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를 ‘탈북자’라고 부르지 못한다면…

▲ 국내에 갓 입국한 탈북자들이 탈북자지원단체인 탈북자회관(관장 주선애)에서 정착 교육을 받고 있다.ⓒ데일리NK

노무현 정부의 임기 만료가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원망이 대선 표심으로 반영되고 있는 가운데 북한 인권과 탈북자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적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그 중에 탈북자에 대한 명칭을 ‘새터민’으로 바꾼 것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새터민’이라는 명칭에 거부감을 보이는 탈북자들은 통일부가 탈북자의 정체성을 은폐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명칭 변경을 시도했다고 의심한다.

‘새터민’이라는 용어는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후보가 통일부장관에 재임 중이던 2005년 1월에 처음 등장했다. 정 후보는 ‘탈북자’ 용어로 인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겠다고 도입 취지를 설명했다.

정동영 후보는 지난달 5일 한국교회갱신연구원 초청으로 대치동 서울교회에서 열린 특강에서 통일부 장관 시절 ‘탈북자’란 명칭을 ‘새터민’으로 바꾼 일화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통일대통령’의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터민’으로 명칭 변경을 시도하던 당시나 지금이나 탈북자 중에 이를 환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작 사회에서도 여전히 ‘새터민’보다는 ‘탈북자’가 널리 통용되고 있다. ‘새터민’이라는 용어가 환영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작 탈북자들이 자신들을 ‘새터민’이라고 부르지 않은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2005년 새로운 명칭 선정 과정에서 실시했던 전자공청회에서는 ‘자유민’(29.4%) ‘이주민’(16.0%) ‘새터민’(14.1%) 순으로 선호도가 나타났다. 그러나 통일부는 ‘새터민’이라는 용어가 북한을 자극하는 정치색이 없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선택했다. 당시 통일부는 ‘자유북한인’, ‘탈북자’ 등 정치적 색채가 있는 용어는 아예 설문조사에서 배제했다.

새터민은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물론 이 단어는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신조어(新造語)이다.

호칭이 달라졌다고 해서 탈북자 지원정책이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탈북자 지원 단체의 한 관계자는 “새터민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정동영 후보가 장관에 재임하던 시기 통일부가 ‘새터민’ 용어를 등장시킨 것은 북한정권이 탈북자 문제에 강경한 반발을 보이는 것과 관련되어있다고 주장했다. 탈북자라는 단어에 ‘북한 체제에 반대하고 탈출한 사람들’이라는 뉘앙스가 내포돼있기 때문에 정부가 남북관계를 고려해 명칭 변경을 시도했다는 지적이다.

탈북자단체들은 ‘탈북자’라는 말에는 “폭압적인 북한정권을 거부하고 자유를 찾아 수용소와 같은 그 땅을 탈출한 사람”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말한다. ‘새터민’이라는 용어는 그 본질적 의미를 은폐하고 탈북자들의 정체성을 소멸시킨다고 주장한다.

탈북자동지회의 한 간부는 “새터민은 그저 먹고살기 위해 남한에 온 경제 난민이라는 뜻으로 들려 우리가 더욱 비하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한 탈북대학생은 “왜 탈북자들만 ‘새터민’인가, 사실 국제결혼을 통해 한국 국적으로 귀화한 수만 명의 외국인들도 엄연한 의미에서는 ‘새터민’이 아닌가?”라고 되묻는다. 이어 “친북좌파들이 ‘새터민’을 강조하는 이면에는 탈북자들을 북한인권문제에서 배제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숨어있다”고 꼬집었다.

일반인들은 명칭이 무슨 큰 문제가 되느냐고 말하지만, 막상 탈북자들을 만나 보면 북한에서 온 자신들이 어떻게 불려지느냐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정책을 뒤짚는다면 일관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다수의 탈북자가 스스로 ‘새터민’이라 불려지기를 거부하고 있는 조건에서 ‘일관성’만을 강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탈북자들이 스스로 빼앗긴 이름을 다시 찾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차기 정부는 이 문제를 재검토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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