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미·북 직항로’에 담긴 뜻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오전 억류 중인 미국 여기자 석방 등을 위해 전격 방북했다.

얽히고 설킨 여기자 억류사태의 실타래를 풀려면 클린턴 전 대통령이나 앨 고어 전 부통령 등 전직 고위 인사들의 방북이 불가피하다는 점은 누차 제기돼 왔으나 이번 방북에서 눈에 띄는 점은 그가 미국에서 평양으로 ‘직행’했다는 점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방북을 위한 기착지로 여겨졌던 한국이나 중국 등 중간 경유지를 거치지 않고 미국에서 캄차카 항로로 곧장 평양 순안공항으로 들어갔다.

전문가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직항로를 이용한 것이 무엇보다 이번 방문이 ‘여기자 석방’이라는 북.미 간 현안에 국한될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제2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로켓 발사 등으로 고조된 한반도 긴장 완화 방안을 논의하려는 목적이라면 평양에 들르기 직전 핵심 관련국인 한국이나 중국을 방문해 직접 조율할 필요가 있었겠지만 이 과정을 생략했다는 것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문제 등을 논의하려면 중국과 한국을 거쳐 갈 수도 있겠지만, 직항로를 택했다는 것은 인도적인 목적에 의한 방북으로 국한하겠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런 분석은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행과 비견되는 15년 전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방북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는다.

두 전직 대통령의 방북은 북.미 간 대결 국면에서 성사됐다는 측면에서는 궤를 같이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의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선언으로 촉발된 핵문제 해결을 위한 방북이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 때문에 카터 전 대통령은 방북 직전 한국을 찾아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사전조율을 거친 뒤 판문점 육로를 통해 방북했다. 미측 경호원들이 미리 방북, 사전 준비를 한 것은 물론 3박4일의 방북일정을 끝내고는 같은 루트로 남쪽으로 내려와 방북결과를 우리 정부에 충분히 설명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북 뒤 곧장 미국으로 향할 것으로 알려진 것도 그의 방북이 양국 현안, 특히 여기자 문제에 한정될 것이라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2000년 10월23일 현직 국무장관으로는 유일하게 평양을 찾았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이번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경유지 없이 곧장 방북했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방북 문제 등 순수 북.미 현안을 논의했다.

이 밖에 2007년 6월 6자회담 미측 수석대표였던 크리스토퍼 힐 당시 국무부 차관보가 오산기지에서 군용기로, 이듬해 10월에는 판문점 육로를 통해 방북했다.

이때에는 핵시설 불능화 로드맵 논의와 북한이 제출한 핵 신고서 검증 원칙문제를 협의하는 등 6자회담 관련국 모두가 관련된 현안을 논의하던 중이었다.

일각에서는 클린턴 전 대통령의 ‘평양직행’이 ‘북.미 직접대화’를 주장하는 북한을 배려한 우회적 메시지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내용은 여기자 석방에 한정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 형식은 북한이 6자회담에만 복귀하면 그 안에서 양자대화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메시지라는 것.

또 이번 방북의 핵심사안이 될 여기자 석방 문제를 비롯한 양국 현안에 대해 양국 간 충분한 사전 조율이 이뤄졌기 때문에 클린턴 전 대통령이 평양으로 직행했다는 분석도 있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직항로를 택했다는 것은 북.미 간에 이미 (양측 현안에 대한) 충분한 조율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한국과 일본 등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이번 방북을 계기로 정책적으로 뭘 한다기보다는 북미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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