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여성 인신매매, 北당국 이동자유 억압이 부른 비극”

북한에서 반(反)인도범죄가 벌어지고 있고, 북한 지도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에 인권사무소를 설치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만들어 북한 지도부에게 인권침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국제사회와 한국이 왜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중국을 오가며 2004년부터 2006년까지 2년간 탈북 브로커로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도왔던 이현우 씨를 만나, 북한 주민들의 탈북 과정과 브로커 활동 실태에 대해 증언을 들어봅니다.

– 이현우 씨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살았습니다. 2006년 7월 초에 두만강을 넘어서 2007년 2월에 한국에 입국했습니다. 한국에 온 게 벌써 10년이 됐습니다.

– 북한에서 탈북 브로커로 활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일단 브로커라는 게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북한에선 일단 탈북 브로커를 ‘브로커’라 하지 않고 ‘인신매매범’이라고 부릅니다. 탈북하시는 분들이 한국에 가족을 찾아 가든, 중국으로 팔려가든, 아니면 중국 친척집에 찾아가 도움을 받든 그 과정을 돕는 저희들은 ‘인신매매범’이라고 불립니다. 저희로서는 그저 길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지만, 일단 돈을 받고 두만강을 넘기면 그 자체가 인신매매에 속한다는 겁니다. 100원을 1만 원을 받든지 말이죠.

– 브로커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릴 적에 부유한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여기로 치면 엘리트 집안 출신이었는데요. 하지만 부모님 돌아가신 후 생계 때문에 군에 입대해야 했습니다. 제대 후 집에 왔더니 아무것도 없고 당장 내일 먹을 쌀조차 없더군요. 그래서 중국 친척집에 가서 돈이라도 빌려 살아보자 하고 찾아갔는데, 친척집에서는 돈을 그냥 빌려주지 않고 제게 돈을 버는 방법을 알려줬습니다. 친척들이 말하기를, 한국으로 간 가족을 찾아 탈북하려는 주민이 있을 수도 있고, 중국에서 살기 위해 탈북하는 주민도 있을 텐데 이 사람들이 강을 넘는 걸 도와주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당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이렇게 돈을 주고 받으며 중국에 가는 게 결국 팔려가는 일과 마찬가지인데 그런 선택을 할 주민이 있을까 싶었어요. 제가 납치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됐고요.

그렇게 의심을 안고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는데, 중국에 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하는 사람을 우연히 알게 됐습니다. 북한에서는 너무나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혹은 장사를 하다가 전부 도난을 당해서, 또는 중국 남자에게 시집이라도 가서 돈을 벌기 위해 중국행을 택하려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브로커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하도 힘들게 사는 분들이 중국으로 가서 더 나은 삶을 살아보려고 한다니 도와주자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 그런데 중국으로 넘어간 분들, 특히 여성 분들의 경우 대부분이 팔려가게 되잖아요? 그 비중은 어느 정도였나요?

당시가 2000년대 중반이었는데요. 중국으로 넘어가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거의 70명이 중국에서 팔려갔습니다. 나머지 30명은 한국에서 온 가족들이 (한국으로) 데려가거나, 아니면 중국 친척들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죠. 그런데 사실 친척들을 찾아가도 돈을 주는 대신, 시집이나 가라고 말하고는 합니다. 결국 팔려가라는 얘기와 다름없죠. 중국도 사회주의지만 자본주의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본인들이 번 돈을 북한에서 온 친척에게 주려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그러니 차라리 팔려가라고 선을 놓아주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중국으로 건너간 주민들 중 90%가 팔려간다고 보면 됩니다.

– 보통 탈북하는 사람들은 중국으로 팔려가는 여성이거나 아니면 한국 등지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일 텐데,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모집이 돼 탈북하게 됩니까?

(탈북을 돕는) 조직화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선 북한에서 탈북하려는 주민들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탈북 주민이) 20대일 경우 2만 원, 30대는 1만 5000원, 40대는 1만 원을 받고 넘겨줍니다. 중국 측 브로커가 두만강 연선에 나와 있는지 확인한 후 넘겨주게 되죠. 중국 측 브로커는 중국에서 오래 산 탈북 여성들이 직접 나서는 경우도 있고, 혹은 저 같은 사람이 직접 중국까지 건너가 (역할을) 맡기도 합니다. 

