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인질극마저 反美 도화선으로 이용하나”

▲ 2일 미대사관 앞에서 항의시위를 하는 반미단체 관계자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 세력에 의한 한국인 납치사태가 보름째를 맞은 2일, 서울 광화문 미 대사관 앞에서 “이번 피랍 사태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는 구호가 등장했다.

대표적 친북인사로 알려진 한상렬 한국 진보연대 준비위원장은 2일 오전 미 대사관 앞에서 탈레반에 피랍된 한국인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철야 단식농성을 선언했다.

진보연대측은 “이번 사태의 본질적인 책임은 미국 정부에 있다”며 “미국은 사태 해결을 위해 포로 교환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평화여성회 등 40개 여성단체들도 이 날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통신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랍자들의 무사귀환과 평화적 해결을 위해 미국 정부가 협상에 나서라”고 주장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은 지난달 31일부터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부시 정부가 이번 사태의 주된 책임자”라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 반미 단체는 “‘테러 집단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미국의 원칙적 태도 때문에 한국인 피랍자 석방이 늦어지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한 “미국이 군사패권주의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지 않았으면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원인 제공론’까지도 내세우고 있다.

이처럼 좌파단체들이 미국의 태도를 문제삼고 나온 것은 탈레반의 인질극을 미국 책임론으로 몰고가 2002년 대선 당시 ‘미선이 효순이’ 사건과 같이 반미 분위기 조성용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들 단체 뿐 아니라 정치권 일각에서도 피랍자들의 석방을 위해 미국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한다는 요구와 함께 이번 사태의 원인이 파병에 있다는 ‘미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일부 언론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민주노동당 원내대표 천영세 의원은 2일 오전 여야 의원 8명과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원내 5당 대표 공식회의에서 결정된 이번 방미에서 우리 측 의원들은 피랍자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협조를 요청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 일각에서는 이번 방미단이 급작스럽게 결정된 만큼 준비가 부족하고, 미국에 대한 공개적 지원 요청이 오히려 미국의 협조를 이끌어 내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편, 지난 2002년 효순이·미선이 사망사건으로 불거진 촛불집회처럼 한국인 피랍사태가 반미 운동으로 확산되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한나라당 정형근 최고위원은 2일 “아프간 피랍사태를 ‘반미’ 움직임으로 쟁점화하려는 움직은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사건을) ‘반미 코드’로 만들려는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움직임은 국익과 인질 석방에 도움이 안된다”며 “인질 석방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미국 책임으로 돌며 ‘미국은 비인간적이라는 인상을 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현진권(아주대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반미감정을 일으킬 도화선으로 이번 사태를 이용하려는 음모로밖에 볼 수 없다”며 “5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우리 국민들도 (반미 열풍에) 동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여야 의원들의 방미도 피랍 사태의 해결보다는 정당과 개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현 총장은 “테러집단과는 협상하지 않겠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기본적 원칙이다. 가시적인 요구를 할수록 미국으로써도 행동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며 “인질들을 위해서라면 표시나지 않게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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