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이라는 시선보다 영어가 가장 걱정이다. 출신에 대한 편견은 대학교에서 열심히 강의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영어 수업은 잘 따라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년 3월 대학 입학을 앞둔 탈북 청년 이지형(23) 씨는 현재 서울 종로에서 영어학원을 다니고 있다. 그는 “북한에서 배울 때보다 어휘량 차이가 크게 느껴지고 토익과 토플이라는 개념도 처음이라 더 어렵게 느껴진다”면서 대학 입학에 앞서 영어 실력을 쌓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영어학원을 다니며 부족한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번다고 했다.
▲국내 외국인들이 탈북자들에게 영어공부를 가르치는 모습./데일리NK 자료사진 |
북한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교를 다니던 중 탈북한 그는 2017년 초 한국에 입국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은 것이 한국에 온 목적 중 하나였다는 그는 하나원에서 정착 생활을 배우면서도 스스로 시간을 쪼개 대입 과정에 대해 알아봤다. 대입을 위해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대학원 진학까지를 목표로 정했을 만큼 학업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하지만 공부를 지속할수록 혼란이 왔다. 그가 북한에서 배운 내용과 한국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언어는 물론이고 역사나 영어 과목까지. 같은 것 같으면서도 사뭇 달랐다. 대입 준비과정에 필요한 자기소개서 작성도 쉽지 않았다. “북한에서는 모든 내용이 주체사상에 대한 찬양 글이었고 글쓰기 방식도 미괄식이었다”며 “갑자기 나의 장점을 밝히며 두괄식으로 글을 써야 하니 어려웠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 또 다른 탈북민 박민혁 씨(21)도 “대학교에 가면 영어로 수업을 하는 과목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그 역시 영어에 대한 걱정 때문에 별도로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이어 “남한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해서 익숙하지만, 아직 컴퓨터 사용이 익숙하지 않아 학교 수업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대부분의 대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필수로 지정해놨으며 졸업 요건에도 공인영어시험 성적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수업 중 학생들이 진행하는 발표 역시 파워포인트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만들어 하기 때문에 관련 능력도 요구된다. 한국에서 대학 진학을 꿈꾸고 또 학업을 이어가는 탈북민 출신 학생들 중 상당수가 영어와 컴퓨터 활용 능력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3만 명이 넘는 탈북민 중 북한에서 대학교까지 다닌 사람은 10% 미만이다.(17년 9월 기준) 대학뿐 아니라 생계 유지나 북한 내 교육 과정의 붕괴로 정규 교육을 이수한 사람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한국에 와서 취업보다는 우선 학업을 통해 개인의 능력을 쌓고 싶어 하는 탈북 청년들이 많다.
이들은 북한 혹은 제3국가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며 같은 또래의 청년들이 대학교에서 자유롭게 공부하고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을 보며 대학 생활에 대한 꿈을 키워왔었다. 정부 역시 탈북민이 더욱 많은 교육의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학비 지원 등 다양한 정책 등을 펴고 있지만, 실제 탈북 청년들의 대학 진학과 적응에는 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한국 출신 학생의 경우는 부모들이 적극적으로 나서거나 입시학원 등에서 대입 관련 정보를 수집하지만, 탈북 학생들의 경우 부모와 함께 왔다 하더라도 정착 문제 등으로 자식의 학업 문제까지 신경을 쓰기 쉽지 않다. 직접 대입 진학 과정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그에 따른 준비도 본인이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어린 나이에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이라면 큰 문제는 없겠지만, 성인이 된 나이에 온 경우라면 북한과는 상이한 교육 내용으로 인해 혼란을 겪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수학능력시험으로 대학 진학을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대부분의 탈북 청년들은 각 대학에 있는 탈북자 전형 혹은 다문화 전형 등 특별전형을 통해 경쟁하고 입학을 한다.
그러나 특별전형으로 입학이 확정된다고 해도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초 교육량, 언어, 외국어, 컴퓨터 활용 능력 등 다양한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하기에 입학을 준비하는 탈북민 학생들의 부담이 적지 않다.
작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행한 ‘북한경제 리뷰 8월호’에 실린 ‘탈북대학생의 영어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질적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 10명 중 3명은 ‘영어 공부’ 때문에 휴학이나 자퇴를 선택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휴학 및 자퇴를 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어 공부를 하고 다시 학교에 돌아오기 위해’(32.7%)였다.
또한, 2014년 사회복지법인 ‘함께하는 재단 탈북민취업지원센터’가 전국 26개 대학에 재학 중인 탈북 대학생 1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약 75%에 해당하는 학생들이 공인 영어점수가 없다고 답했다. 시험을 본 학생들의 점수도 토익 기준으로 평균 658점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대입 과정을 끝내지 못하고 중도탈락하는 탈북대학생들도 생겨나고 있다.
2012년도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남북하나재단) 자료에 따르면, 탈북 대학생들의 중도탈락률은 10.4%로 일반대학생의 탈락률인 두 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대학생들의 중도탈락 시기는 1학년 1학기와 2학기에 집중되어 있어 초기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적응에 실패하는 이유로는 영어와 수업내용을 따라갈 수 없다는 기초학력 부족 문제가 44.9%로 가장 크게 나타났으며, 그다음으로 생활비 마련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는 경우가 28.6%로 나타났다.
고려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탈북민 현정훈 씨(22)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라”고 조언했다. “탈북민들의 경우 대학교에 입학하기는 상대적으로 쉽지만 졸업 문턱은 그보다 훨씬 높다. 스스로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목표가 가장 우리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