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여서 연인과 헤어진 적 있어요”

▲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선수 황보영씨 ⓒ데일리NK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남자 집에서 반대해 헤어진 적도 있어요”

북한 아이스하키 국가대표 선수출신으로, 지난 3일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남북 아이스하키 친선경기에 나타나 이목을 집중시켰던 탈북자 황보영씨(28). 1999년 남한에 정착해 이제는 그녀의 모습 어디에도 북에서 왔다는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지만, 탈북자라는 이유로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했던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었다.

황씨는 “남자친구는 괜찮다고 했지만, 나로 인해 부모님과의 사이가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며 “앞으로도 부모님이 반대하면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체육대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황보영씨는 처음 남한에 와서 왔을 때는 여느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외래어가 많이 섞인 남한 사람들의 언어습관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러야만 했다. 특히 수업을 받거나 시험을 볼 때 못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들이 많아 힘들었던 생활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학교 선배들이 저보다 나이가 어려서 서로 다가가기 어려운 점도 있지만, 앞으로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고 싶다”며 “입학 전에는 운동 위주의 삶을 살았다면, 앞으로는 학교가 인생에 가장 큰 부분이 될 것 같다”고 늦깎이 대학생활에 대한 포부를 내비쳤다.

“졸업 후에는 청소년 상담사 되고 싶어”

‘청소년지도학’을 전공하고 있는 그녀는 이미 주변 사람들에게 상담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집에서뿐만 아니라 선수들도 고민거리가 생기면 그녀를 먼저 찾는다. 그녀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서 고민을 해결해 준다.

“얼마 전에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가 찾아왔어요. 그 친구 때문에 교수님 찾아 뵙고 조언 구하고 여기저기 자료 알아봐서 대학원에 등록시켜 줬죠.”

마치 자신의 문제를 해결한 듯 활짝 웃는다. 대학 졸업 후에는 청소년을 상담해주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단다.

아이스하키 여자 국가대표 선수로도 활동하고 있는 황보영씨는 지난해 뉴질랜드에서 처음으로 3승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남한 사회의 무관심한 반응에 실망감을 표했다.

“뉴질랜드에서 우승하고 돌아왔는데 꽃다발과 플래카드 한 장이 달랑 걸려 있는 거에요. 비인기 종목이라 사람들 관심도 없고, 이럴 땐 게임에서 이기나 지나 똑같다는 생각에 선수들의 사기가 떨어지게 돼요.”

그러면서 그녀는 “운동하는 환경은 열악해도 이런 면에서는 북한이 훨씬 좋은 것 같다”라고 말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남한 언론에서 전하는 북한사회의 모습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았다.

“얼마 전 북한사회를 다룬 영상을 봤는데, 보면서도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평양에서도 극히 일부분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것이 마치 북한 전 지역의 모습인 것처럼 보도하는 건 많이 왜곡된 거죠. 그보다 훨씬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은데…….”

집안에서는 맏딸로, 동생들에 대한 애정도 남다르다. 계절마다 동생들의 옷을 챙기는 것은 물론 동생들에게 고민이 있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녀 또한 “동생들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며 “동생들이 있어 든든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그녀는 “내년에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나가 좀더 넓은 시각을 갖고 싶다”면서, 잠시 입술을 지긋이 깨물며 “지금부터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고 목표를 향한 포부를 드러냈다.

2003년 일본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북한 선수들이 보여줬던 냉대에도 불구하고 이번 남북 아이스하키 친선경기장을 찾은 황보영씨. 그녀는 “예상치 못한 언론공세 때문에 혹시나 누가 될까 싶어 경기를 끝까지 보고 오지 못해 아쉬웠다”며 “북에서 같이 선수활동을 한 친구들 중에는 결혼한 친구들도 있는데 그 친구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가장 궁금하다”며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다.

이현주 기자 lhj@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