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외교관 “北젊은 엘리트, 김정일위해 희생 안할 것”

▲ 조선인민군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장의 주석단 ⓒ연합

외교관 출신 탈북자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최근 펴낸「북한의 국가권력과 파워엘리트」(선인)을 통해, 북한의 간부정책을 연구함으로써 국가전략의 목표와 방향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경남대학교 대학원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은 북한 간부정책의 특징과 변화를 분석, 김정일 정권의 체제 유지 동력을 짚어보고 있다.

현 연구위원은 “김정일 정권의 간부정책과 관련해 주목되는 문제는 세대교체에 따른 권력구조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며 “후계체제 시기부터 가시화된 권력층의 고령화는 김정일 정권 출범 시기에 이르러 더욱 심각한 문제로 제기됐다”고 말했다.

▶ 간부의 세대교체=그는 “당과 군부 상층의 권력엘리트들은 절대 다수가 70대 이상의 고령화 집단”이라며 “권력층의 이와 같은 고령화와 권력기구 쏠림 현상은 김정일 후계체제 시기부터 지속되어온 원로우대 정책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정일은 원로우대 정책을 ‘혁명위업’ 계승 차원을 넘어 체제수호 차원에서 접근했다”며 “체제보위를 위해 개혁성향이 짙은 신진 엘리트들보다는 보수적인 원로들에 의거해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당 비서국을 비롯한 권력서열 상위의 고위직들에 주로 혁명1세대를 비롯한 원로들을 등용하고 실질 업무는 차석의 부장이나 제1부부장, 혹인 자신의 측근들을 통해 처리해 왔다”며 “그러다보니 오래 전부터 원로들의 ‘안식처’로 되어온 상위 직들은 (사망으로) 공석이 된다고 해도 당장 업무에 차질이 생길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김정일 정권 출범 후 북한의 권력구조에서 세대교체 현상이 본격화되고 있다”며 “당과 군 등 권력기관에서 원로들의 퇴진에 의한 공석 인사에 40~50대, 심지어 30대의 젊은 엘리트들이 등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고난의 행군’을 체험한 ‘선군 혁명세대’라고 평가되는 신진엘리트들은 교조적 이데올로기보다 현실주의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가치관을 중시하는 세대”라며 “김정일의 측근과 권력엘리트들이 체제붕괴를 자신들의 파멸로 받아들이는 것과 달리 이들은 수령이라는 한 개인을 위해 국가와 민족이 희생되는 것을 더 이상 의무와 사명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일과 운명공동체 ‘측근정치’=현 연구위원은 또 “후계체제 시기 정권의 최고권력자가 되기 위해 측근정치를 활용하던 김정일은 김일성 사망 이후 단일지배체제가 완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측근정치를 지속하고 있다”며 “김정일의 신임과 친분 정도를 나타내는 측근의 신분은 지위와 위상 차원을 넘어 권력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일이 측근을 발탁하는 몇 가지 기준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먼저 대부분의 측근이 당과 군부, 대남, 외교 등의 분야에서 배출되었고, 또한 후계자 내정 시점을 기점으로 해 이전에는 주로 개인적인 친분관계와 권력층 내에서의 영향력에 따라 측근으로 ‘포섭’되었다면 이후에는 주로 능력 위주로 발탁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음주와 가창력, 유머감각과 같이 파티문화에 필요한 자질이나 최소한 그런 분위기에 적응할 수 있는 융통성이 있어야 하며,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거나 남을 모함하기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도 측근 대열에서 제외됐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김일성의 측근 인물, 입이 가벼운 사람, 건강상 문제가 있는 인물들도 가급적 측근대열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그는 “권력층에 대한 통제와 감시, 상호 견제 등과 함께 측근 간부들에 대한 각종 특혜와 물질적 부의 제공은 측근관리의 주요한 방식”이라며 “경제난이 악화될수록 측근들에 대한 특혜의 제공이 이들의 충성심과 김정일과의 운명공동체 의식을 이끌어내는 효과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핵문제의 발생과 함께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 및 금융제재가 심화되면서 측근들에게 특혜를 제공할 수 있는 체제유지비용 조성에 타격을 주고 있다”며 “측근들에 대한 특혜의 감소는 권력층의 부정부패와 비리, 돈벌이 풍조를 조장하고 이들 속에서 충성심의 저하와 체제전망에 대한 비관주의, 변화에 대한 욕구와 기대감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한이 미국의 BDA 자금동결에 반발하여 6자회담 참가를 거부하고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까지 단행한 사실만 보더라도 금융제재가 체제보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가를 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결정은 김정일이 ‘비준정치’=현 연구위원은 “김정일 정권에서 측근정치가 대표적인 상의하달식 정책결정과정이라고 한다면 비준정치(제의서 정치)는 대표적인 하의상달식 정책결정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준정치’의 정책결정과정은 김정일의 권력공고화 과정과 더불어 세 단계의 진화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각 기관에서 꼭 같은 초안을 2부씩 만들어 김일성과 김정일에게 동시에 보고하는 병렬식 보고체계 ▲1980년대 초=모든 문건을 김정일을 통해 김일성에게 보고하는 직렬식 체계 ▲1980년대 중반=김정일이 모든 정책 보고서에 대한 결재권을 행사하기 시작 ▲1980년대 말=대부분의 정책이 김정일 단계에서 최종 결정

그러나 “이와 같은 비준정치는 국정전반을 권력자 일인에게 집중시킴으로써 업무 부담의 가중과 혼동, 신속성의 결여와 같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현실적으로 김정일에게 보고되는 문건의 양이 지속적으로 증가함으로써 어떤 경우에는 동일한 사안에 대해 상반되는 안을 모두 비준해주는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일이 보고문건에 결재하는 방식도 ▲보고문건 표지에 날짜와 이름을 사인하고 때로 자신의 의견까지 친필로 써서 내려 보내는 ‘친필지시’가 있으며, 이는 결과에 자신이 직접 책임을 지겠다는 것 ▲보고문건의 표지에 날짜만 사인해서 내려 보내는 ‘친필문건’은 보고서의 내용에는 동의하지만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간혹 김정일이 보고문건에 아무런 사인도 하지 않고 내려보내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문건의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이 경우 정책 작성자와 이를 결재한 간부들 모두 처벌을 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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