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탈북여성 1호박사 이애란씨

“북한 출신 식품 영양학자로서 통일후 북한의 열악한 식생활까지 고려한 현실적 영양정책을 수립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이달 이화여대 식품영양학과에서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돼 탈북 여성으로서는 첫 국내 박사가 된 이애란(45)씨의 포부다.

지난해 9월 현재 국내 약1만5천명의 탈북자가운데 여성은 66%인 9천500여명. 이 박사는 탈북자 전체로는 안찬일, 현성일 박사에 이어 3번째다.

‘1990년 전후 북한 주민의 식생활 양상 변화’라는 제목의 논문을 쓴 이 박사는 “남한의 영양정책이 만성적 식량난을 겪는 북한에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97년 10월 9명의 일가족과 함께 남한에 온 이 박사는 “탈북자들은 악조건속에서 남한에 와 갑자기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신진대사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며 “탈북자들에게도 식사교육과 영양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논문에서 353명의 탈북자를 출생 연도별로 분류해 조사한 결과, 10대 중.후반의 2차 성장기를 식량난이 심화된 1990년이후 북한에서 보낸 집단이 다른 비교 집단에 비해 키가 가장 작은 것을 밝혀냈다.

이 조사에서 1980년이후 출생한 집단이 식량난없이 배급제 혜택을 확실히 받은 1970년이전 집단보다 키가 오히려 크게 나타났으나, 이는 “탈북한 해와 관계있다”고 이 박사는 분석했다. “2차 성장기때 3국을 경유하거나 남한에 와서 영양 섭취를 잘 했기 때문”이라는 것.

이 박사는 “북한은 1973년 전쟁비축미 명목으로 월 배급제에서 4일분의 식량을 공제했고, 1987년부터는 3년분 식량으로 ‘2호 창고’에 보관중이던 전쟁 비축미 5만석을 수해를 입은 남한에 지원하는 바람에 이를 다시 채우느라 배급량을 10% 더 감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1973년 성인 1인당 700g이던 배급량이 1987년이후 540g으로 대폭 감소했고, 여기에 식량난이 본격화한 1990년이후에는 소득이 낮을수록 끼니를 굶는 경우도 많고 아침 식단 자체도 주식이 밥에서 죽과 국수로 변했다.

북한은 대량 아사자가 난 1990년대 중반보다 훨씬 이전인 1990년전후부터 식량난을 겪고 있었다는 것이다.

“논문 발표 때 북한에서 주로 배급받아 먹는 ‘강냉이 쌀’을 설명하느라 힘들었다”는 이 박사는 “옥수수가 70%이상이고 남한에서 밥으로 먹는 입쌀(백미)은 30%미만”이라고 ‘강냉이 쌀’을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사회 주도층으로서 가장 일을 많이 할 세대가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통일됐을 때 문제점으로 등장할 것”이라며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때는 성장기 청소년과 저소득층을 겨냥해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에 식량을 지원할 때는 또 “소화 흡수율이 75%밖에 안되는 옥수수보다는 고에너지원인 쌀을 주되, 라면이나 유통기한이 있어 군대로만 빼돌릴 수 없는 ‘포장용기에 담긴 밥’도 좋다”고 이 박사는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그는 개인적 체험담을 곁들여 “어떻게 보면 쌀 자체보다도 배고플 때 맛있게 먹는 남한의 음식이 북한 주민들의 뇌리에 평생 남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박사 학위를 따기까지 논문지도뿐 아니라 밥해 먹을 쌀까지 직접 챙겨준” 이종미 지도교수를 비롯해 “주변에서 정말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며 일일이 이들을 거명하며 “탈북자들에게 각박하다는 남한사회에도 좋고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사단법인 북한음식문화연구소장도 맡은 이 박사는 “고문서에는 조선시대 이전에는 평양비빔밥을 전주비빔밥보다 더 위로 쳐줬다는 내용이 있다”며 “북한의 좋은 먹거리들을 소개하고 개발하는 일에도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