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의 지팡이’ 장은주 경사

“그들이 아닌 우리죠.”

강원도 원주경찰서 보안과의 장은주(43.여) 경사는 경찰이라기 보다는 원주지역 50여명 탈북자들의 ’큰언니’이고 ’큰누나’다.

1996년부터 탈북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시작한 장 경사는 서울 북부경찰서와 동대문경찰서, 이제는 강원도 원주경찰서까지 그동안 200여명의 탈북자들을 맡아왔다.

장 경사는 경찰 신분이지만 탈북자들에게는 그냥 한 가족처럼 누나이고 언니이고 싶단다.

그는 “우리 사회에 들어온 탈북자들은 더 이상 ’그들’이 아니라 ’우리’”라며 “탈북자들을 관리하는 경찰이 아니라 어렵고 힘든 일들을 들어주면서 해결해주는 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원주에 정착한 한 여성 탈북자의 보호자로 맞선 장소에 나가기도 했다.

장 경사는 “중국에서 임신을 했다가 국내에 들어와 낙태하려던 그 친구에게 아이를 낳고 입양토록 했다”며 “이제 남쪽에서 새로운 남편을 얻어 새출발을 하려는데 제가 작은 힘이라도 되어주고 싶어서 맞선도 주선했고 보호자로도 참석했다”며 맞선 자리에서 푸짐하게 고기도 얻어 먹었다고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탈북자 보호만 10년 넘게 해온 그가 가장 안타까워 하는 것은 탈북자들을 편견의 시각으로 보는 우리 사회.

그는 “탈북자들이 일을 안한다고 하지만 그들에게 제대로 일할 기회를 주지 않는 우리사회의 닫힌 태도는 정말 문제”라며 “식당 등에 고용된 탈북자들이 임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외국인 노동자 취급을 받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속상하다”고 말했다.

특히 탈북자라고 깔보고 무시하는 업주 주인들을 볼 때면 잡아 가두고 싶은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그래서 원주에 와서는 탈북자들을 취업을 시켜 우리 사회에 동화시키는데 온 힘을 쏟았고 지금은 50여명의 탈북자들이 거의 모두 정규직은 아니더라도 식당 등에 일자리를 잡아서 일을 하고 있다.

탈북자들을 그들의 눈높이에서 도와주는 장 경사의 노력 때문에 그가 맡고 있는 탈북자들은 꺼내기 어려운 사생활까지 말하며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여성 탈북자들은 임신이나 부인병 같은 속에 담긴 얘기를 털어놓기도 한단다.

가장 기억에 남는 탈북자가 누구냐고 묻자 주저 하지 않고 2000년 추석날 사망한 최모씨를 꼽았다.

북한에서 남편에게 구타를 당해 코뼈가 주저앉았다가 염증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비암으로 번졌던 최씨는 사망하기 하루 전날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전화를 걸어 장 경사를 병원으로 불렀고 2천500만원이 예치된 통장을 전달하면서 북쪽에 있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전해달라고 말을 한 뒤 다음날 숨을 거뒀다.

장 경사는 국내에 입국한 최씨의 남동생에게 이 통장을 전했고 북한에 살던 최씨의 두 딸들은 나중에 탈북해 국내에 들어왔다.

그는 탈북자들이 국내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탈북자 도우미의 역할이나 노동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지근거리에서 담당하고 있는 경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경찰이라는 신분 때문에 탈북자들이 자신들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 담당 경찰”이라며 “탈북자의 거주지에서 여러가지로 도와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장 경사가 가장 아끼는 탈북자는 찜질방에서 일하고 있는 김모씨.

김씨는 중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오면서 외로움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가 됐었지만 밤늦게까지 전화로 수다를 떨면서 김씨는 술을 멀리하게 됐고 이제는 찜질방에서 일을 제일 열심히 하는 직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마치 자기 일처럼 즐거워 했다.

장 경사가 몸 담고 있는 원주경찰서 보안과에서도 탈북자들을 도울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들을 마련해 탈북자들이 살기 가장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정보통신부와 협의를 통해 안쓰는 중고컴퓨터를 원주시에 정착한 탈북자들에게 모두 설치해 줬고 원주의료원과도 탈북자들에 대한 무료치료를 해주도록 협조를 이끌어냈다.

장 경사는 “탈북자들을 우리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이라고 여기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다”며 “그냥 내 동생처럼, 우리 옆집 사람처럼 생각하고 함께 살아갈 때만 1만명이 넘어선 탈북자 정착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앞으로 포부를 묻는 질문에 그는 “10년 넘게 쌓아온 노하우를 가지고 평생 탈북자들의 정착을 도와주는 지팡이처럼 살고 싶다”며 “탈북자들이 나를 경찰보다는 그냥 옆집 누나로 생각하는 것을 보면 엄격한 법집행을 하는 경찰관이 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며 크게 웃었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