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아소에도 갈 수 없었던 첫 손자

두만강을 함께 건너와 중국에서 떠돌다가 하나뿐인 아들과 헤어진 10년이 가까워 옵니다. 어디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르는 아들의 얼굴만 생각하면 가슴이 콱 막혀 울다가 기도하다가 또 웁니다. 북조선에서 홀로 두 손자를 키우고 있는 우리 며느리를 생각하면 가슴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홀 여인의 몸으로 자식을 키워봤기 때문에 우리 며느리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고 있을까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승인 없이 손자를 보러 간 ‘죄’

리수희
1931년 자강도 출생
1996년 탈북
현재 중국 長春에 거주

86년에 며느리가 첫 손자를 낳았을 때는 어찌나 기쁘고 반갑던지 하루 종일 미친 사람처럼 웃고 다녔습니다. 당시에 아들네는 여섯 정거장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아들을 낳았다”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빨리 아들네로 가야 하겠는데 나 같은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한평생 ‘월남가족의 딸’이라는 출신성분이 뒤따라 다녔기 때문에 증명서를 해 줄리 만무했습니다.

며느리가 아이를 낳으면 먹이려고 안 먹고 매달 조금씩 모아둔 입쌀이 6kg정도 됐습니다. 2kg은 애기 옷과 포단과 미역으로 바꾸고 4kg의 쌀까지 한 봇짐을 꾸리고 작업반 세포비서를 찾아갔습니다. 역시나 세포비서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손자 얼굴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시간을 짜냈습니다. 밤일을 하고 교대를 바꿀 때면 옹근 하루 정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먼 길을 새벽부터 걷기 시작해서 어찌나 빨리 걸었는지 오전에 도착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할머니가 되었다는 생각에 참 기뻤습니다. 죽은 나무에 꽃이 피는 것 같았습니다. 하루만이라도 손자와 함께 있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아들네 집에 두 시간쯤 있다가 인차 또 떠나왔습니다.

공장에 돌아오니 이것이 또 ‘죄’가 되었습니다. 공장의 직맹(직업총동맹) 책임자 여자가 나를 데리러 왔습니다. 회의실에 가라고 하기에 올라갔습니다. 이상한 회의라는 것을 감지했으나 나는 알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저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판에 무엇이 더 있겠습니까? 안전원과 보위지도원도 그 자리에 참가했습니다. 사람들 잡아가는 회의였습니다. 듣자하니 공장에서 물건을 훔친 놈, 경사스러운 김일성 장군님 생신날 술 먹고 싸운 놈, 나는 증명서 없이 타군(他君)에 다녀 왔다는 것이 죄였습니다.

모두 이름을 불러서 앞에 세웠습니다. 군중들 가운데서 “저 어머니는 걸어서 갔다 왔는데 그게 무슨 죄람?”하는 말이 나왔습니다. 군중들 앞에서 잘못했다고 자아비판을 하고 다시는 승인 없이 돌아다니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손자는 탁아소에 받아줄 수 없다”

몇 해가 흘러 며느리가 둘째 손녀를 낳았다는 편지가 왔습니다. 나는 원래 아들 하나만 키우며 살아와서 본래 딸이 그리웠습니다. 며느리는 손녀를 낳고 몸조리를 잘 못해서 자리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소식이 왔습니다. 하는 수 없이 큰 손자를 내가 키우지 않으면 안되는 형국이었습니다.

내가 공장 탁아소에 맡길 생각으로 손자를 데려왔습니다. 손자를 업고 탁아소 소장에게 탁아소 수속을 하려고 하니 승인이 안 떨어졌습니다. 탁아소 규정은 직접 노동 여성들이 낳은 자식들만 맡기게 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따졌습니다. “그렇다면 00작업반장은 왜 손녀를 받아 주는가?” 미운 풀 죽이려다 고운 풀도 죽이는 판이었습니다. 00작업반장도 손주를 돌려보내야 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말할 수도 없고 할 수 없이 손자를 데리고 일을 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이 없고 식량 배급도 끊기는 판이니 참 난감했습니다. 아침에 손자를 업고 가서 작업장에 놓고 일을 했습니다. 그때 나는 건설 작업을 했기 때문에 아이가 할머니 일하는데 지장이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손주는 혼자서 수걱수걱 참 잘 놀았습니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 우리 손자가 정말 고맙습니다. 말을 잘 못해도 어린 것이 눈치를 아는지 할머니가 놀이감도 주워다 주고 노는 장소에 깔개도 깔아주고 어디 가지 말고 꼭 여기서 놀라고 하면 머리를 끄덕끄덕 하면서 혼자서 참 잘 놀았습니다. 이렇게 며칠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내 생활은 참 즐거웠습니다. 건설작업은 힘겨웠으나 하루 일이 끝나면 저녁에는 손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린 아이를 홀로 집에 두고

며칠 후에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절룩발이 작업반장이 현장에서 큰소리로 야단 법석을 떨었습니다. “누가 아이를 데리고 작업현장에서 일하는가? 그러다 사고 나면 아이도 아이려니와 내 목도 날아간다. 내 입장도 좀 생각해 줘야 하지 않는가?”하고 추궁했습니다. 말도 변변히 못하는 이 어린 철부지도 눈치를 차리고 할머니 곁에 와서 내 손을 꼭 붙들고는 할머니 얼굴을 올려보고 고개를 떨굽니다.

