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 40주기 맞은 월북화가 김용준

“내가 너를 왜 사랑하는 줄 아느냐. 그 못 생긴 눈, 그 못 생긴 코 그리고 그 못 생긴 입이며 다리며 몸뚱어리들을 보고 무슨 이유로 너를 사랑하는지를 아느냐. 거기에는 오직 하나의 커다란 이유가 있다. 나는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고독함은 너 같은 성격이 아니고서는 위로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타계 40주기를 맞은 근원(近園) 김용준(金瑢俊ㆍ1904~1967)의 수필 ’두꺼비연적을 산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1948년 그가 수필집 ’근원수필’을 내자 “시는 정지용, 소설은 이태준, 수필은 김용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사랑받았고 요즘 국어교과서에도 실릴 정도지만 김용준의 본업은 화가였다.

한국전쟁 때 월북해 남한에서는 오래 잊혀졌지만 김용준은 해방공간에서 우리 예술계의 대단한 화가이자 문인, 미술사학자이자 북디자이너였다. 또 1946년 서울대 미대를 탄생시킨 실질적인 주역이었으며 많은 제자를 길러낸 스승이었다.

열화당 출판사가 2002년 5권짜리 근원전집을 발간한 이후 새로 발굴된 수필과 회화, 그가 그림을 그린 책표지, 사진 등을 모아 ’근원전집 이후의 근원’(136쪽. 1만5천원)을 냈다.

수필 중 ’서글픈 취미’에서는 “…간편한 먹과 종이 놀음으로 서른여섯에 길을 바꾸어서 앞으로 십 년, 넉넉 잡아 오십까지면 설마 화호불성(畵虎不成)에 괭이 새끼라도 되리라”는 구절이 나와 도쿄미대에서 서양화를 배운 그가 서른여섯살 때 동양화로 전향했다는 것이 드러난다.

또 ’아름다운 도적(盜賊)’은 그의 친구이던 수화 김환기가 항아리를 사 모은 취미와 그의 후배였던 화가 최재덕과 시인 오장환이 항아리 하나를 두고 벌였던 소동을 위트있게 그려냈다.

근원이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교수일 때 애제자였던 산정 서세옥(78)의 육성 회고담도 들어있다.

서화백은 근원이 좌익 공산주의자여서 월북했다는 시각에 반대하면서 “근원은 미군정 하에서 영어 잘하는 사람이 설치고 툭하면 빨갱이로 몰아세우는 혼란 상황에 저항했다. 현실적으로는 인민군 지배 하에서 서울대에 복직해서 몇달간 학부장을 했기 때문에 그대로 있으면 형무소신세를 면하기 어려워 월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에는 근원이 디자인한 이태준의 ’달밤’(1934년), ’복덕방’(1947년), 홍명희의 ’임꺽정’(1948년), 김동인의 ’약혼자에게’(1949년), 신채호의 ’조선상고사’(1948년) 등의 표지디자인과 사진자료들도 소개되고 있다.

출판도시 열화당 사옥 내 갤러리로터스에서는 근원 40주기 기념전이 다음달 30일까지 열린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