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 北농촌 실상 증언

“(함경북도) 무산에 있었는데 당시 아편을 심었다. 14세 어린이가 아편농사에 동원되기도 했다”

1998년 탈북한 뒤 중국을 거쳐 2003년 남한으로 온 이숙영(48ㆍ여ㆍ가명)씨는 최근 20년 간 극도로 어려워진 북한 농촌의 실상을 이같이 전했다.

이씨는 28일 서울대 통일포럼 초청 탈북자 간담회에 차수현(34ㆍ가명)씨와 함께 참석, 1970년대 이후 최근까지 북한 농촌의 변화를 생생히 털어놨다.

고교를 1976년 졸업한 뒤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당의 ‘농촌 기계화’ 교시에 따라 밭갈이와 트랙터 운전 일을 했다는 이씨는 “당시에는 배급도 잘 나왔고 대학생들도 농촌에 지원해 모내기와 김매기를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그러나 1986년 큰 수해가 나고 이듬해인 1987년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 뒤 배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비료 지원도 끊기자 사람들이 살 길을 찾아 떠나면서 농장 자체가 존폐 위기에 몰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1995년부터는 배급이 전혀 나오지 않아 농민들이 조그만 텃밭을 가꿔 가족 식량을 마련했고 국가 농장 농사는 아예 짓지 않았다”고 전했다.

함북 온성 출신으로 1997년 탈북한 뒤 5년만에 남한에 왔다는 차씨는 “1990년부터는 비료와 석유가 없어 사람들이 모두 삽을 메고 밭을 갈고 잡초를 뽑았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에서 석유가 들어오면 군대로 다 가기 때문에 트랙터가 있어도 운용을 못하는 것이 기막힌 현실”이라며 북한 농촌 상황이 3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그는 “북한 농촌에는 대부분 나무를 때 난방을 하며 일부 집에서만 석유를 땐다”며 “특히 겨울에는 전기가 부족해 계속 촛불을 켜 놓는다”고 전했다.

차씨는 “북한에서 30년 살았는데 구두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다. 생산이 이뤄지고 돈이 돌아야 일을 해서 물건을 살 텐데 이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접경 지역 남자들은 가족 생계를 위해 중국을 몰래 드나들며 장사를 한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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