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민족분규 그 해결책은?

지난 4월 유혈 시위로 대통령이 물러난 키르기스스탄에서 이번에는 민족간의 분규가 발생해 많은 사상자가 나오고 있다.


키르기스에 거주하는 우즈벡계 소수민족은 키르기스인 폭도들의 공격을 피해 우즈벡으로 넘어 가기 위해 국경으로 몰려들고 있다. 지난 10일 밤부터 시작된 유혈사태로 인해 100여명의 사망자와 1000여명의 부상자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두 번 째 규모의 도시로 알려진 남부 오쉬 유혈 폭동이 수도 비슈케크로 번질 기세이며 민족간 참혹한 유혈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키르기스스탄 과도정부는 우선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고 러시아는 자국 군기지와 국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13일 공수부대를 파견했다.



이번 사태는 민족분규와 경제난, 그리고 정치적 갈등이 복합적으로 투영되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와 미국의 이해관계도 맞물려 있어 사태 수습의 실마리를 찾는 일조차 쉽지 않다.



키르기스스탄의 인구는 530여 만명으로 주민의 70%는 키르기스계, 14.5%는 우즈벡계, 8.4%는 러시아계다. 우즈백과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키르기스에서 수도 다음으로 큰 도시인 남부지역의 오쉬는 우즈벡계가 절반인 약 50%에 달한다.



분규의 발단은 지난 10일 밤 오쉬의 한 카지노에서 키르기스계 청년들과 우즈벡계 청년들간의 시비가 폭력으로 번지면서 빚어졌다. 키르기스계 청년 1천 여명은 각목과 돌을 들고 상가와 주택에 대한 방화, 약탈을 자행하고 이를 진압하려는 경찰과 군부대를 습격해 무기류와 장갑차까지 탈취했다. 무장을 갖춘 키르기스 청년들의 방화와 살상이 거세지자 우즈벡계 어린이와 부녀자들은 폭동을 피해 우즈벡 국경으로 몰려들었다.



키르기스의 민족 갈등은 사실 오래전부터 누적돼 왔다. 구 소련 붕괴 후 키르기스가 독립하면서 표면화됐다. 흔히 유혈분쟁은 냉전 이전보다 냉전의 붕괴 후 더 늘어났다는 지적처럼 키르기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키르기스는 소련 붕괴 후 지속된 장기집권으로도 유명했다. 2005년 집권당의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민심에 의해 15년 장기집권 중이던 아스카르 아카예프 대통령이 축출되었으며, 이 혁명을 주도한 쿠르만베르크 바키예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른바 “튤립혁명”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지난 4월 바키예프 대통령은 강권통치와 반복된 부정부패로 국민들로부터 민심을 잃게 됐다. 집권 5년 만에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에 직면하였고, 결국 대통령이 수도를 탈출하면서 과도정부가 들어서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바키예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남부 지방이라는 점에서 현재 과도정부는 최근 잇따른 남부 지방의 시위와 폭동의 배후로 바키예프 대통령 세력을 지목하고 있다. 바키예프 대통령은 지금 벨라루시로 피신해 있는 상태다.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나 미국에게도 주요한 요충지이이다. 러시아는 구 소련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중앙아시아 독립국들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일환으로 키르기스에 자신의 군대를 주둔시키는 데 성공했다.



미국 역시 중앙아시아에 대한 세력 확대를 꾀하고 있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전쟁 후에는 아프간 군사보급로로 키르기스스탄을 필수적인 경로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아프간의 안정화를 위해 키르기스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으며 비싼 임차료까지 지불하며 공군기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5년 장기집권의 아카예프 정권은 친러 성향을 띠었고 ‘튤립혁명’의 주인공인 바키예프 정권은 ‘친미’ 성향을 띠었다.



키르기스 폭동의 원인에는 심각한 경제난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키르기스의 경제는 중앙아시아 독립국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축에 들 정도로 어렵다. 마땅한 산업도 자원도 없는 키르기스의 경제토대는 허약하기 이를 데 없으며 러시아 등에 진출한 소위 ‘3D’ 업종의 근로자들이 송금해오는 돈이나 미국에게 기지를 빌려주고 받는 기지임차료가 주요한 재원이 될 정도이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 상황에서 해외로 나간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국으로 돌아오면서 이들은 오히려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등장했다.



키르기스에서는 오랜 독재정권이나 젊은 혁명정권이나 모두 국민경제를 살리는 데는 실패한 채 부정부패 집단으로 낙인됐다. 육군 8500명을 보유한 과도정부는 정국을 장악하지 못한 채 러시아의 군대에 의존해 폭동을 진압해야 할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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