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南北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여행자'”


▲영화 ‘여행자’ 스틸컷

“탈북한 여자들 넘어오면서 강간도 당하고 중국에서 몸도 팔고 그런다던데…금숙이 애도 어쩌다 생겼는지 알게 뭐에요?” “중국 놈 앤지 어디서 몸 팔다 생긴 앤지, 그거 다 우리가 세금내서 먹여 살리는 거 아냐. 그게 생각해보면 열 받는 거라고, 우리가 걔네 아빠야?”

영화 ‘여행자’는 탈북 미혼모 ‘금숙’의 직장 동료들이 그녀에 대해 뒷담화를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금숙은 탈북과정에서 인신매매로 중국인에게 팔려가 원치 않는 아이까지 가진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다. 그녀는 중국에서 어렵게 탈출해 남한에 왔지만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 속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틴다.

그런 일상에 진절머리가 난걸까? 금숙은 백일이 갓 지난 딸 ‘순미’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에 병가를 낸 채 충동적으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도중 지갑을 도둑맞고 홀로 춘천을 배회한다.

40분 러닝타임의 이 영화는 금숙의 이야기를 통해 남한에 정착한 탈북 미혼모의 삶을 조명한다. 영화 속에서 그녀는 지겨운 일상을 잊고자 여행길에 오르지만, 여행길에서조차 사람들의 편견과 마주한다.


▲영화를 제작한 이원식 감독

‘여행자’를 제작한 이원식 감독은 12일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기존의 많은 영화들이 탈북자 문제를 재밋거리와 자극적인 소재로 사용해 왔는데, ‘여행자’는 그런 영화와는 구별되게 탈북자의 하루하루를 덤덤하게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금숙에게 남한은 따뜻하고 안정감 있는 곳만은 아니다”며 “그녀는 북쪽에도 남쪽에도 속하지 않는,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한 불안감을 느낀다. 이는 그녀가 여행을 떠나며 느끼는 감정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여행자’는 그런 의미에서 붙여진 제목이다”고 말했다.

이 감독이 탈북자 관련 영화를 찍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아내가 탈북 미혼모 모임에 갔다가, 그들이 남한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하고,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중압감에 아기를 버리고 싶은 충동을 수시로 느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면서 “아내가 전해준 탈북 미혼모들의 사연에서 영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 영화를 통해 한국 사람들이 탈북자들의 정착생활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길 바란다”면서 “탈북자들도 우리와 똑같이 자유와 인권을 누려야 하는 우리와 같은 존재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2회 북한인권국제영화제 제작지원작품인 ‘여행자’는,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작으로도 선정됐다. 영화는 이대 후문에 위치한 ‘필름포럼’에서 오는 21일 오후 2시 20분과 5시 30분에 각각 2관과 1관에서 상영된다. 당일 이 감독과 배우들은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