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곡장에 도둑 창궐…쓸모없는 바다에 한숨만”

2000년대 이후 새로운 경제 체제 도입과 강화되는 군량미 징수, 계속되는 자연재해로 황해도 지역 농장원들의 생활도 점점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열심히 일해도 배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자 농장원들은 일마저 대충하거나 장사에 나서면서 생산량은 더욱 하락했다.

결국 지금은 이 지역도 생활 형편이 가장 열악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게 됐다. 김씨는 “오죽하면 이 지역 쌀 값이 함경도보다 200원(백미) 더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됐겠냐”며 혀를 차기도 했다

김 씨는 “한 해 농사를 지어도 군량미나 수도미(평양에 공급되는 쌀)로 징수돼 농장원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으니 할 수 없이 도둑질에 나선다”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논밭과 탈곡장에서 식량 확보를 위한 농장원들의 활약이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북한은 곡식이 무르익으면 도적을 막기 위해 농장밭에 무장한 군인으로 보초를 세운다. 하지만 먹고 살기 힘든 주민들은 수단과 방법을 다해 농장밭이나 탈곡장의 식량을 습격한다.

김 씨는 “2007년 10월말 장곡리 작업반에서 살던 A 씨가 논판에서 벼를 ‘확보’할 계획밑에 경비원을 매수하고 ‘야간 작업’으로 농장의 벼를 도적질했다”고 말했다.

A 씨의 절도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논 가운데 큰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비닐을 깐다. 그리고 논판에 세워둔 벼단에서 벼이삭(2, 3톤)을 잘라 던져 넣는다. 그리고 비닐을 잘 덮어두고 밀봉을 해서 흙을 위에 다시 덮는다.

김 씨는 경비가 심할 때 다른 곳으로 옮기면 다른 경비원들에게 들킬 소재가 있어 논판에 먼저 묻었다가 가을 걷이가 끝나고 각종 검열도 끝날 때 쯤이면 비닐 더미를 꺼낸다고 말했다. 가을 걷이가 막 끝나면 정치대학 학생들이 농민들 집에 들이 닥쳐 벼를 은닉한 것이 없는지 샅샅이 뒤지기 때문에 바로 가져가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A 씨는 집에 늙은 어머니와 어린 두 아들이 있어 이들을 굶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벼를 훔친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의하면 다른 농장원 B 씨는 “식량은 부족한데 보충할 방법은 없고 그렇다고 굶어 죽을 수는 없으니 탈곡할 때 눈치껏 벼를 도둑질을 한다”며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간부들의 눈을 피해가며 벼를 훔친다”고 말했다.

탈곡은 낮과 밤 두 교대로 진행되는데 간부들이 적게 나오는 야간 탈곡 시간을 이용해 서로 망을 봐가며 벼를 훔친다. 밤에는 날씨가 좀 추운 핑계로 긴 슈바(코트 형식으로 밑단이 무릎까지 내려온 솜옷)를 입고 나간다. 슈바의 주머니를 구멍내 슈바를 자루로 이용한다.

주머니 구멍으로 탈곡한 벼를 한줌씩 집어넣으면 일이 끝날 무렵까지 허리부분까지 찬다. 김 씨의 말에 의하면 B씨를 비롯한 농장원들은 이런 방법으로 매일 9, 10㎏의 벼를 확보했다고 한다.

김 씨는 “열흘가량 도적질한 벼 100㎏를 좀 더 말리워 정미소에 가서 깠더니 백미 60㎏이 나왔다고 한다”고 B 씨가 말했다고 전했다.

B 씨는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얼마 안되는 식량을 확보했지만 조심해야 한다며 가을걷이가 끝나면 정치대학 학생들이나 리보안서에서 집집마다 식량 조사를 나오기 때문에 쌀을 잘 감추든가 아니면 그럴듯한 거짓말을 꾸며 식량의 출처를 확실히 말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분배와 대비해 여유 식량이 있을 경우 그 출처를 정확히 말하지 못하면 도적질한 것으로 의심을 받아 꼬치꼬치 따져묻기 때문이며 그런 과정에 들통나 보안서로 잡혀가는 사람도 있다.

눈 앞에 바다도 그림의 떡일뿐

황해도 연안은 바로 서해안과 접해있다. 북한에서 바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풍부한 자원을 제공해 준다지만 김 씨의 말에 의하면 연안군 사람들은 바다 신세도 크게 지고 살지 못한다고 한다.

연안군 해월리나 발산리, 호남리를 비롯한 여러 단위가 바닷가 마을로 조성돼있지만 만 이곳 사람들의 가난한 생활에는 바다가 별로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왜 유독 연안 사람들에게는 바다가 별 볼일 없는 것이 될까.

그것은 연안군의 바닷가들이 위수구역(군 방어지역)으로 지정돼 있어 주민들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안군의 해변가들은 남한과의 해안 경계선과 인접해 있다. 해변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는 위수구역에서 고기잡이를 할 엄두를 내기 어렵다.

김 씨는 “2008년 발산리에 위치한 연안수산사업소에 갔었다”며 “말이 수산사업소이지 분계선 가까이어서 맘대로 바다에 나갈 수도 없고 가까운 바다에서 얼마 안되는 망둥어나 실뱀장어 잡이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수산사업소에서 일하는 이 씨의 말에 의하면 97년부터 뱀장어 잡이를 시작했다는데 처음은 수입이 괜찮았으나 2000년경부터 수입이 떨어졌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실뱀장어를 잡으려면 뱀장어를 잡을 수 있는 높이 2m, 길이 12미터의 그물(모기망사처럼 촘촘하다) 아래 쪽에 주드(바가지처럼 생긴 것으로 그물에 들어온 뱀장어가 이 바가지안에 들어가게끔 만들어졌다)를 매달아 놓는다. 그리고 10분에 한번씩 주드를 쳐들어보고 들어온 실뱀장어를 통에 옮겨 담는다.

실뱀장어는 잡기도 힘들지만 잡은 후 거래가 성사될 때까지 물을 갈아줘야 하고 신선한 공기를 보장해야 하는 등 관리가 힘들다. 2004년, 2005년에 실뱀장어잡이에 나섰던 사람들은 대부분 본전도 못건지고 빚만 진 채 물러났다고 김 씨는 말했다.

지난 6월 국내에 입국한 이 씨(37세, 황해북도 사리원시)는 “지금은 황해도 사람들이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면서 “90년대 후반기에 굶어죽었던 자강도나 함북도 등 국경지대 사람들은 지금 국경덕분에 살판 났지만 황해도는 제 손으로 옥백미(품질이 우수한 쌀)를 당국에 넘기고 1년 내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식량사정이 어려워진 황해도 지역 주민들의 생활 형편을 깊이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