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 선덕여왕 기운 서린 서라벌을 찾다

지난 9일 탈북자종합회관(관장 주선애)에서는 1박 2일 여정으로 탈북자들을 위한 경주관광을 진행했다.

탈북자종합회관 관장 주선애 선생은 여든이 넘은 고령이다.

그는 경주관광을 떠나기에 앞서 탈북자들에게 “중국에서 의지할 곳도 없고 지켜주는 이 없이 쫒기며 유랑하다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입국하고도 전혀 다른 문화와 생활 등으로 고생하는 탈북자들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고 싶어 ‘ 탈북자종합회관’을 운영하게 됐고, 우리 역사를 먼저 아는 차원에서 경주관광을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경주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최근 MBC에서 방영하는 드라마 ‘선덕여왕’을 떠올렸다. 선덕여왕이 나라를 통치하면 거주하던 서라벌과 안압지(왕궁)와 석빙고, 첨성대, 불국사 등 여러 유적지를 탐방했다.

먼저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와 백제를 통합해 최초의 민족(삼국)통일을 이뤄낸 신라 태종무열왕(김춘추)의 묘를 돌아봤다. 고대 역사의 통일이지만 분단의 고통을 몸소 체험한 탈북자로서 그 의미가 새삼 가슴에 다가왔다.

잠시 동안 김춘추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하면서 거북 모양으로 만들어진 탑비로 이동했다.

일행은 안내자로부터 거북이 탑비에 조각된 4개로 만들어진 뒷발가락에서 유래한 이야기도 듣게됐다. 이곳 비문에는 신라의 영토를 침범해 각종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들을 물리친 김춘추의 업적이 새겨져 있다.

왜구들이 우리 나라를 강점했던 시기에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한 일본인이 이 탑비를 돌아보다가 ‘이 거북조각은 사실과 다르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치가 없다’고 시비를 걸었다.

그의 말인즉 거북이의 앞발가락과 뒷발가락은 다 같이 다섯개인데 이 거북이의 뒷발가락은 네개 밖에 없으니 국보적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말이었다. 이 때 그 곁을 지나가던 한 초동이 그 말을 듣고 들고 가던 삼태기를 그 일본인의 앞으로 내밀었다.

그 안에는 거북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었는데 거북의 발가락은 분명 앞 뒤가 모두 다섯개였다. 이 일본인이 자기 말이 맞지 않냐고 의기양양해 하자 초동은 거북이를 한번 일으켜 보라고 말했다.

그 일본인이 거북이를 다그치자 거북이는 일어나기 위해 목을 빼들었다. 그러자 거북이의 뒷발가락이 4개로 보이는 것이었다. 거북이가 걷기 위해 발을 세우면 발가락은 어느새 4개처럼 보인 것이다. 비문의 거북이는 이 형상이라는 것이 초동의 설명이다. 이에 할 말을 잃은 일본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를 떴다는 이야기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김유신의 여동생 김문희와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도 우리 일행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그곳을 지나 천문을 관측했다는 첨성대와 그 시대에 얼음을 보관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석빙고도 흥미로웠다.

다음으로 삼국통일 후 찾아오는 외국손님들에게 신라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문무왕이 꾸렸다는 아름다운 연못 안압지를 구경했다. 연못을 파면서 나온 흙으로 만들었다는 수림이 무성한 정원도 볼거리였다.

751년에 지었다는 불국사의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은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정교한 건축 기술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지난 8월에 입국한 탈북자 김모(50) 씨는 “북한에서 굶다 못해 중국에 가 돈을 벌려고 탈북했다가 여기까지 왔다”며 “북한에 아내와 아들이 남아있는데 언젠가는 이곳에 꼭 데려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에 나와서야 세상을 알게 됐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 밖으로 나와 세상을 보고 비로서 눈을 뜬 것과 같은 심경이었다”며 “가족과 함께 못한 점은 아쉽지만 탈북자들과 함께 우리 역사를 돌아본다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고 말했다.

북한에서 아버지와 동생을 여의고 탈북한 유모(38) 씨는 “두번 탈북했다가 모두 중국 공안에 잡혀 북한으로 끌려갔었다. 세 번째 탈북 시도에 성공해 한국까지 올 수 있었다”며 “탈북한 후 목숨만 부지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경주 관광을 하고 있으니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에도 묘향산이나 금강산 등 관광지들이 있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구경 갈 엄두도 내보지 못했었다”며 “한국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는데다 이렇게 역사 유물까지 돌아볼 수 있게 돼 감격스럽다”고 덧붙였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에서 일행은 피곤한 나머지 대부분 잠이 들었다. 언제가 통일이 돼서 온 가족이 함께 북한에 있는 명승고적을 유람할 날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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