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으로 끝난 ARF 외교戰…대북제재 흐름 차단 못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는 24일 진통을 거듭한 끝에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북한을 명시하지 않고 ‘깊은 우려’ ‘공격에 의한 것’이란 선에서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제17차 ARF 의장국인 베트남이 각국의 의견을 수렴해 최종 채택한 성명에는 “공격으로 초래된 대한민국 함정 천안함의 침몰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대한민국 정부의 이 사건에 따른 인명손실에 대해 애도를 표했다”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와 지역 평화·안정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관련 당사자들의 모든 분쟁을 평화적 수단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한다”고 지적했다. 또 “당사자들이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을 권고한다”고 명시했다.


한·미와 북·중 입장을 절충하는 수준에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는 지난 7일 유엔 안보리의 의장성명이 북한을 공격주체로 직접 명시하지는 않아지만 ‘공격(attack)’ ‘규탄(condemn)’의 문구를 포함했던 것보다는 낮은 수위로 평가된다.



ARF 성명은 당초 안보리 의장성명 수준 정도에서 채택될 것으로 예상됐다. 27개 ARF 회원국 중 남북한과 동시수교하고 있는 아세안 10국이 포함돼 있어 이 국가들이 북한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또 안보리에서 북한을 적극 옹호했던 중국의 ‘벽’도 고려돼 안보리 수준의 수위에 만족해야 한다는 관측이었다. 



당초 우리 정부는 유엔 안보리에서 의장성명이 채택된 만큼 ARF 의장성명이 안보리 성명보다 수위가 낮을 경우 천안함 문제를 아예 포함하지 않는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던 것도 이같은 이유다.



이번 ARF회의에서도 천안함 사건에 대한 남북간 외교전의 이어졌다. ‘상대에 밀리지 않겠다’는 듯 총력을 쏟았다. 이번 성명이 23일 폐막식과 함께 발표되지 못하고 하루 늦춰진 것은 남중국해의 남사군도, 시사군도의 영유권 문제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천안함 사건 역시 입장조율을 어렵게 했다는 후문이다.



북한은 ‘초계함 침몰 사건’이라는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고 ‘한반도의 정세악화’ 등 추상적 표현을 담을 것을 요구했고, 우리 정부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완전히 이행할 필요성’이란 표현을 성명에 포함하도록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예상했던 대로 외교무대에서 중국과 함께 6자회담 재개 입장을 강조했다. 북한 박의춘 외무상이 22일 양제츠 중국외교부장의 회담에서 “6자회담과 관련해 중국과 연락을 유지해갈 것”이라고 밝힌 대목도 천안함 대북제재 분위기를 전환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ARF에 참가한 북한 소식통이 23일 기자들과 만나 “천안함 사태는 북남 간 문제이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은 맞지 않다. ARF에서 남측이 먼저 문제 제기하지 않는 한 우리가 먼저 제기하지는 않을 것”이라 밝힌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한·미·일은 북한의 천안함 소행을 재차 강조해 대북제재의 당위성을 확산하는 자리였다. 더불어 ARF 회원국인 말레이시아, 싱가폴 등 동남아 국가들의 대북제재 동참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자리로 활용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도 23일 “국제사회가 지닌 강점 중 하나는 바로 회원국과 이웃국가들에 가해지는 위협에 함께 대응하는 것”이라고 강조, 북한에 대한 대북제재 압박을 위해 아시아 국가들의 동참을 호소했다.



이와 관련 로버트 아인혼 미 대북제재 조정관은 다음달초 한국, 일본, 중국, 동남아 국가들을 방문해 대북 금융제재 추진 방안을 협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동남아 국가의 방문은 북한과 금융거래를 하고 있는 국가들을 상대로 주요 정보를 수집하고 금융거래 차단과 관련한 협조를 요청하려는 움직임이란 관측이다.


이번 ARF 무대에서의 ‘천안함 외교전’은 결국 타협과 절충으로 마무리됐다. 이에 따른 우리 정부의 외교력 한계에 대한 비판여론도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천안함 외교전도 사실상 일단락됐다. 때문에 ‘천안함 외교’의 성패는 추후 한미일의 추가 대북제재에 국제사회가 얼마 만큼 동참할 것인가로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소식통은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의 외교활동이 적극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또 중국의 입장이 반영돼 북한을 직접 겨냥한 비난은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그렇다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통한 ‘대북 억지력 강화’와 금융제재를 통한 ‘돈줄죄기’라는 두 축의 대북제재 흐름 중 어느 하나도 차단하지 못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