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한 주간 온 나라가 말 그대로 끓어 넘치는 도가니를 연상시켰다. 북미회담으로 북적이고, 6.13 선거 풍경 또한 볼만했다.
북한에서 무조건 참여하여 무조건 찬성·투표해야 하는 강제적 선거만 하다가 한국사회의 민주 선거를 볼 때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한국에 정착하여 10년간 여러 번 참여했지만 볼 때마다 놀라운 풍경이다.
다종다양한 선거홍보, 상대 후보 대놓고 비난하기, 비난하다 못해 인신공격하기, 선거경쟁, 그리고 선거가 끝나면 의연히 있게 되는 비리 폭로하기. 머리가 어지럽고 마음에 지진이 이는 선거 풍경을 보면서 새삼 내가 정말 좋은 세상에 산다는 생각에 눈시울을 붉힌다.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아니 물어보지도 않는다. 모든 정당과 후보들은 자기를 찍어달라고 하늘에 대고 그냥 소리소리 지른다.
너도나도 하고 싶은 소리를 다 하는 민주사회의 특징은 선거가 되면 더 확실하게 두드러진다. 당선되면 이 세상을 다 줄 것처럼 공약하고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밀다가 들통나면 다음 선거에서 무참하게 패배한다.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물론 안 좋은 모습도 종종 보인다. 주민들이 정의를 가려내고 진짜를 찾아내도록 충분한 검증의 시간을 주지 않고 여론을 조작하기도 한다. 요즘에는 IT기술까지 적용하여 돈이나 대가를 바라고 대세를 만들고 몰아준다니 참 대단한 세상이다.
선거비용을 충당할 수만 있으면 누구나 다 후보로 나설 수 있다. 그러나 권력이나, 인맥, 재원이 부족하면 후보로 나섰는지 기억도 안 된다. 일단 알려져야 한다. 유명세를 타지 못하면 어디서 굴러먹던 똥강아지인가 한다.
당선의 5대 조건(권력, 인맥, 재원, 청렴, 거품 공약)이 충족되지 못하면 아무리 진정성이 있어도 당선되지 못한다. 일단 얼굴에 8㎜ 철판 2~3장 정도는 깔고 나서야 한다. 그래야 이름이라도 기억한단다. 진풍경이다.
어떤 나라는 국회의원이 봉사하는 직업이라고 하던데 민주주의자들에게도 권력과 돈의 힘이 정말 그렇게도 좋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든다.
북한의 선거 풍경
북한의 선거는 독재국가의 참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된다. 북한 선거의 특징은 “100% 참여 100% 찬성”이다. 기네스 기록집에 기록될 희한한 선거 풍경이다.
노동당은 국회의원들에 대한 선발권을 독점하고 자기들이 선정한 대표자들을 당선시키기 위하여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선거참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해시키며, 찬성을 격려하고, 심지어 강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지사, 군수, 시장, 교육감도 시민이 선거하지만, 북한에서 도 인민위원장, 군위원장, 동사무장, 리 위원장 모두 노동당이 임명한다. 독재선거 명부에도 없다. 그냥 의원만 선거한다.
북한 선거장의 풍경은 이중적이다. 외부는 소란스럽고 내부는 삼엄하다. 인공기와 노동당기가 줄에 매달려 애처롭게 펄럭이는 투표장 밖에서는 강제로 동원된 여성동맹원들이맨 정신에 북과 쟁반을 소란스럽게 두드리고 마당의 확성기에서는 당과 수령을 찬양하는 노래가 고막을 괴롭힌다.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사람마다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 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춥고 지루해도 투표는 해야 한다. (참고로 북한은 선거를 항상 춥고 바람 부는 겨울에 한다. 3월 또는 11월) 선거에 빠지면 정치범이다.
선거방식 또한 가관이다. 투표장 정면 벽에 붙여놓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초상화를 향하여 정중하게 배꼽 인사를 하고 두 손으로 선거 표를 선거함에 넣고 다시 초상화에 인사하고 나와야 한다. 자기가 투표하는 사람의 이름도 보지 않는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볼 필요도 없다. 선거장에 가면 두 명의 감시원이 눈을 똑바로 뜨고 감시하다가 이상행동이 보이면 바로 잡아들인다.
북한 주민들에게 선거 날이 좋은 것은 그냥 하루 휴식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
북한 헌법에는 선거 받을 권리와 선거할 권리가 정확히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북한의 주민들은 본인이 원한다고 하여도 노동당의 승인이 없으면 한평생 직업이나 직장을 바꾸지 못하고 살아간다. 농민은 대를 이어 농사를 해야 하고 광부는 일생동안 굴속에서 탄을 만져야 한다.
한평생을 몇 가지 단순 작업을 하며 보내는 이들은 자신의 지력(智力)을 발휘하거나, 어려운 삶의 질을 보다 높이기 위한 방식을 고안하는 등의 기회를 갖지 못한다.
정부의 통제와 강제로 자연히 그들은 머리를 쓰는 습관을 상실하게 되고, 그리고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지능 수준으로 떨어진다. 북한당국이 공교육을 한다고 하지만 정권 유지를 위한 정치교육이 위주를 차지한다. 노동당 관료들은 리더십능력이나 인성 같은 변수를 잣대로 일반주민들의 상류계층 진급을 철저하게 막고 있다.
북한 상류 관료들의 정치 권력은 노동당을 통해 막대한 권위를 행한다. 이 과정에서 약자는 정치적 발언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북한과 같은 집단주의체제 하에서는 정치적 약자는 정치적 발언 기회조차 박탈당하지만, 자유민주주의가 도입된 민주주의 체제에서 주민들은 자기의 소중한 한 표를 당당하게 행사하고 있다. 어제의 6.13 지방자치제 선거 풍경이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북한이 진정으로 정상국가의 이미지를 가지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안정된 생활을 위해 그들의 사회, 경제생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철저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정상국가에서 정부의 역할은 첫째 경제성장과 국방, 둘째 법치를 통한 사회 질서유지, 셋째 도로, 수로 교량, 교육, 보건 제도 등 공공시설 및 자원의 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존엄을 유지하는 것 등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