북한에서 (탈북할) 사람을 모집하는 건 공개적으로 하지 못해요. 아무나 지나가는 사람 붙잡아 중국에 가겠냐고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이 사람이 가겠다고 해놓고 보위부에 고발하면 제가 인신매매로 잡힐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회령 같은 지역에 가서 평소 중국에 가겠다는 뜻을 밝혀온 주민이 있는지 물색합니다. 시장에만 나가 있어도 음식 장사꾼들은 누가 중국행을 원하는지 다 알아요. 어느 집 누가 중국에 가고 싶어 하는데, 아직 선이 없어서 못 가고 있다더라고 알려주죠. 

– 그럼 이현우 씨는 북한에서 중국행을 원하는 사람을 직접 데리고 중국까지 건너가 중국 브로커에게 넘기는 일까지 하신 건가요?

네, 대개 보면 원래는 두만강을 넘기는 사람, 두만강 넘어서 (탈북민을) 받는 사람, 중국 안쪽 지역까지 데려가는 사람, 위험 지역을 벗어나는 걸 도와주는 사람, 직접 중국 남성에게 인계하는 사람 등 4, 5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북한 내에서 탈북을 원하는 주민을 모집하는 브로커는 천 모집 하는 사람은 천 원 정도 밖에 받지 못하죠. 다만 저는 중간 단계까지는 맡았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받긴 했습니다. 위험하긴 했지만, 잘 모르는 중간 단계 브로커에게 여성들을 넘겨줬다가 어디로 팔아버릴지 모르잖아요. 그러니 이왕이면 제가 직접 대방에게 이 분들을 연결시켜줘서, 조금이라도 더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 탈북 과정을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은데요. 북한 내에서 사람을 모아서 두만강이나 압록강 쪽에 다다른 뒤, 직접 강을 건너시는 건가요?

그렇죠. 회령이나 길주, 청진 쪽 두만강 주변에선 검열이나 단속이 심하기 때문에, 출발 전에는 회령에서도 안쪽 마을에 머물러 있다가 초저녁인 7시쯤 강 쪽으로 내려옵니다. 두만강 주변 집에 잠시 머물기 위해서인데, 지금은 그 집들도 다 철거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강 근처 마을에 숨어 있다가 보면, 새벽 1, 2시경에 국경경비대 군인이 찾아와 문을 두드립니다. (이 군인은 도강을 돕기로 사전에 약속한 군인인데) 이 군인이 직접 일행을 인솔해 갑니다. 3명이나 5명이 무리지어 이동하면, 이 군인이 자신이 통제하는 구간을 열어 강을 건너게 합니다.

그렇게 강을 건너면 중국에서 이미 차들이 도착해 있습니다. 단속이 너무 심하다 싶으면 약속하기로 한 장소에서 조금 더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죠. 그렇게 차에 태우고 이동하게 되는데, 다만 용정(龍井)이나 화룡(和龍) 등 안쪽 마을로 들어가려면 초소를 하나 더 지나쳐야 합니다. 이 초소는 그냥 통과할 수도 있지만, 운이 나쁘면 검열을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초소 도착 전 300m 앞에서 탈북민들을 데리고 내린 뒤, 초소를 우회하는 야산이나 과수원을 지나고는 했습니다. 차를 몰던 운전자는 무사히 초소를 지나 다시 저희와 접선하게 되고, 이후 연길(延吉)까지 도착하는 것입니다. 탈북 여성들을 데려가는 남성들은 주로 하남(河南)이나 심양(瀋陽) 쪽에 많았기 때문에, 남성들이 여성들을 데려갈 준비가 될 때까지 저희는 (연길) 개인 집에서 임시 체류해야 했습니다. 당시 저희 고종사촌 형이 대방 역할을 했는데, 중국 남성들이 모두 모집됐다는 연락이 오면 저희 형이 여성들과 버스를 타고 해당 지역까지 이동한 뒤 돌아오고는 했습니다.

–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브로커 일을 하셨는데, 이현우 씨를 통해 중국으로 넘어간 분들은 몇 명 정도 되나요?

한 40~50명 정도 됩니다.

– 그렇게 중국에 간 탈북민들은 정상적으로 경제활동을 해서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게 돈을 전해줄 수 있었나요?

쉬운 일은 아니었죠. 애초에 큰 금액을 아내에게 줄 것 같으면, 중국 남성들이 굳이 불법으로 북한 여성을 데려오지도 않았을 테고요.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산 여성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거의 노예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폭행도 빈번했고요. 그 와중에도 탈북 여성들은 새 옷도 사 입지 못하고 용돈을 다 모아 집에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분은 피라도 팔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 그들은 왜 그렇게 힘든 선택을 해야 했을까요?

