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심경토로] “내가 말한 정보, 北에 들어갈까 겁나요”

▲ 2004년 7월 동남아에 체류중이던 탈북자들이 서울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는 모습(연합)

국내정착 탈북자들의 ‘말 못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정착 탈북자들은 남한으로 오기까지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경험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들은 고민에 쌓여있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는 자기만 노력하면 잘 사는 사회’라는 말을 들어왔다. 한국에 와서 열심히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도 이러한 말을 마음 깊이 새기면서부터다.

그러나 적수공권의 탈북자들에게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담이 있다. 그것은 탈북자들에 대한 남한 사람들의 의식이다. 기자는 국내정착 탈북자들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몇 명의 탈북자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인터뷰 자체를 회피했다. 탈북자들만이 가지는 일종의 피해의식이다. 인터뷰에 응하는 탈북자들도 익명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진정 ‘자유’를 찾았는가?

탈북자들이 인터뷰를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말하는 정보가 언제 어떻게 북한에 들어갈지 불안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자유의 땅 한국에 와서도 마음대로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자기가 좋아서 찾아온 땅이고, 또 언젠가 ‘잘 나가는 모습’으로 고향에 돌아가고 싶지만, 앞으로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심히 불안해 한다.

이들은 한국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진실을 털어놓는 데 주저한다. 남한 사람들의 편견 등이 두렵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일 정권이 탈북자들을 데려오는 남한 정부를 막말로 비난하고, 방송을 통해 탈북자들을 ‘배신자’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으려 하는 일부 남한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탈북자들은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경우도 생긴다. 내가 진짜 자유를 찾아 죽음을 무릅쓴 모험을 감행했던가? 아니면 북한이 주장하는 남한 당국의 ‘강제납치’인가? 이 같은 질문은 일부 남한 사람들이 우리 탈북자들에 대해 ‘진짜로’ 알고 싶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기자도 탈북자다. 최근 기자는 같은 탈북자들끼리 만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그 내용을 대담형식으로 간추려 본다.

“KBS 라디오 도움 많았다”

– 왜 탈북하셨나요?

북한에서 1993년 5월 러시아로 벌목하러 갔습니다. 넓디넓은 시베리아 광야에서 돈을 벌어 조국으로 돌아가 아내와 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매일같이 힘들게 일해도 노임은 현금이 아니고 돈표(현금 대신 물건을 살 수 있는 쪽지)로 받았습니다. 너무 힘들고 돈도 조금 줘 외부에 나가 돈을 벌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다시 들어가니 처벌을 주고 일은 시키지 않고 감금시켰습니다. 내가 듣기에는 북한이 러시아에 빚진 돈을 갚으러 우리가 대신 들어와 노동한다고 하더군요. 그걸 안 다음부터 다시 북한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 그 후에는 어떻게 살았나요?

벌목장을 탈출해 모스크바로 갔습니다. 한국 사람들을 만나고 교회를 찾아가 일자리를 부탁해 삯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90년대 중반에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불쌍히 여겨 인심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갈까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결정적으로는 KBS 라디오 덕분이었습니다. 나는 소형 라디오를 사가지고 밤이면 베개맡에 놓고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곤 했습니다.

– 당시 KBS방송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었던가요?

KBS 라디오 방송은 참 재미있는 게 많았습니다. 이소연의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 이지연의<통일열차>, <시사칼럼> 등 많았습니다. 특히 <노동당 간부들에게, 대한민국으로 나오십시오. 자유를 찾아 독재를 박차고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으로 나오십시오>라는 선동적인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한으로 가야 살길이 열릴 거라고 확신하고, 10년 동안 노력하던 끝에, 작년 한국에 입국하게 된 것입니다.

– 그런데 와보니 어떠신가요?

처음엔 열심히 하면 살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점점 무서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남조선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남한이 잘사니까 돈이나 바라보고 얻어먹으러 왔다고 생각해요. 쉽게 말해 ‘코리안 드림’ 때문에 왔다고 말합니다. 어찌 보면 김정일이가 우리 탈북자들을 비방하니까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는 거지요. 우리가 돈이나 바라고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옛말에 고기를 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배워주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 사회에서 먹고 살자면 직업이 있어야 되는데 취직이 안 됩니다’

부모 자식과 헤어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하~ 이게 무슨 꼬라지냐 말이요.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가면 탈북자라고 말도 안 해보고 문전 박대합니다. 어쩌다 승낙이 되어 집에 갔다가 다음날 출근하면 ‘탈북자이기 때문에 안 쓰겠다’고 쫓아버립니다. 정말 이럴 땐 막막합니다. 열도 받고, 여기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고… 또 어딜 가겠소?

–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요. 경쟁력을 키우고… 또 배우고…

열심이요? 가정이 안착이 안 되는데, 어떻게 열심히 삽니까? 입국할 때 (북한에)아내가 있다고 고백했더니 장가를 갈 수가 없습니다. 북에 있는 아내와 ‘이혼’을 해야 한다는 거지요. 변호사를 찾아가 재판을 하려고 하니, 5백만 원을 내라고 해요. 법이 안 된다는데 돈이 있다고 되겠나요?

탈북자 인식에 방송이 문제 있어

– 무엇이 가장 어렵나요?

문제는 매스컴입니다. 탈북자들이 조금 잘못한 걸 가지고 크게 떠들어대니, 가뜩이나 이미지 나쁜 북한 사람들을 남한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전에 듣던 KBS 프로그램도 없어져서 다시 듣자고 보니 이젠 들을 수도 없더군요.

언젠가 KTV 채널에서 북한 중앙TV방송이 나와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북한 선전물이 토하나 바뀌지 않고 오리지널로 방영되는지… 남한 사람들이 그걸 보고 북한이 저렇게 살기 좋은데 왜 나왔는가 묻습니다. 북한 방송이 선전하는 거 하고, 진짜 인민들의 생활이 천지차이라는 걸 여기 사람들은 잘 분간을 못해요. 아무리 내가 설명해도 마이동풍이에요. 한마디로 북한이 ‘흑백 포장국가’라는 걸 갈라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습니다.

기자와 나눈 대담은 국내정착 탈북자 한두 사람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현실이 그렇다. 탈북자들에게는 입국 당시와 비교해서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물론 탈북자들도 열심히 노력해서 살아야 한다. 감옥과 같은 북한에 비하면 남한은 좋은 사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아쉬움은 많다. 특히 탈북자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아지지 않고 더 나빠지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북한 방송을 통해 탈북자들을 계속 비난하고, 남한의 방송들은 마치 탈북자들에게 문제가 있고 북한 방송이 맞는 것처럼 보도한다. 무엇이 잘못되어도 많이 잘못된 것 같다.

아무래도 남한의 방송들이 김정일 정권의 실체를 제대로 알려면 아직 한참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들은 말이 있다. ‘진실을 영원히 가두어 둘 수는 없다’고…

나는 이 말을 진실로 믿고 싶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hyj@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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