2,479개 마을을 대상으로 1만여 명에 이르는 탈북자들을 조사한 <좋은벗들>의 결과에 대해서는 일언지하에 폄훼했던 조씨가 이어지는 발제문에서는 자신이 2년 동안 100명의 탈북자들을 면담한 결과를 ‘통계치’로 내어놓는다. 어리둥절할 따름이다.
경력을 앞세우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자도 조씨에 못지 않게, 혹은 그보다 더 중국을 오가며 탈북자들을 만났다. 그런데 조씨의 발제문을 읽다 보니 조씨가 중국에서 만난 탈북자는 기자가 만난 탈북자와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들인가 하는 의아함이 들었다. 아주 작은 팩트(fact)를 일반화해 버리거나, 자기가 보고 싶은 팩트 몇 가지만 묶어서 자기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는 능력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는 ‘저널리스트로서의 함량미달’을 뚜렷이 보여준다.
조씨는 발제문에서 “여성들의 경우 많은 수가 탈북생활을 후회하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기자도 중국에서 그런 사람들을 봤다. 100명 정도를 만나면 3~4명 정도 될까? 조씨가 ‘많은 수’라고 했는데, 조씨는 일상 생활에서 ‘많다’라는 것을 도대체 어느 정도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기자의 경험으로 볼 땐 결코 많지 않았다.
물론 사람이 자신의 생활형편에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며 탈북자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탈북을 ‘후회’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런데 조씨는 탈북자들의 어려운 생활형편을 이야기하면서 ‘탈북생활을 후회한다’고 함으로써 마치 탈북 자체를 후회하는 것처럼 완전히 본말을 전도하고 있다. 군대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군인들을 인터뷰하고 나서 “군입대를 후회하는 병사가 많다”고 기사를 쓰는 꼴이다.
현상을 왜곡하고 본질을 외면하는 사시(斜視)
이상의 내용 이외에도 조씨의 발제문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무지와 궤변으로 일관되어 있다. 무언가를 꼭 막아야겠다던가, 무언가를 꼭 만들어내야겠다는 집념에 꽉 사로잡혀 오로지 거기에만 팩트를 끼워 맞춘 것이 너무 드러나 있다.
조씨는 발제문에서 “대다수 탈북자들의 공통점은 기획망명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한 “탈북 여성들은 중국 내에서 인신매매 되는 경우도 많지만 북한에서부터 인신매매범이나 브로커의 꾀임에 빠져 중국으로 탈북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라고 주장한다. 조씨는 ‘대다수’, ‘많은’과 같은 모호한 표현을 즐겨 사용하고 있는데, 기자가 중국에서 만난 탈북자들의 ‘대다수’는 전혀 다른 답변을 했다. 대다수 탈북자들의 공통점은 기획망명으로 인해 “그나마 탈북자들의 생의 활로가 열렸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 내에서부터 중국으로 인신매매되어 온 여성 탈북자들이 많지만 실태를 바로 알아야 한다. 여기서 조씨처럼 그냥 ‘인신매매’라고 해버리면 여성을 사창가나 술집에 팔아 넘기는 식의 인신매매를 상상하겠지만 북한에서 중국으로 여성들이 인신매매되어 온 경우는 베트남 처녀가 남한 총각에게 시집을 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기 의사에 의한 인신매매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완전히 속아서’ 국경을 넘는 경우를 기자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으로 시집을 보내달라고 북한 여성이 부탁하고 중개인을 수소문하여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그렇다고 인신매매를 합리화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인신매매라고 하면서 나아가 ‘인신매매범’이라고까지 하는 조씨는 과연 어느 나라 사람인지 궁금하다.
물론 조씨처럼 기획망명과 인신매매의 폐단을 이야기하는 탈북자들을 기자 역시 여럿 만났으며, 그러한 팩트만 모은다면 조씨보다 훨씬 더 많이 엮어 기사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조씨는 자신의 주장에 신빙성을 높이려는 듯 탈북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인용하면서 ‘0000년도에 탈북한 000씨’라는 식으로 소개까지 하고 있는데, 중국 내 탈북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하루 종일 이야기하다 보면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오고, 그 가운데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찾아내자면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기획망명과 인신매매에 대해 기자도 부정적이지만 ‘조씨와 같은 방식은’ 정말 ‘아니다’.
기자 개인적으로 조씨에게 악감정은 없다. 비단 조씨뿐 아니라 탈북자들의 인권문제를 다루는 데서 현실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 기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먼저 사실관계(fact)부터 정확히 파악하고, 무수히 많은 사실관계들을 모아 탈북자 인권문제라는 ‘건축물’을 만들고, 그 다음에 비로소 자신있는 ‘관점’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관계도 부족한 상태에서 무슨 제대로 된 ‘관점’이 나오겠는가?
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