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가족 강제 이주라는 또 다른 주민 박해

국내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고 있다. 우선 국내 입국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하는 돈의 규모가 1천만 달러(약 110억)가 넘을 것이라는 보고도 나왔다.


지난해 11월 한 사회 단체가 1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30세 이상 탈북자 3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50명(71.4%)이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을 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 1∼2회(81%), 금액은 회당 100만∼199만원(47.6%)이 가장 많았다.


탈북자 출신 조선일보 기자 강철환 씨는 얼마 전 북한인권관련 토론회에서 “예전에는 김일성과 항일운동을 같이 하던 이른바 ‘백두산 줄기’가 떵떵거리며 살던 시절이 있었고, 한때는 북송교포 출신과 그 가족, 즉 ‘후지산 줄기’가 잘 살던 시절도 있었는데, 최근에는 탈북자를 가족으로 둔 ‘한라산 줄기’가 잘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휴대전화 등을 이용한 국내 입국 탈북자와 가족 간의 접촉은 단순히 가족 간의 소식과 자금 전달 통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외부 소식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가고 북한 내부 소식이 외부로 누출되는 정보이동 공간이 되고 있다.


북한의 식량 사정이나 북한 당국의 주민 통제 내용과 수준이 고스란히 거의 실시간으로 외부에 알려지고 있다.


남한의 생활수준이 북한 보다 훨씬 높고, 최근 중동지역의 민주화 바람이 거세다는 소식이 탈북자 가족들을 통해 북한으로 빠르게 스며들고 있다. 아무리 작아도 일단 구멍이 난 풍선은 지속적으로 바람이 빠지기 마련이다. 탈북자와 그 가족들 사이에 오고가는 돈과 정보가 김정일 정권과 북한 독재체제의 바람을 빼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본지 내부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최근 탈북자 가족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했다.


양강도 소식통은 31일 “월남자(탈북자) 가족들을 강제 격리하라는 방침이 내려졌다는 소문이 계속 있었는데 28일 저녁에 두 가족이 강제 이주 당했다”면서 “보안원들이 들이 닥쳐 이 가족들에게 간단히 짐을 챙기게 해서 트럭에 실어 데려갔다”고 말했다.


모 탈북자 단체도 얼마 전 “북한 당국이 최근 양강도 각 시·군의 주민 가운데 남한에 연고자가 있는 주민이나 탈북자 또는 행방불명자의 가족을 오지로 추방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주장한 바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000년대 초반에도 남한에 친척이나 가족을 둔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적이 있었다. 무산, 회령, 새별, 온성 등 국경지역 도시에서 각각 수십 세대씩의 탈북자 가족들이 부전, 장진, 신흥, 홍원, 리원, 고원 등 함경남도 고원지대 오지로 강제 이주됐다.


물론 1년이 지나면서 보위부의 감시가 느슨해지고, 뇌물이 오고 가면서 퇴거 조치 돼 대부분 살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강제 이주로 인해 수백 세대의 가족들이 가슴 졸이며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에는 이주 대상이 양강도에서만 1천 세대에 이른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에 비해 훨씬 규모가 크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수천 명이 생활 터전을 잃고 불안과 폭력의 공포에 떨 것이다.


헤어진 가족의 안부를 묻고 돈을 받고, 외부 소식을 전달받았다는 이유로 가족 전체를 오지로 추방하는 행위는 반인권적이다 못해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대규모 이주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강제 이주지역이 제2의 정치범수용소로 전락할 수도 있다. 북한에서 새로운 형태의 인권참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자신의 잘못에서 비롯된 일에 대한 책임을 애꿎은 북한 주민들에게 묻는 적반하장식 이주정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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