일단 북한에선 먹을 게 없고 돈도 없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을 겁니다. 중국에 나가면 그나마 먹고 산다고는 하니 중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테죠.

– 탈북 여성들이 중국으로 팔려갈 때 가격이 정해진다고 들었는데요. 보통 중국 남성들이 얼마 정도에 북한 여성들을 사게 되나요?

아까 말씀드린대로 중국 돈으로 20대는 2만 원, 30대는 1만 5000원, 40대는 1만 원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더 올랐다고 해요. 대략 2만 원 선에서 정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  탈북 여성이 팔려 가는 과정에 인권 침해를 받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신 사례가 있으신지요?

주변에 있는 분들이나 도망친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시내에 나갔다가 하루만 늦게 들어와도 폭행이 아주 심하다고 해요. 한 여성은 아이를 데리고 시내에 나갔다가, 남편이 온 동네를 수색하며 이 여성을 찾아 끌고 왔다고 하더군요. 더는 도망치지 못하게 발목을 분질러버리겠다고 했대요. 또 다른 여성은 남편이 불임이었는데, 이를 모두 아내의 잘못이라고 우기며 폭행을 일삼았다고 합니다. 그러더니 나중에는 자신이 아이를 못 낳으니, 아내더러 자기 동생과 애를 갖게 했다고 합니다. 씨받이처럼 삼은 것이죠.

– 이현우 씨의 브로커 생활을 쭉 들어봤는데요. 어떻게 보면, 동족이 중국에 팔려가는 데 일조한 역할을 한 것이기도 합니다. 미안한 마음이나 죄책감 들던 순간은 없었나요?

처음에는 죄책감보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브로커 일은 불법이잖아요. 인신매매범으로 잡히면 북한 교화소에 7년 정도 수감되는데, 수감자들 사이에서도 북한 여성을 팔아먹은 반역자로 몰린다고 합니다. 수감자들에게 구타를 당해 죽는 경우도 있대요.

하지만 저는 나쁜 의도로 브로커 일을 한 게 아니었습니다. 중국에 가면 적어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고, 여력이 되면 가족까지 먹여 살릴 수 있다고 하니 도운 것이거든요. 그래서 당당하진 못하더라도, 탈북 여성들의 한 가족을 살리고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습니다. 한국에 온 후로도 당시 저를 비롯한 브로커들을 통해 중국에 갔던 사람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을 하고는 하는데요. 몇몇 분들에게 물어보니, ‘당신 같은 사람이 없었으면 우리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올 수도 없었을 것이며,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하더군요. 또 그 분들이 말하기를, 브로커들에게 나쁜 마음을 갖진 않지만 중국에서의 삶이 너무 억울해서 상처로 남았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북한 정권이 주민들을 굶어죽게 한 게 잘못이지, 팔려간 사람이나 그걸 도운 사람이 잘못한 건 아니라고 봅니다. 어느 정도의 자유를 줬다면, 친척집에 가서 도움을 받거나 중국 식당에서 한 달만 일할 수 있게 했다면 북한에서도 먹고 살 수는 있었을 것이거든요. 그걸 북한 당국이 모두 통제했으니 많은 주민들이 중국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 이 자리를 빌려 북한 당국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북한은 주민들이 탈출할 수밖에 없는 곳입니다. 한국에 온 탈북민들이 말하기를, 만약 북한에 어느 정도 이동의 자유나 발언의 자유가 있었다면 굳이 고향을 버리고 왔겠느냐고 합니다. 김정은 정권이 주민들을 탄압하기보다 자유를 주는 게 더 옳은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압박이 있는 곳에 반항이 있다고, 모두가 들고 일어나기 전에 북한 당국은 주민들에게 자유를 줘야 할 것입니다. 밖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마치 전혀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북한 주민들도 해외나 남한에서 인권운동 하시는 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저도 북한에 있었을 때 자유아시아 방송이나 미국의 소리 방송 등을 들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 제 목소리를 듣고 있을 수도 있겠죠. 북한 주민 분들이 힘을 내고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기다려주셨으면 합니다.

북한 당국은 체제 유지를 위해 사회 전반에 대해 강력한 통제를 가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하는 것도 체제 유지를 위한 하나의 수단입니다. 북한 당국은 사람은 자기 나라를 포함해 어디에서든지 떠날 권리가 있다는 세계 자유권 규약 제12조를 존중하고, 주민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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