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가 본 어처구니 없는 ‘선군정치 토론회’

나는 탈북자다. 8일 저녁 한국기독교회관 강당에서 열린 ‘6.15공동선언실천청년학생연대’ ‘한국민권연구소’ ‘전국대학신문기자연합’ ‘숭실대 총학생회’가 공동주관한 ‘선군정치 대토론회’에 참가했다.

이미 김정일 체제를 몸으로 겪은 탈북자로서 이 토론회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어 참가소감을 간단히 적는다.

이날 사회자인 김민웅 성공대회 교수는 “우리사회의 좌우를 떠나서 선군정치를 객관적으로 알기 위해 토론회를 가진다”는 짤막한 소개가 있었다.

이어 세종연구소 정성장 연구위원과 의문사위 조사관이었던 김삼석씨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었다. 김진환 현대사연구소 상임연구원과 류옥진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이 토론자로 참석했고, 대학생 패널이 1명이 참여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사회인 만큼 어떤 토론회도 열 수 있고 또 어떤 말이라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토론회는 왜 열렸는지 그 목적조차 불분명했고, 토론자들의 자질부터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애써 ‘중립’ 지키려던 발표자에 서글픔 느껴

발표자 정성장 연구위원은 북한이 선군정치를 하는 이유에 대해 “미국의 핵위협으로부터 군 중심의 위기관리 전략”이라고 설명하면서 현 북핵사태에 대해 미국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그는 그러나 현 상황에서 북한이 선군정치를 어쩔 수 없이 하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선군정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그나마 다른 발표자나 토론자보다는 애써 중립을 지키는 모습이었다.

문제는 김삼석 씨의 발표였다. 그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김정일 독재와 선군정치를 찬양하고 홍보했다.

그의 주요 발언들을 나열해보면 “선군정치가 북한의 경제를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북한이 유일하게 미국과 맞장뜨는 국가다” “미국이 북한을 이라크나 아프카니스탄처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당, 정, 군, 민이 똘똘 뭉쳤기 때문이다” 등등이었다.

심지어 “북한의 선군정치가 동북아를 비핵화하고 한민족의 통일을 이룩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발언에서 그 어떤 합당한 논리를 찾을 수 없었고, 오로지 김정일 정권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했다.

이어진 한국민권연구소 류옥진 상임연구원의 발언은 더 가관이었다. 한국민권연구소 소장은 최근 ‘일심회’ 간첩단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김승교 변호사다.

이날 류씨는 “선군정치는 박정희 정권의 군사독재와 다르다” “선군정치는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에서 군을 앞세워 혁명을 완수하는 것이다” “선군정치는 북한의 90년대 후반 경제성장을 가져오는데 큰 힘이 되었다”고까지 말했다.

누구를 위한 ‘선군정치’인지 아는가?

나는 이들이 의도적으로 김정일의 선군정치를 두둔하든, 아니면 북한에 대해 정말 이해가 부족하여 이런 발언을 했든 간에 대한민국 사회에 정착해 사는 탈북자의 한 사람으로서 북한의 진실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아직도 고향에서 김정일 독재의 탄압에 신음하는 친지들과 벗들에게 죄를 지은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이들이 변호하는 김정일의 선군정치는 무엇 때문에, 과연 누구를 위해 있는가?

이들은 선군정치가 ‘미국의 위협 때문에 빚어진 위기관리 자구책’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의 발표내용을 보면 선군정치에 관한 인용자료가 북한당국이 공식적으로 발행하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방송의 내용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또 남한의 많은 북한전문가들이 쓴 ‘선군정치 비판’에 대한 자료는 색안경을 쓰고 본다. 게다가 탈북자들의 체험에 바탕한 증언은 애써 무시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말인지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는 이들이 북한당국의 대외선전용 정보와 북한내부에서 실제 행하는 정책의 차이가 완전히 다르다는 기본적인 상식이나 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선군정치는 김일성 사망후 김정일이 불안한 자신의 개인독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로봇과 같은 군대를 앞세워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북한주민들이면 모두가 아는 상식중의 상식이다.

김정일이 이렇게 군사우선주의(선군정치)에 집착하는 근본 이유는 김일성과 같은 카리스마가 없기 때문에 군대를 앞세워 공포정치를 하지 않으면 정권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죽은 김일성을 신격화시켜 자신을 ‘신의 아들’처럼 묘사하고, 미국이 북한을 침공한다는 구실을 만들어 북한주민들을 자신을 중심으로 단결시키기 위해 핵 문제를 유발하고 한반도 주변을 긴장상태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민들을 자기 마음대로 관리하기 힘든 것이다. 이렇게 해야 북한주민들이 미군의 공격이 두려워 김정일독재체제에 억지로라도 뭉쳐야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90년대 중반 식량난으로 대아사 기간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탈북했다. 대략 10만 명~30만 명이 중국 등지에서 유랑생활을 했다. 계속된 중국 공안의 강제북송조치로 지금은 숫자가 줄어들었을 것이다.

탈북자들이 많아지면서 외부의 정보도 그동안 많이 들어갔다. 그것도 자신이 가장 믿는 부모와 형제로부터 들어오는 외부의 소식이다. 이는 북한내부에 자주 드나드는 외국인들이 북한주민들에게 흘리는 정보와는 대비가 되지 않는 효과적이었다. 지금은 국경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한국의 사정을 너무 잘 안다.

이러한 환경의 변화는 김정일 독재체제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북한주민들이 외부정보에 눈을 뜨고 그동안 김부자(金父子)가 행한 거짓선전과 죄행을 알게 되면 김정일을 절대로 따르지 않고 준엄한 심판을 하게 될 것이다.

사실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선군정치니 뭐니 하면서 군대를 앞세운 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는 것이다.

선군정치는 김정일이 자신의 개인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북한주민들을 탄압하는 수단으로 행해진 것이지, 미국의 압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이날 토론자들은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 김정일이 북한주민들을 위해 선군정치를 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궤변이다. 북한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김정일이 물러나고 개혁개방하는 것이다. 그래서 먹고사는 문제가 근원적으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를 보면서 나는 분노를 넘어 서글픈 감정까지 느꼈다. 북한당국의 말을 무조건 따라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나는 정말 이들이 선군정치를 그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인지. 아니면 모종의 다른 지시를 받아서 그런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토론회 중에 이들은 ‘민주화 세력’까지 발언했다. 민주화 세력이라면 가장 먼저 김정일 독재를 미워하고 무너뜨려야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가장 반인류적인 선군정치를 선전하고 찬양할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토론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과연 이들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생각은 비단 나뿐이 아니라 이날 토론회를 지켜본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김영일/’성공적인 통일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대표(탈북자)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