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訪北, 美北이 보여줄 절충점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4일 깜짝 평양 방문은 북한이 이미 밑그림을 그려놓고 그의 방북 성사를 위해 미국에 집요하게 요구한 결과라는 관측이 많다.

국제사회의 제재 국면에서 미 여기자들의 월경은 북한 입장에서는 굴러온 호박이나 다름 없었다.

북한은 지난 3월 17일 커런트TV 소속 여기자 2명을 체포한 이후 재판에 회부해 노동교화형 12년형을 선고했다. 억류 기간동안 평양주재 스웨덴 대사를 통해서만 접견을 허용하고 실제 형을 집행하는 절차에 착수하는 등 긴장상황을 지속해 왔다.

북한은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끝나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들였다. 이 정도 상황이면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재 국면 타개에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선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자 문제를 협의하는 미북간 비공식 접촉에서 북한은 석방 조건으로 미국측에 ▲사과 및 재발방지 표명 ▲북한 법체계 인정 ▲빌 클린턴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 수준의 특사 파견 등을 제시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힐러리 클런턴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10일 “두 여기자와 가족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크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모든 사람이 이런 일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본의 아닌 과오에 대해 북한이 사면을 통해 선처해 줄 것을 요청한 바 있다.

북한의 요구 조건 중 앞의 두 가지는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여러 형태로 사과와 인정을 해왔다. 결국 북한 요구의 핵심은 자신들의 주장을 세계에 대변하고 핵문제에 돌파구를 마련해 줄 특사 파견이었다.

클린턴 장관은 지난달 20일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억류중인 여기자 문제에 대해 “매우 희망적”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발언도 이번 특사 파견을 염두해 두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관건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두 명의 미국인 여기자를 데리고 함께 귀국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빠르면 5일(미국시간) 미국 여기자를 데리고 북한을 떠나기로 뉴욕 비공식 접촉에서 합의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있다.

국내외 전문가들도 이러한 합의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최고위급 인사가 북한을 방문하기는 어렵다고 말한다. 실무 협의가 끝나고 문제 해결의 의전적인 절차만 남았다는 관측이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핵문제에 대한 일정한 양보를 받아내지 않고 여기자들을 풀어주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앞서 지적했듯이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은 단순한 석방 절차 차원이 아닌 핵문제 등에 대한 전향적인 합의도출을 위해 북한이 강력히 원했던 카드라는 것이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여기자들의 석방에 대한 사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이 클린턴 대통령을 불러 들인 이상 석방하지 않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클린턴이 핵 프로그램에 관련해 새로운 합의서를 협상하러 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북한 간에 사전 합의에 대한 상반된 의견에도 불구하고 클린턴 전 대통령이 방문한 이상 석방 절차를 밟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또한 북한은 이번 클린턴 방문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세계에 전달한 고급 스피커를 확보한 셈이다. 6자회담 복귀나 핵동결 선언 등으로 화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누그러 뜨리려는 시도가 나올 수 있다.

또한 김정일과의 면담을 통해 건강 문제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키고 후계자 문제가 안정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과시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김정일이 직접 전면에 나서 지난 1999년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유예)을 선언한 것과 같은 상징적인 발표를 통해 본격적인 유화 제스처에 착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셈이다.

북한은 지난 1994년 일촉즉발의 1차 북핵위기 상황에도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회담을 통해 북한이 핵개발을 일시동결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원 2명의 북한 잔류를 허용한다는 합의를 했고, 이후 ‘제네바 기본합의문’을 체결한 바 있다.

또, 미국입장에서도 북핵이라는 정치적 문제와 여기자 억류라는 인도적 문제는 분리해 접근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북한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이 먼저 핵폐기를 신뢰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는 무역과 금융제재를 해제할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여기자 2명의 석방 문제 때문에 국제사회에 내세운 북핵 접근 원칙을 스스로 허물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이번 방북은 결국 여기자 석방과 함께 양국이 화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극적 결과와 북한의 6자회담 복귀에 따른 미국의 양자대화 수용이라는 적극적 결과 사이에서 절충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