하는 수 없이 손자를 업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살아갈 일은 걱정스러워도 손자를 데리고 생활하는 하루하루는 참 즐거웠습니다. 목욕을 시키고 방안에 앉혀 놓으면 이 할머니를 쳐다보며 뱀욱뱀욱 웃습니다. 도끼 대가리에 쭉 째진 눈, 큼직한 입, 내 손자만큼 잘난 아이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튿날 하는 수 없이 잠든 손자의 머리맡에 밥 한릇, 소변기, 물그릇을 놓고 집을 나서려고 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몇 발자국 가다 되돌아 와서 창문을 들여다보면 손자는 그냥 자고 있었습니다. 몇 걸음을 가다 또 깨지 않았나 해서 와보니 그래도 자고 있었습니다. 세 번 만에 크게 마음먹고 공장으로 갔습니다. 지각이었습니다. 저녁 총화에는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지각을 하거나 저녁 총화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세 번이면 하루치 배급이 깍입니다. 그래도 정신 없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집까지 달려오니 동네사람들이 무슨 사고가 났는가 하고 나를 쳐다 보았습니다. 집마당에 들어오자 손자 이름을 부르며 문을 열고 뛰어 들어가니 신발 한 짝은 미쳐 벗겨지지도 않아 방안까지 따라 들어왔습니다. 손자가 혼자 조용히 앉아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을 확인하니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공장 혁명 소조에 들통나

다음날 공장에 나서는 길에는 손자가 떨어지지 않으려고 매달렸습니다. 하는 수 없이 업고 출근했습니다. 그래도 할미 마음은 빈집에 혼자 놔두고 온 것보다 한결 가벼웠습니다. 공장 울타리 나무 아래다 몰래 숨겨 놓고 주섬주섬 돌과 놀이감을 주워다 주니 신이 나서 잘 놀았습니다. 그래도 멀리서 손자를 바라보며 일을 하니 안심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3일 동안 누구도 모르게 그 장소에 갖다 놓으니 제법 제 놀이터라고 웃으면서 할머니는 어서 가라고 말도 못하는 것이 손짓을 했습니다. 절대 밖으로는 나오지 않아 그 안에 아이가 있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일이 안되려고 했는지 공장 혁명 소조가 공장 구내를 문화적으로 꾸린답시고 울타리 주변을 둘러보다 아이를 발견하곤 큰일이 난 것처럼 “누구네 아이인가?”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야단법석을 떨었습니다. 나는 손자를 등에 업고 당비서에게 불려갔습니다. 당비서는 “어떻게 할 작정인가? 내 목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야 정신을 차리겠는가?”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혹시나 어린 것이 사고나 나면 내 가슴이나 터지고 우리 아들 며느리가 원통할 노릇이지, 저야 성분 좋은 당일꾼인데 무슨 큰일이 있겠는가? 제 형이 중앙당 간부라며 무슨 일이 있다고 큰소리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집에 손주를 떼어 놓고 공장에 나가는 가슴 졸이는 생활이 했습니다. 다행이도 반년이 넘도록 손자는 아무 사고 없이 쑥쑥 잘 컸고, 며느리가 간신히 몸을 추스리자 다시 되돌려 보냈습니다. 제 애비의 손을 잡고 제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할미에게 손을 흔들며 강아지 마냥 깡총깡총 뛰어갔습니다.

세끼 쌀밥은 ‘눈물밥’

나는 이곳에 와서 매끼니 거르지 않고 쌀밥을 마주합니다. 밥상을 볼 때 마다, 아들과 며느리와 손자와 손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목이 메여 밥이 너머 가지 않습니다. 북조선에서 처녀시절에 전쟁도 겪어보고, 남편 죽고 혼자 아들을 키우며 ‘월남자 딸’이라는 출신성분에 시달리며 모진 고생을 다 했습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낙심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북조선에서는 배불리 쌀밥 먹는 것이 한평생 소원인 사람도 많인데 나는 쌀밥을 마주할 때마다 가슴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습니다. 소리 내서 엉엉 울다가 그 이튿날 그 밥을 버릴 수가 없어서 물에 말아서 다시 먹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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