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평양에 도착했다.
이번 방북은 먼저 140일 가까이 억류된 미 여기자 석방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긴장이 고조된 북한 핵문제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세간의 관심은 여기자 석방 문제보다 북핵 문제의 국면 전환이 가능할 것인지에 쏠려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제네바 기본합의’를 체결했고 2000년에는 조명록 차수를 미국으로 초청해 ‘조미공동코뮤니케’를 발표했다.
북한이 여기자문제로 빌 클린턴이라는 거물급 인사를 평양에 불러들인 것도 현재 국제사회의 제재국면을 모면하기 위한 방책의 일환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1994년 1차 북핵위기 이후 이뤄진 제네바 합의로 귀결된 것처럼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임시 땜질용 합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쏟아지고 있다.
1994년 1차 핵 위기 당시 북한은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계기로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체결해 기존 핵시설 동결에 나서면서 위기상황을 모면한 바 있다.
1993년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과 영변 핵시설에 대한 신고 및 사찰 문제로 지루한 공방이 이어가다 급기야 북한은 1994년 5월 영변 5MW급 원자로 노심에서 폐연료봉 제거를 시작했고, 유엔 안보리가 대북결의안을 채택하자 이에 북한은 선전포고로 간주한다며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성명을 발표했다.
영변 핵시설 폭격 시나리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 위기상황이 조성된 가운데, 1994년 6월 15일부터 18일까지 카터 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 김일성 주석과 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개발을 일시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 2명의 북한 잔류를 허용한다는 합의에 이른 바 있다.
당시 1차 핵위기에서도 북한은 도발을 통해 긴장국면을 조성하고, 이에 대한 제재가 강화되면 이후 대화를 모색하는 패턴을 구사해 왔다.
올해 들어 북한의 잇단 도발에 대해 안보리가 대북제재결의를 강화하자 그동안 북한의 방패막이 돼왔던 중국, 러시아마저 등을 돌리는 등 1994년 상황과 유사한 측면이 많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여기자의 석방이 이뤄질 경우 현재 북한에 가해지고 있는 제재상황이 단시일 내에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대화모드로 전환될 수 있다”면서 “6자회담 내 양자대화가 시작될 수 있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유 교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북한은 그동안 도발을 통해 강경적인 태도로 일관했던 행동패턴을 대화모드로 전환하는 기회로 활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춘근 미래연구원 연구처장도 “북한이 클린턴 행정부와 관계를 가장 잘 유지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대화재개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은 과거에도 핵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등 극적인 반전을 노려왔다”면서 “이번 클린턴 방북에서도 긍정적 시그널(신호)를 보내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윤 교수는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번 방북에서 김정일과의 만남 가능성이 높다”며 “이 때 북한은 9.19공동성명을 이행한다는 입장을 밝혀 북핵협상이 재개되길 희망하다는 메시지를 보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미국은 이미 북핵정국의 정치적문제와 여기자 억류라는 인도적 문제와는 분리해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기 때문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을 통해 북핵정국과 관련한 중대한 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이에 대해 이 연구처장은 “북핵문제는 구조적 문제로 거물급 특사의 대화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면서 “클린턴이 간다고 해서 현재 북핵구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번 방북을 계기로 이후 6자회담과 양자대화가 추진된다해도 미국이 제시한 제재 해제 조건이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며 제재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되면서 북한의 태도에 따라 다소 완화되는 조치가 뛰따를 수 있다고 전망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먼저 핵폐기를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무역과 금융제재를 해제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6자회담 복귀와 핵 동결 선언만으로 미국이 제재 해제와 관계개선 논의를 시작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